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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우 Dec 07. 2022

[브런치북] 신체적 고통은 정신적으로 극복할 수 있다?

자기계발서, 새빨간 거짓말

서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이다. 최소 노력의 법칙(the law of least effort)에 따라 설계된 인간은 에너지를 덜 소비하는 방식을 자연스럽게 선호한다. 부지런히 신체를 움직이는 것은 에너지를 소비하게 만들지만, 덜 움직인다면 그만큼 에너지를 아낄 수 있다. 인간은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에너지 효율을 추구하는 경제적 피조물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렇게 절약한 에너지가 우리 뇌를 작동시키는 에너지로 쓰인다고 믿는다.


그 증거로, 수렵 채집 활동에서 벗어난 인간은 문명이 발달할수록 훨씬 움직인다. 여전히 수렵 채집을 하고 있는 동아프리카의 하즈다족은 하루 평균 135분의 비교적 고강도의 신체 활동을 하는 반면, 북미나 서유럽과 같은 선진국에 사는 사람들은 WHO의 1주일 150분 고강도 운동 권고도 지키지 못한다. 수렵 채집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두뇌 노동을 하는 사람들에 비해 무려 14배 이상 신체를 많이 쓴다는 얘기다.


또한, 우리는 생각하는 동안 가만히 있어야 더 좋은 생각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아이들도 초등학교 다닐 때에 비해, 중학교, 고등학교로 올라갈 때 신체를 덜 쓰고, 직장에 들어가게 되면 평균 근무일의 2/3 이상을 앉아서 보낸다.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생각이 많이 필요할수록 덜 움직이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정적인 것은 동적인 것에 비해 꾸준함, 근면함, 진지함과 관련 있다는 우리의 믿음은 이렇게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학창시절에 의자에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고 꼼지락거리거나 돌아다니면 어떤 질책을 받았는지 기억해 보라. 이런 아이들은 성실성과 진지함이 부족하다고 낙인 찍히기 쉬웠다. 심지어 움직임을 부도덕함으로 몰아세우는 일도 흔했다. 교실에서 누군가 중요한 물건을 잃어버리면, 모든 아이들은 책상 위에 올라가 무릎을 꿇고 눈을 감고 있어야 했다. 이 때, 움직이는 자는 곧 범인이었다. 움직임은 부도덕성의 상징이다.


사실 이러한 우리의 믿음엔 아무런 과학적 근거가 없다. 가만히 앉아 있어야 생각을 잘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적정 수준의 움직임이 있어야 생각을 더 잘한다. 그리고 이런 결과는 놀랍게도 ADHD(주의력 결핍 과잉 행동 장애, attention 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 아이들 연구에서 발견되기 시작했다. ADHD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몸을 이리저리 흔들고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리거나 다리를 흔드는 등의 신체적 각성 수준을 높이려고 한다. 주의력 결핍 환자에게 이런 모습이 자주 목격되었으므로 이런 행동은 곧 주의력 부족의 증거처럼 우리가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최근 캘리포니아대학교 데이비스(University of California, Davis)의 정신과 줄리 슈바이처(Julie Schweitzer)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ADHD 아이들이 몸을 움직여 생리적 각성 수준을 높이는 것은 이 아이들이 정신을 차리고 집중력을 높이기 위한 행동 전략이라는 것이다. 다만 이 아이들이 생각을 잘하기 위해 필요한 생리적 각성 수준이 ADHD 진단을 받지 않은 아이들보다 상대적으로 높을 뿐이다. 즉, 모든 아이들은 최적의 인지적 각성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신체적 각성이 필요한데, ADHD 아이들은 더 많은 움직임이 있어야 생각하기 좋은 조건이 되는 것이다.  


신체적 각성이 인지적 각성으로 연결된다는 이 개념은 과연 아이들에게만 해당될까? 성인도 마찬가지다.

지루한 듣기 과제를 수행하는 동안, 낙서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보다 무려 29% 많은 정보를 기억한다. 사람들은 어려운 개념을 생각할 때, 펜을 돌리거나 포스트잇을 접거나 클립 같은 사무용품을 만지는 경우가 많다. 그것도 아주 자연스럽게. 이런 행위를 못하게 할 때, 사람들은 좋은 생각에 접근하기 힘들다고 호소한다. 주변에 눈에 띄는 사무용품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이런 물건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들도 많다. 호두, 돌, 공, 딸깍거리는 물건, 스피너 등 사람들은 쥐어짜고 돌리고 문지르고 딸깍거리면서 생각을 한다. 그리고 이런 시도는 우리의 사고를 확장하는 데 도움을 준다.


