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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우 Dec 20. 2022

[브런치북] 말의 내용보다 태도가 더 중요하다?

자기계발서, 새빨간 거짓말

메라비언의 법칙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기업에서 교육 담당을 했던 나는 메라비언의 법칙이 익숙하다. 메라비언의 법칙은 의사소통에 있어 언어적 요소 즉, 말의 내용은 7%의 중요성을 갖고, 비언어적 요소(청각, 시각)가 93%의 중요성을 갖는다는 이론이다.


출처: 다물어클럽 강원국의 글쓰기


메라비언의 법칙을 처음 접했을 때 나는 이미 무슨 법칙이나 이론으로 알려진 것들 중에 상당수는 가설 수준에 머물러 있음을 알고 있었기에, 크게 신뢰하지 않았다. 그저 소통에 있어 비언어적 요인의 중요성을 과장한 내용 정도로만 여겼었다. 그러다 메라비언의 법칙이 점점 만연해지는 현상을 접하고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 궁금해졌고, 도서관 한쪽 구석에 먼지에 쌓인 메라비언의 책인 'Nonverbal communication'을 찾아 읽었다. 적어도 책에선 메라비언은 단 한 번도 스스로 법칙이라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사람들이 알고 있는 메라비언의 법칙과 실제 메라비언의 생각이 많이 다르다는 사실을 발견해 페이스북에 포스팅한 기억은 있다.


출처: 박진우의 페이스북(www.facebook.com/@orgxpsy)

자랑같지만 내가 페이스북에 포스팅했던 시점엔 국내에 메라비언의 법칙이 잘못 쓰이는 오류를 지적한 글은 없었다. 이후 여러 사람들이 이 오류를 지적했지아쉽게도 이런 글들 중에는 다른 누군가가 비판한 글을 다시 베껴가며 본인이 제기한 비판인 양 쓴 글도 있다. 그래서 이번엔 메라비언의 법칙이 나온 배경과 진실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리소통에서 태도보다 말의 내용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관해 최근에 읽은 좋논문 한 편을 소개하고자 한다.


사람들은 잘못 알려진 메라비언의 법칙으로 인해 소통 상황에서 말하는 내용보다 보여지는 태도가 더 중요하다고 믿는다. 하지만, 메라비언은 모든 소통 상황에서 비언어적 요소가 언어적 요소보다 월등히 중요하다고 주장한 적이 없다. 먼저 커뮤니케이션에서 말의 내용이 7%, 목소리가 38%, 얼굴 표정이 55%의 중요도를 갖는다는 원문을 찾아보자.


출처: Mehrabian, A., & Ferris, S. R. (1967). Inference of attitudes from nonverbal communication in two channels. Journal of consulting psychology, 31(3), 248.


원문엔 본 연구와 메라비언과 위너의 1967년 연구를 함께 종합했을 때, 커뮤니케이션에서 말의 내용, 음성, 표정의 영향력이 각각 7%, 38%, 55%라고 정리하고 있다. 이 문구가 바로 흔히 알려진 메라비언의 법칙이 최초로 기재된 문헌이다. 사실 이 문구만 딱 떼서 보면, 메라비언이 커뮤니케이션에 있어 언어적 요소의 중요도는 7%, 비언어적 요소의 중요도가 93%로 주장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진실은 전혀 다르다. 지금부터 메라비언의 법칙의 진실을 당시 메라비언의 연구들과 책들을 하나씩 찾아 며 밝혀내겠다.


참고로 심리학에서 이와 유사하게 논문의 일부만 딱 떼서 유행시킨 유명한 법칙 중 하나가 바로 '1만 시간의 법칙'이다. 말콤 글래드웰은 '아웃라이어'에서 어떤 경지에 오르기 위해서는 1만 시간이 필요하다며 안데르스 에릭슨의 논문을 인용한 적이 있는데, 이 역시도 논문 중 딱 한 구절만 따와서 잘못 알린 대표적인 법칙이다. 나중에 에릭슨 교수는 '1만 시간의 재발견'에서 이를 바로 잡은 바 있다.


다시 논문으로 돌아가 보자. 일단 이 논문에서 했던 실험은 이렇다.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은 'maybe'라는 다소 모호한 말을 다양한 목소리 톤으로 듣고 동시에 여러 표정의 사진을 보게 된다. 그리고 여러 조건 하에서 'maybe'가 긍정적인지, 중립적인지, 부정적인 의미인지를 응답했다. 'maybe'라는 말 자체는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지 않지만, 피험자들은 들리는 목소리 톤이 날카롭고 보이는 사진의 표정이 화났을 때 부정적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확연했다. 렇다. 이 실험에서는 말내용이 전혀 중요하지 않은 상황을 의도적으로 연출한 것이니 비언어적 요소가 미치는 영향은 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어서 이 공식이 나온 몇 가지 맥락을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먼저, 메라비언과 위너의 1967년 연구다.


