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년 간(벌써!) 미국에 살면서 자주 생각해 봤고 사람들과 이야기도 몇 번씩 해보았던 주제. 흑인과 아시안의 갈등 또는 미국에서 어떤 인종의 삶이 더 힘든지, 누가 더 차별받고 무시당하는 가에 관한 주제. 그런데 누가 더 힘든지를 왜 따져야 할까? 더 힘들다고 인정받으면 이겼다는 생각이 들까? 왜 우리는 "너 보다 내가 더 힘들어"라는 인정을 왜 바랄까.
모든 유색 인종은 유사한 또는 상이한 형태의 인종 차별들을 겪는다. 역사, 피부색, 문화, 음식, 경제 수준, 인기, 트렌드 등에 의해 차별의 종류와 강도가 달라진다. 국제 학생으로 시작해서 학생 데이터 분석 연구원, 그리고 지금은 인종 평등 연구소에서 일하는 사람이 된 나는 인종 문제에 대한 생각이 지난 10년 간 무수히 바뀌고 깊어지고 나만의 생각과 철학이 좀 더 단단해졌다.
자신의 인종집단에 대한 차별에 분노하고 저항하고 정의를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면서도 아름다운 일이다. 우리의 선조 그전 세대들의 노력 및 저항으로 우리는 보다 편하고 보다 정의로운 세상에 살고 있다. 현시대에도 그러한 저항을 글로, 영상으로, 시위로, 정책으로 행동에 옮기는 사람들 덕분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들도 인생을 훨씬 더 편안하게 존중받으며 살아갈 수 있다. 만약, 마틴 루터킹이 없었다면.. 하 깝깝하다.
흑인들보다 아시안이 더 힘들다 혹은 흑인이 나쁘고 아시안은 불쌍하다는 생각들을 보고 들은 적이 여러 번 있다. 친절하게 내 의견을 말하기도 그냥 침묵하기도 속으로 그 사람을 무시하고 judgemental 한 태도를 취하기도 했다. 그걸 듣는 순간 그 사람들이 그런 주제에 좀 무지하고 이기적이고 불평하는 것을 좋아하고 또 자신이 가진 인종차별 관념을 보지 못하는 사람으로 느꼈다.
미국은 아시안이 살기 편한 나라가 아니다. 종종 생각한다 아시안 국가에서 살았더라면,, 향수병도 훨씬 적고 맘도 훨씬 편했을 것이다 심지어 언어를 잘 못하고 사회적으로 성공하지 못할지라도. 백인 나라인 미국은 직간접적인 차별이 무수히 많다. 10년 동안 적어지고 나아지는 변화를 보고 겪어왔지만 여전히 적다고 할 수 없다. 특히 교육 수준, 정치 성향, 지역에 따라서 아시아인에 대한 억압 및 차별이 심한 사례도 여전히 너무 많다. 보수주의자가 많고 인구수가 적고 백인이 대부분인 주는 여전히 무지한 일들이 왕왕 발생하고 있을 것이다. 가령 대학교나 비영리 기관에서 일을 하는 아시아인의 경우에 비교적 그런 경험을 적게 하게 되고, 하게 되더라고 직장동료로부터 당하는 경우는 적은 편이다. 일반 회사의 경우 더 흔하고, 대학학위를 요구하지 않는 일터의 경우에는 더더욱 심할 것이다. 인디애나에 유학 1년 차 학생으로 있을 때, 버스 정류장에 서 있는데 백인 남자 두 놈이 웃으며 소리를 지르며 차로 지나갔다. 그때 나를 포함 두 명의 아시안 두 명과 백인 커플 두 명 있었고 우리 넷 모두 매우 가까이 서있었지만, 그 놀림은 우리 두 명만을 향한 것이었다. 딱히 말이 아닌 소리를 지르며 조롱하며 신난 얼굴로 지나가던 20-30대 시골 백인남자 둘. 지금 생각해 보니 어마무시하게 한심하다. 그때는 그냥 화나는 경험이었는데, 그 나이 먹고 그 짓하고 있었다니.. 그때 그 유럽사람이었던 남자가 그 놈들에게 점잖이 욕을 했고, 시원하면서도 고마웠다.
또 한 번은 지미존스에 샌드위치를 사러 도서관에 걸어가고 있었다. 식당이 몇 개 있는 메인 캠퍼스 길 중 하나였고 아침저녁으로 자주 걸었던 10th street. 어린 백인 학생 놈들이 차를 세우더니 지미존스가 어디냐고 물어봤다. 흠 바로 근처에 있는 곳을 물어봐서 약간 이상했지만, 내가 지나온 방향을 가리키며 There이라고 하니, 셋이서 과장스럽게 웃으면서 There? There? 했다. 나는 그제야 알아차리고 아무 말하지 않고 쳐다보았고 그들은 지나갔다. 기분이 더러웠다. 다시 걸어가면서 아 뭐라고 할 걸 Shame on you 아니면 들고 있던 샌드위치를 던져버릴 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놈들이 대학 졸업해서 사회에 나가서 괜찮은 직장 또는 사업을 하며 편하게 살고 있을 사람들이다. 그 모습을 누가 찍었다면 인생이 조금 꼬였을 수도 있는데, 그 당시에는 얼마나 임팩트가 있었을지 모르겠다 지금은 꽤 클 수도 있는데 뭔가 아쉽다. 아무튼 이러한 일들은 아시안들에게 흔하게 발생하는 일들이다, 전반적으로 아시아 문화를 열등하게 보거나 아시아인들을 무시하고 놀려고 괜찮다고 백인 그리고 더 적은 비율의 흑인들이 생각한다. 가장 조용한 집단이고 사고를 치지 않고, 인구수도 적고 무언가 쿨 해 보이지 않는 인종의 이미지를 백인들이 우리에게 씌웠다.