사실 신체를 움직이지 않는 것만큼 정신적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는 일은 거의 없다. 신체적 움직임이 없어야 하는 버킹엄 궁전의 근위병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학창 시절 교장 선생님 훈화에 운동장에 서있던 아이들이 쓰러졌던 이유는 뙤약볕 때문만은 아니다. 만일 이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편히 움직일 수 있었다면 같은 햇볕 아래에서도 쓰러지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 적정 수준의 신체적 각성은 오히려 정신적 에너지를 덜 쓰게 만든다. 물론 어디까지나 적정 수준의 각성이다. 자연스러운 속도로 산책하는 것은 좋은 생각에 도움이 되지만, 빠른 걸음으로 걸을 때는 다른 생각을 거의 하지 못한다.적당한 시간 내에 적절한 수준의 신체적 움직임은 언어를 더 유창하게 구사하게 하고 창의적 사고와 문제해결, 의사결정 능력을 높인다. 신체적 각성이 뇌로 가는 혈류와 정보 전달 효율성을 높이는 신경 화학 물질 분비 증가로 이어지게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효과는 대략 2시간 가량 지속된다. 따라서 주말에 몰아서 운동하는 것은 아이디어 생성 차원에서만 보면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두뇌를 위해선 앉거나 눕는 것보다 서 있는 것이 분명 낫다. 연구진들은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서 있는 상황, 앉아 있는 상황, 누워 있는 상황 각각에서 인지적 과제를 부여했다. 사람들은 서 있을 때가 앉아 있을 때나 누워 있을 때보다 말을 더 유창하게 했고, 어려운 문제를 더 잘 해결했으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더 많이 생각해 냈다. 앉아 있는 것과 누워 있는 것의 차이는 통계적으로 유의하지 않았다.


출처: Zhou, Y., Zhang, Y., Hommel, B., & Zhang, H. (2017). The impact of bodily states on divergent thinking: evidence for a control-depletion account. Frontiers in psychology, 8, 1546.


연구진들은 이번엔 자연스러운 움직임과 정해진 동선에 따른 움직임, 그리고 가만히 서있는 상황을 비교했다.

그랬더니, 자연스러운 움직임 상태가 정해진 동선보다, 정해진 동선에 따른 움직임이 가만히 서 있는 상황에서보다 사람들은 더 유창했고, 더 나은 문제해결과 의사결정 능력을 보였으며, 새로운 아이디어, 기억력 모든 인지 과제에서 우월한 모습을 보였다.


출처: Zhou, Y., Zhang, Y., Hommel, B., & Zhang, H. (2017). The impact of bodily states on divergent thinking: evidence for a control-depletion account. Frontiers in psychology, 8, 1546. 


우리는 대개 정신 노동을 오래 하려면 업무와는 다른 느낌의 활동, 즉 유튜브를 보거나, 페이스북, 트위터 등의 SNS 활동을 통해 머리를 쉬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활동이 뇌의 재충전 작업에 도움이 된다고 믿는 것이다. 하지만 뇌과학 연구를 보면 우리가 영상을 보거나 SNS를 하는 활동은 정신 노동을 할 때와 똑같은 정신적 자원을 소모하게 한다. 그러니 휴식 시간에 스마트폰을 보는 것은 오히려 인지적으로는 더 피곤한 상태에서 정신 노동을 재개하게 만드는 것이다. 텍사스 대학교 건강 과학 센터의 웬델 테일러(Wendell Taylor) 박사는 스트레스와 피로감을 줄이고 몰입도를 높이기 위해서 휴식 시간에 커피나 SNS 보다 가벼운 스트레칭이나 요가 동작과 같은 신체적 움직임이 훨씬 도움이 크다고 말한다. 


신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은 다름이 아니다. 신체적 움직임은 정신적 유연성과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과학자들은 여러 연구들을 종합하여 운동 강도와 인지 기능 사이의 관계가 역 U자형 곡선(inverted U-shaped curve)이라고 말한다. 적정 수준의 움직임이 최상의 정신적 유연성을 낳는 법이다. 그런데, 간혹 자신의 신체 능력을 넘어선 고강도 운동이 우리의 정신을 깨우는 일도 생긴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하루키는 매주 80km 이상을 달리고, 매년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는 마라톤 매니아다.


"혼자 있고 싶다는 생각은 변함없이 내 안에 존재하고 있었다. 그런 까닭에 하루에 한 시간쯤 달리며 나 자신만의 침묵의 시간을 확보한다는 것은 나의 정신 위생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 작업이었다. 적어도 달리고 있는 동안은 누구와도 얘기하지 않아도 괜찮고, 누구의 얘기도 듣지 않아도 된다. 그저 주위의 풍경을 바라보고, 자신을 응시하면 되는 것이다. 그것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나는 달리면서 이렇다 할 그 어떤 것도 잘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달린다. 나는 공허한 마음으로 달린다. 아니, 이렇게 뒤집어 말해도 좋을 것 같다. 나는 공허한 마음을 느끼고 싶어 달린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



하루키가 언급한 공허한 마음을 뇌과학자들은 '일시적 전두엽 기능 저하(transient hypofrontality)'라고 말한다. 전두엽은 계획하고, 분석하고, 비판하고,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통제하는 기능을 담당하는 뇌 영역이다. 우리의 모든 자원이 격렬한 신체 활동에 집중될 때, 전전두엽피질의 기능이 저하된다. 이때, 생각과 느낌이 자유롭게 섞이면서 예상치 못한 생각들이 떠오르기도 한다. 이 상태가 되려면 호흡이 힘들어지는 수준(ventilatory threshold)까지 고강도 운동을 40분 이상 지속해야 한다. 창작의 고통은 정신적 고통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창작의 고통이란 곧 신체적 고통이다.


하루키만큼은 아니어도 우리의 정신적 유연성을 위해서 반드시 신체적 움직임이 필요하다. 생각을 생각 탓만 할 것이 아니다. 더 좋은 생각을 위해 지금 당장 일어나 걸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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