제목은 '불일치 소통 해석하기'다. 소통 장면에서 불일치는 말의 내용과 태도가 서로 매칭되지 않은 상황을 의미한다. 쉽게 말하자면, 비꼬는 말을 떠올리면 쉽다. 나는 어릴 때부터 부모님으로부터 '잘한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실제 공부를 잘해서, 운동을 잘해서, 심부름을 잘해서 들었던 기억도 있지만, 화병을 깨뜨리거나, 시험 점수가 엉망이었을 때도 같은 말을 들었다. '잘한다'는 말의 내용만으로 충분한 소통이 가능했던 상황은 진짜 내가 뭔가를 잘했던 장면 뿐이다. 내가 실제로는 잘못했는데, '잘한다'는 말을 들었던 불일치(inconsistent) 조건일 때 나는 부모님의 '잘한다'는 말의 내용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다. 이때는 부모님의 말의 내용이 아니라 어조나 표정이 훨씬 중요했기 때문이다.


1967년에 메라비언은 같은 대학의 수전 페리스와 이런 불일치 상황에 관련한 논문을 한 편 더 발표한다.



이 논문에서는 말하는 사람의 태도를 추론하는 데 음성과 얼굴 표정이 미치는 영향력에 관해 연구했다. 연구 결과, 표정은 음성에 비해 3/2(1.5)배 영향력이 컸다. 38%에 1.5를 곱하면 57%인데, 메라비언의 법칙이라고 정리된 내용과 거의 비슷하다.


메라비언이 1967년 당시 언어적, 비언어적 요소가 판단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할 때 썼던 통계 기법은 요인의 독립성만을 가정한 선형회귀모형에 기반한 다중회귀분석이었다. 요인 간의 매개나 상호작용효과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통계적 분석기법이 충분히 발달하지 못했던 당시를 감안하더라도 메라비언에게 아쉬운 점은 '선행연구를 종합한 결론'이라고 언급했을 뿐, 어떤 조건이었는지 구체적으로 기술하지 않고 각 요인의 효과를 표현한 것이다.


메라비언이 '말의 내용과 태도가 불일치하거나, 말의 내용이 모호할 때'라는 전제를 분명히 했다면 어땠을까?


자신의 이름으로 법칙이라고까지 명명돼 본인의 의도와 달리 잘못 쓰이는 현상을 어느 정도는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여담으로 메라비언과 페리스의 논문엔 아주 재밌는 부분이 있다. 부모들이 자녀를 키우면서 말 잘듣는 자녀와 말 안듣는 자녀에게 소통하는 방식은 같을까, 혹은 다를까? 다시 말해, 말 잘듣는 자녀에겐 대개 말의 내용과 태도가 일치하겠지만, 말 안듣는 자녀에겐 말의 내용과 태도가 불일치하는 장면이 자주 나오지 않을까하는 의문이다.


결과는 어땠을까? 차이가 없었다. 말의 내용과 태도가 불일치한 것은 자녀의 문제가 아니었다. 평소 비꼬는 말을 자주하는 부모가 "내가 너 키우다가 이 모양이 됐다"며 한탄한다면, 과학적 진실이 아닐 수 있다.


이제 메라비언이 쓴 두 권의 책을 살펴보자. 1971년 'Silent messages'와 1972년 'Nonverbal communication'이다. 먼저 1971년 'Silent messages'의 한 구절이다.


"Indeed, in the realm of feelings, our facial expressions, postures, movements, and gestures are so important that when our words contradict the silent messages contained within them, others mistrust what we say-they rely almost completely on what we do."

해석: 실제로 감정의 영역에서 우리의 얼굴 표정, 자세, 동작 및 몸짓은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우리의 말이 그 안에 포함된 무언의 메시지(silent messages)와 모순될 때 다른 사람들은 우리가 말하는 것을 불신한다.


우리가 어떤 사람의 말을 믿지 않을 때는 보여지는 태도와 메시지가 모순될 때다. 이때는 보여지는 태도가 훨씬 중요하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으로, 메라비언의 1972년 'Nonverbal communication'을 보자.


우선, 원문에선 커뮤니케이션의 전반적 영향력이 아니라 호감(liking)만을 언급했다. 그리고 55%는 제스쳐, 자세, 동작, 표정 등 보여지는 전체 모습이 아니라 그냥 얼굴일 뿐이다. 당시 연구에서 얼굴 사진만 썼기 때문이다. 그러니, 얼굴 표정을 전체 비주얼로 확대해서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도 비주얼 자료로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면 잘못된 것이다. 이 책에서 메라비안이 쓴 글을 살펴 보자.


Thus, in the case of inconsistency, facial expressions are the most dominant, the vocal component ranks second, and words are the least significant. In other words, one would be hesitant to rely on what is said when the facial, or the vocal, expression contradicts the words.

