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역대급 추위와 함께 아이의 개학이 도래했다. 이 얼마나 기대하고 고대하던 개학날이던가. 다행히 본인도 학교에 가는 걸 무척이나 좋아해서 나의 마음은 저 하늘로 두둥실 떠 오를 것만큼 가볍기만 했다. 아이가 방학일 때는 차를 마셔도 늘 불안했었다. 오늘은 출근해서 차를 마시는데 목 넘김이 가벼운 건 기본이고 달기까지 했다. 내가 돌봐야 하는 대상이 반경 몇 미터 안에 없는 채로 차를 마시는 호사라니.
나는 이렇게 홀가분하지만 우리 아이가 돌아간 자리에는 담임 선생님이 계신다. 방학이 되기 전에도 갓 유치원을 졸업한 아이들이 한 반에 가득한 걸 종종 상상해보곤 했다. 아무리 사랑이 가득한 분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고 해도 울컥울컥 올라올 때가 있을 텐데. 내가 그 공간에 있는 것도 아닌데 명치가 답답해 짐을 느낄 수 있었다. 아이는 선생님을 무척이나 따르고 좋아했다. 그래서 더 죄송했다. 우리 아이를 다시 돌려보내드려 말이다.
아이는 2학년을 목전에 둔 이번 방학에도 맨발로 자주 매장을 뛰어다녔고, 내 이름 석자를 크게 부를 때도 있었다. 하나부터 열 가지 필요한 게 있으면 나를 찾았고, 원하는 게 이루어지지 않으면 짜증부터 내고 볼 때도 있었다. 또 "싫은데~, 내가 왜?~"를 노래 부르 듯했다. 내게는 혀를 날름거리지만 않았지 놀리는 것과 매 한 가지였다. 가장 절정은 내 속이 얼마나 뒤집어지는 줄도 모르고 두 손바닥까지 합세해 네 발로 매장 바닥을 걸어 다닐 때였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시간이 흐른 만큼 성장한 구석도 많았다. 우선 내가 다이어트라도 선언하면 극구 말렸다. 엄마가 살 뺄 때가 어디 있냐며 엄마는 지금 이대로가 가장 이쁘니 절대 다이어트할 생각마라고 했다. 그럼 나는 내가 통통하다는 사실도 잊은 채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깃털이 되어 붕붕 떠다녔다. 혹시나 내가 다치면 가장 먼저 달려와 살피는 것도 우리 첫째였다. "엄마, 괜찮아?"하고 날 살피는 건 물론, 혹시 둘째가 그런 거라면 내 대신 둘째에게 혼을 내기까지 했다. 그게 과해 다시 내게 혼이 나기도 하지만. 그럼 또 집이 한바탕 초토화가 되는데 엄마는 내가 엄마 편들어주다 그런 건데 왜 그러냐며 토라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사랑스러웠다. 나를 아끼는 그 마음이 너무나 고마웠다. 할 줄 아는 요리가 한정적인 내 실력을 한없이 띄워주는 것도 우리 복덩이였다. 내가 만들어 내 온 음식에 엄지 척을 날려줄 때면 밤을 새워서라도 요리 연습을 하고 싶었다. 사랑한다는 말은 얼마나 잘하는지. 이제는 키가 훌쩍 커서 안아달라고 앉으면 뼈가 맞닿는 부분들이 아팠지만 하는 행동들이 귀여워 키만 컸지 아기가 따로 없다는 생각을 했다. 몹시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제 동생한테 제 손에 든 걸 수월케 양보하고, 알뜰살뜰 챙기는 걸 보고 있자면 마음까지 따뜻하게 데워졌다.
아이는 집에서 만큼은 아니더라도 손이 많이 갈 테지만 귀여운 구석도 많으니 선생님도 나처럼 긍정 회로를 돌리시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선생님한테는 퇴근이라는 게 있으니 그 시간 동안 에너지를 충족시키고 돌아오시겠지 희망했다. 아무튼 우리 아이를 맡아주시는 선생님이 눈물 나게 감사했다. 나는 이제 홀가분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웬일인지 하루 종일 함께 있었을 때보다 더 많은 시간 아이를 생각했다. 좋은 기억들이 많았지만, 내 부족한 부분으로 인해 아이를 상처 줬던 기억이 떠올랐다. 누가 여덟 살 아이와 말싸움을 할까. 누가 여덟 살 아이에게 진심으로 화를 낼까.