흑인에 대한 가장 큰 차별문제는 흑인들의 안전과 목숨과 관련되어 있다. 경찰이 불러 세우는 순간 목숨의 위협를 느낄 수 있고 아마 거의 모든 흑인들이 느낄 것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에서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은 흑인 또는 작은 잘못을 저지른 흑인을 무차별적으로 폭행하거나 사살한 사례가 무수히 많다. 미국에 온 흑인들은 다른 인종들처럼 자신의 의지로 온 것이 아니라 노예로 끌려왔다. 시작점부터가 다른 것이다.
경찰의 흑인 폭행 및 살인 사건들을 처음으로 뉴스로 접했을 때 첫 느낌은 일단 너무 잔인했다. 너무 싫었다 그 경찰들이. 그러고 나서는 학교의 내 친구들을 생각했다. 내 친구들이 그러한 사건들이 발생할 때 느낄 감정, 친구들이 도로에서 경찰에 의해 차를 세워야 했을 때 느낄 공포감 및 불안. 내가 흑인이라면 경찰을 볼 때마다 나도 모르게 경직이 되고 행동이 어색해질 거 같고, 어떤 이유에서든 경찰차가 나를 쫓아온다면 극도의 공포심을 느낄 것이다. 제발 죽이지 마 제발 총 쏘지 마 제발 때리지 마 이렇게 마음속으로 되뇔 것이다. 슬펐다. 내 친구들은 오롯이 자신의 인종 때문에 그러한 스트레스와 불안을 평소에 지니고 다녀야 하는구나. 법을 준수하며 교육도 받고 사회에 기여하면 살고 있는데 단지 피부색만으로 나라의 가장 강력한 공공기관 중 하나인 경찰 들으로부터 위협을 느껴야 하는 현실. 미국 경찰이 가진 파워와 총기 소지는 이 문제를 더 최악으로 만든다.
경찰이 아시아인을 차별하는 경우는 많을 것이다 혹은 비꼬거나 무시하거나 유학생 시절 룸메이트도 당한 적이 있다. 하지만 아시안이 경찰과 마주할 때 물리적으로 위협을 느끼지는 않는다, 큰 잘못을 저지른 경우가 아니라면. 미국 사회에서 아시안을 잠재적 범죄자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흑인이 가장 심하고 그다음이 멕시칸 히스패닉이다. 모든 차별은 정당화될 수 없지만, 어떠한 차별 문제들이 더 심각한지는 개인이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다. 아시안으로써 흑인들이 겪는 현실을 어떻게 바라보고 그들의 차별에 반대하고 지지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모두가 해야하는 일이 아닐까?
Black Live Matter 시위에 참여하는 아시안, 백인, 멕시칸, 중동인 등의 흑인이 아닌 다른 인종 사람들, 그리고 Asian Hate Crime 시위에 참여하는 흑인, 멕시칸, 백인, 인디언 등의 모습은 아름답다. 타인의 아픔에 분노하고 행동하는 시민, 나에게 즉각적인 이익이 보이지 않는 일이라도 기꺼이 자신의 시간, 돈, 노력을 쓰는 사람들. 인종차별이 없어지는 것은 모든 인종에게 이로운 일이다. 사회적, 정서적,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모든 면에서 백인을 포함한 모든 이들이 이득을 볼 것 이다.
너보다 내가 더 힘들다는 마음이 드는 것은 인간으로서 자연스러운 생각일 수 있다. 그런데 그러한 생각, 논쟁, 갈등이 가져다주는 이득은 개인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하나도 없다. 궁극적으로 유색인종들이 서로를 지지하고 이해하려 해 보고 우리가 보게 되는 차별을 방관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사랑은 증오보다 강하고, 사랑은 차별을 없앨 수 있다. 어쩌면 사랑만이 바꿀 수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마틴 루터킹의 말처럼 증오는 지속가능하지 않고 그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은 너무나도 고통스럽다, 그렇기에 결국은 사랑이다 우리는 사랑하기로 결정해야 한다. 정의를 위해 사랑을 선택한다.
"I have decided to stick with love. Hate is a too great burden to bear."
"Hate cannot drive out hate. Only love can do that." - Martin Luther King, J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