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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우 Nov 14. 2022

[브런치북] 아파 본 사람이 아픔을 안다?

자기계발서, 새빨간 거짓말

"아프냐, 나도 아프다"


다모(茶母)는 2003년 드라마지만, 이 대사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겐 우리나라 드라마 역사상 최고의 명대사로 남아 있다. 남이 아픈 것을 보며 자신도 아파하는 것을 공감이라고 한다. 다모인 채옥(하지원)은 신체적 고통을 느끼지만, 그걸 바라보는 윤(이서진)은 마음의 아픔을 느낀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공감을 느끼기 쉽다. 인간의 마음이 아이의 아픔을 부모가 즉각적으로 느끼게 설계되었기 때문에 인간은 생존과 번식에 유리할 있었다. 그래서 드라마의 이 장면은 윤이 채옥을 피를 나눈 가족만큼 아낀다는 함의가 깔려 있다고 할 수 있다.


가족이나 친구와 같은 가까운 사이에 느끼는 이러한 공감과는 달리, 조직에서는 이런 장면을 접하기 쉽지 않다. 오히려 남의 아픔을 기뻐하는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 남의 불행이나 고통을 보았을 때 기쁨을 느끼는 심리)가 일상인 조직도 흔하다. 이 조직의 구성원들은 상대의 아픔을 보며 겉으로는 위로하는 척 하지만, 속으로는 남의 불행이 그렇게 행복할 수 없다.


그렇다면, 조직에서 어떤 사람들이 타인의 고통에 더욱 잘 공감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현재 아픈 사람이 타인의 고통에 민감할 수 있다.


아프다는 것은 비단 신체적 고통(physical pain)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따돌림, 실연, 무시와 같은 사회적 고통(social pain)을 함께 말한다. 실제 우리 뇌는 신체적 고통과 사회적 고통을 구분하지 못한다. UCLA 심리학과 나오미 아이젠베르거(Naomi Esienberger)는 2003년 사이언스(Science)에 발표한 논문을 통해 사회적 고통을 느끼는 뇌와 신체적 고통을 느끼는 뇌가 동일함을 증명한 바 있다. 실험 대상자는 세 명이 서로 공을 주고 받는 컴퓨터 게임 프로그램에 참가하게 되는데 처음엔 사이좋게 공을 주고 받다가 어느 순간 실험 대상자를 뺀 나머지 둘만 공을 주고 받는다. 소위 말해, 사회적 따돌림을 받게 하는 상황을 연출한 것이다. 이때 관계에서 배제당한 사람의 뇌를 보면 전대상피질(anterior cingulate cortex)이 활성화되는데, 이는 물리적 사고나 폭력으로 인한 고통을 느끼는 부위와 동일한 영역이다. 모욕과 차별, 배신, 따돌림, 결별 등의 사회적 고통은 물리적 폭력만큼 혹은 그보다 더 아프다. 그냥 상상의 고통이 아니라 실제 더 큰 고통을 느낀다.


사회적 상황을 회피할 수 있는 환경이라면 그나마 나을 수 있다. 하지만, 군대와 같은 환경이라면 어떨까? 피할 수 없는 고통은 즐기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적어도 사회적 고통에 있어서만큼은 그렇게 말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생계가 달린 조직에서도 마찬가지로 사회적 상황을 회피하기 어렵다. 그래서 모욕과 차별과 같은 행위는 군대나 직장에서 보다 엄격히 다뤄져야 옳다.


신체적 고통을 느끼면 진통제를 복용하듯이, 사회적 고통도 진통제가 효과가 있지 않을까?


연구자들은 사회적 진통제가 사회적 고통에 효과가 있음을 확인했다. 게보린, 펜잘, 타이레놀, 아스피린 등의 진통제는 신체적 고통 경감에 효과가 있지만, 실연, 따돌림, 배신감을 치유하는 치료제이기도 하다. 직장에서 사회적 고통을 느끼고 있다면, 신체적 고통을 치유하는 방법과 똑같은 처방을 써야 한다. 진통제를 먹고, 죽과 같은 속편한 음식을 먹고 잠을 푹 자는 것이 우선이다.  


그런데, 진통제가 사회적 고통을 경감시킨다면 진통제를 복용한 사람은 타인의 고통에 둔감해지는 것은 아닐까?

연구자들은 진통제를 복용한 그룹이 그렇지 않은 그룹에 비해 타인의 고통에 덜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다시말해, 현재 내가 아프지 않으면 타인의 아픔을 잘 느끼지 못한다. 실패를 맛본 적이 없는 정치인은 결코 국민을 공감하지 못하고, 성공에 도취한 리더는 부하 직원의 아픔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만일 직장에서 당신이 아파할 때, 누군가의 위로가 가식적으로 느껴졌다면, 위로하는 그 순간에 상대가 보였던 표정이나 감정 때문이 아니라 당신을 위로한 후에 그 사람이 보인 모습 때문일 것이다. 현재 아픔을 느끼지 못한 사람은 그 순간만큼은 기가 막힌 연기력을 보일 수 있을지 몰라도, 그 순간과 상황을 벗어나면 본래의 기쁜 감정 상태를 금세 내비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참사 현장에서 눈물을 보였던 가식적인 정치인이 그 순간과 상황만 벗어나면 놀랍게도 빠르게 파안대소하는 장면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당신의 아픔을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도 아픈 사람이다. 진정한 위로는 실패와 좌절, 고통을 함께 경험한 사이에서 이뤄진다. 최근 Psychological Science에 Placebo Analgesia Reduces Costly Prosocial Helping to Lower Another Person’s Pain(September 29, 2022)이라는 제목의 논문이 발표됐다. 제목을 보면 위약 진통제가 다른 사람의 고통을 낮추기 위한 친사회적 행동을 낮춘다는 내용이다. 쉽게 말하자면, 진통 효과가 있는 것으로 착각한 약물을 복용한 사람들은 가짜 진통제를 복용하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타인의 고통을 경감시키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진짜 진통제가 아니라 진통제로 착각만 해도 사람들의 공감능력과 타인을 위한 친사회적 도움 행동이 떨어진다. 아프지 않다고 착각하는 것으로도 공감능력이 떨어진다니 이 점이 참 흥미롭고 씁쓸하다. 내가 현재 아픈 것이 항상 나쁜 것은 아니다. 주변의 아픔을 진정으로 공감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아파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어떨까?아픈 경험이 있다하더라도 현재 아프지 않으면 그 고통을 이해하지 못한다. 공감 간극 효과(empathy gap effect) 때문이다. 다이어트를 계획할 때는 한두 끼를 걸러 본 경험이 있어서 한두 끼 정도는 안먹고 버틸 수 있을 것 같지만 막상 허기를 느끼면 그제서야 쉽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경험을 했다 한들, 지금 그 감정이 아니면 충분히 공감하지 못한다. 현재 스트레스나 불편함을 겪고 있다면 타인의 스트레스를 비교적 정확히 이해할 수 있지만, 현재 편안한 상태라면 타인의 어려움을 공감하지 못한다. 


직장에서 여러 실패로 좌절하고 있다면, 과거에 진정으로 위로해주지 못했던 동료나 부하직원에게 담백한 한 마디를 건네 보기 바란다. "내가 겪어보니, 너도 참 힘들었겠다", "내가 아프니, 니 아픔을 알겠다". 아픔이 없는 조직이 좋은 조직이 아니라, 아픔을 이해하고 다룰 줄 아는 조직이 좋은 조직이고 좋은 리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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