어제도 마찬가지였다. 명절 연휴 끝 집 청소를 하며 첫째에게 장난감만 좀 통에 담아달라고 했다. 처음에 내가 "할 수 있을 만큼만 하라."라고 한 말이 문제가 됐다. 정말 하고 싶은 만큼 아주 조금만 담아 놓았기 때문이다. 그 모습을 보고 남은 걸 좀 더 치우라고 했더니 왜 엄마는 엄마가 한 말에 책임도 안 지냐고 발끈했다. 나도 지지 않고 그건 네가 어지럽힌 거니 네가 치우는 게 맞다고 했다. 그러자 자신이 어지럽힌 게 아니며 엄마가 동생을 잘 돌보지 않아서 동생이 어지럽혔으니 엄마가 치워야 한다고 했다. 난 그 말을 듣는 순간 이성을 잃고 날뛰기 시작했다. 잠깐 외출을 하고 돌아온 신랑이 이 상황을 수습하고자 애를 썼지만 애꿎은 불똥이 신랑에게까지 날아갈 만큼 흥분을 했다. 내가 정성을 다해 너희를 돌보는 걸 네가 알아주진 못 해도 내가 누구를 못 돌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말까지는 정말로 듣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이 그런 말을 했어도 그렇게까지 화가 났을까. 너무 가까우니까 더 상처받았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아이는 그렇게 깊은 생각을 하고 내게 말하지 않는다.
"그렇게 말하면 엄마도 상처받아." 하고 한마디 하고 끝냈으면 됐을 텐데 왜 이성까지 잃고 화를 냈을까. 다 큰 어른이 아니라 여덟 살 아이라는 사실만 기억해 내도 저 아이가 내 말을 무시하는 거 같다는 착각도 날 함부로 대하고 있다는 오해도 하지 않을 수 있었을 텐데. 나는 아이를 아이 그 자체로 보는 게 부족했다. 내가 여덟 살 때 어땠는지를 돌이켜만 봐도 괜찮았을 텐데. 그리고 아무리 치울 게 많았어도 다 치우고 마지막에 내가 그곳을 치웠으면 됐다는 생각도 들었다. 뭔가를 바라고 요구하면 그게 싸움으로 번지기도 하니까. 싸우기 전 상황에서 양보할 수 없다는 마음을 버리고 좋은 말로 아이가 받아들일 만한 규칙을 정해 보는 건 어떨까.
그리고 나쁜 말이 나올 거 같으면 차라리 말을 하지 말고 자리를 피해야겠다 생각했다. 가장 가깝고 사랑하는 엄마가 자신에게 나쁜 말을 하는 걸 들으면 아이는 자신감은 물론 자존감도 떨어질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말은 내 진심이 아니다. 그 자리를 피한다고 발걸음을 재촉하는 동안 화를 누그러뜨리는 건 물론 상황을 제대로 마주할 수 있는 힘이 생길 것이다.
아이에게 화가 났을 때 한 나쁜 습관들을 적어보기로 했다. 나쁜 말 하기, 소리 지르기, 화내기, 나도 모르게 동생 편들기, 상황 설명도 제대로 들어보지 않고 혼내기, 잔소리하기 등등. '뭐든 근거로 남기고, 그걸 눈으로 보면 더 객관적으로 상황을 볼 수 있겠지.' 항목을 정해 적고 나면 내가 얼마나 그것들을 습관적으로 하는지를 체크할 것이다. 그리고 비고를 만들어 그 말이나 행동을 하게 된 상황을 적어볼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 저런 행동들을 하는지 원인을 분석해 본다면 같은 상황이 닥치더라도 '아. 난 이 상황에서 화를 냈었지.'하고 내 감정을 알아차릴 수 있을 테니까. 내 감정을 알아차린다면 오히려 더 화가 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고치고 나아가다 보면 어느새 아이도 2학년에 걸맞게 더 성장해 있을 것이다. 내가 2학년 아이의 엄마에 맞게 성장해 있듯이. 나는 어제보다는 오늘, 오늘 보다는 내일, 조금 더 나은 엄마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