해석: 따라서, 불일치한 상황(말의 내용과 태도의 불일치)인 경우, 얼굴 표정이 가장 중요하고 음성적 요인이 두 번째로 중요하며 말의 내용이 가장 중요하지 않다. 다시 말해, 얼굴이나 목소리가 말과 모순될 때 말에 의존하기를 주저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 당시 메라비언이 했던 연구들은 주로 말의 내용과 태도가 불일치한 조건(inconsitent situation)이었다. 그리고 메라비언의 법칙의 원문이라고 알려진 책, 'Nonverbal communication'에서도 역시 불일치 조건을 언급하고 있다.


우리가 일상적 혹은 업무적 소통을 하면서 내용과 태도의 불일치를 겪는 상황이 얼마나 될까?


말의 내용과 태도의 불일치 조건에서만 적용되는 법칙을 세상의 모든 소통, 심지어는 프레젠테이션 자료까지 확대해서 강하게 주장하는 사람들은 제발 부끄러움을 알길 바란다.


최근에 소통에 있어 언어적 요인의 중요성에 관한 좋은 논문이 있어, 소개하고 글을 마친다.


메라비언의 법칙이 가장 많이 쓰인 분야 중 하나는 세일즈다. 세일즈맨들은 고객에게 전하는 내용보다 표정이나 목소리와 같은 비언어적 요소가 훨씬 중요하다고 믿는다. 예를 들어, 보험 상품은 보험사 별, 상품 별로 특별히 차별화되는 게 없지만, 누가 어떻게 파느냐에 따라 성과는 크게 다르다. 즉, 세일즈맨이 전달하는 내용보다도 비언어적 요소가 더 중요할거라고 추측해 볼 수 있다.


과연 그럴까?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에 치중하는 판매원들의 성과가 실제로 더 좋을까?

2022년 미국 테네시 대학교 하슬람 비즈니스 스쿨의 니라지 바라드와지(Neeraj Bharadwaj) 교수 등의 연구진은 세일즈맨들의 감정 표현에 따른 판매 성과를 연구한 바 있다. 연구진들은 아마존 라이브, 페이스북 라이브, 타오바오 라이브 등 99,451개의 라이브 스트림 판매에서 세일즈맨들의 얼굴 표정과 판매 성과와의 관계를 분석했다. 얼굴 표정에서 추출한 감정은 기본 감정인 6개(행복, 슬픔, 놀람, 분노, 두려움, 혐오감)로 구분했고, 표정별 실제 거래 체결 내역을 조사했다.


다양한 표정으로 상품을 설명하는 쇼호스트를 떠올려보자. 연구 결과, 어떤 표정이 가장 효과적이었을까?


표정은 중요하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진지한 설명이었다. 특히 제품에 대한 설명이 한창이어야 할 중간 즈음에 너무 밝은 표정은 오히려 구매 저항감을 일으켰다.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메라비언의 법칙은 세일즈 장면에서 작동하지 않았다. 세일즈에서 소비자를 구매로 이끄는 것은 세일즈맨의 태도가 아니라, 세일즈맨이 하는 말이다. 우리는 종종 설득에서 표정의 영향력(파토스)을 과장하고, 말의 내용의 영향력(로고스)을 과소평가한다.


하지만, 말의 내용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렇다고 표정의 영향력이 없으니 무시하라는 말이 아니다. 행복감의 경우, 처음과 끝 부분의 영향력이 있었다. 즉, 세일즈에서 좋은 인상을 심어주고 내용을 전달하는 것은 중요하다 할 수 있다. 하지만 프레젠테이션에 집중해야 할 중간 즈음에 행복한 표정은 판매에 부정적이었다. 실제 내용보다 표현 방식만이 강조된 세일즈 기법을 소비자들은 의심하기 때문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사람들은 세일즈를 포함한 설득 장면에서 메라비언의 법칙이 잘 작동될 것으로 믿고 있지만, 실제는 비주얼로 보여지는 표정이나 목소리의 톤보다 정직하고 진솔한 설명이 가장 중요하다.

  

출처: Bharadwaj, N., Ballings, M., Naik, P. A., Moore, M., & Arat, M. M. (2022). A New Livestream Retail Analytics Framework to Assess the Sales Impact of Emotional Displays. Journal of Marketing, 86(1), 27–47.


세상엔 잘못된 정보가 많다. 가짜 뉴스를 혐오하면서도 자기도 모르게 유포자가 되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누군가의 앞에 서서 가르치는 입장의 사람이라면 스스로 잘못된 정보를 생산하고 배포하고 있지는 않은지 늘 경계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비판적 사고와 과학적 사고가 필요하다. 아쉽게도 나는 내가 일하는 HRD 업계에서 이러한 사고를 충분히 갖춘 사람을 많이 만나지를 못했다. 잘못 알려진 메라비언의 법칙은 여전히 유행 중이다. 그것도 소통 분야의 최고의 인플루언서들에 의해서 말이다. 이런 사람들이 인플루언서가 안됐으면 좋았겠지만, 세상은 그렇게 공정하지 않다. 이 글을 읽고 공감하는 사람들부터 그런 사람들의 글을 안 보고 말을 안 듣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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