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앓고 있다 하더라도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예사롭지 않은 기침소리가 공간을 가득 채운다. 내 주먹보다도 작은 심장을 가졌을 아이가 쉴 새 없이 기침을 해서이다. 한번 "쿨럭" 재채기를 해도 신경이 쓰일 텐데, 허리가 굽을 만큼 깊은 기침을 하는 아이를 보는 건 무척이나 고통스러운 일이다. 다섯 살밖에 되지 않는 저 조그만 몸이 아플 때가 어디 있다고, 내가 대신 아프고 말지.
그리고 며칠 후 그 소원이 이루어졌다. 병원에 데리고 가 기관지염이라는 병명을 알게 되고, 폐렴으로 가기 전에 와서 다행이란 말을 들은 둘째 복숭이는 주는 약을 착실히 먹고 이틀 정도 후에 기관지염이 똑 떨어졌다.
하지만 아이들은 아프면 엄마부터 찾았다. 품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 기침을 쉴 새 없이 하는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게 품에 안아주는 것밖에 없었기에 품에 끼고 살았다. 내 얼굴에 계속 기침을 해도 상관없었다. 볼을 비벼 체온을 체크했다. 토닥거리고, 안아주고, 업어주며 아이를 어르고 달랬다.
아이가 아플 때만 해도 내가 대신 아팠으면 좋겠다고 빌었는데, 이젠 아이도 나도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단 생각이 자꾸만 든다. 덩치가 커도 아픈 거는 마찬가지였다. 풀어도 풀어도 차는 코도, 뱉어도 뱉어도 생기는 가래도 사람을 지치게 한다. 뭐 하나 집중도 잘 되지 않고, 하루가 엿가락 늘어나듯 길게만 느껴진다.
하지만 그렇다고 또 삶의 질이 마구 떨어지는 건 아니었다. 나는 그게 몹시나 신기해서 자꾸 되뇌고 되뇌었다. 내 몸에 아플 수 있는 부위가 얼마나 많은지에 대해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그 모든 부위가 제 구실을 해주니 얼마나 감사하던지. 이 정도라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는 안도의 생각까지 들었다.
낫고 나면 정말 더 열심히 살고, 부지런하게 살고, 의욕이 넘치게 살아야지 다짐하지만 그것도 잠시 아플 때뿐인 것 같다. 그래도 평소에 잘 생각해보지 않았던 부분들을 떠올릴 수 있어 이렇게 가끔 아픈 것도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다.
사실 여기까지가 끝이면 얼마나 좋았을까. 초등학교 삼 학년 첫째 복덩이가 나와 증상이 같았다. 기침을 할 때면 내 속이 버쩍버쩍 마르는데, 둘째 때와 마찬가지로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서 애가 타기만 한다.
그래도 첫째는 많이 컸다고, 내 약한 부분을 캐치해 이용하기도 하는데 바로 공부시간을 줄이는 일이다. 다른 걸 할 때는 덜하다 공부를 하러 가라고 하면 더욱 심하게 기침을 한다. 나는 사실 이게 연기인지 진짜인지 헷갈릴 때가 많은데 둘 중 어느 거라고 해도 그걸 보고 있는 마음이 편한 게 아니라서 아이가 말하기도 전에 먼저 선수를 쳐버린다. 오늘은 덜 하라고. 엄마 옆에 와서 쉬라고. 또는 엄마 옆에 와서 함께 티브이를 보자고.
아픈 사람 둘이서 매일 함께 붙어있어 그런가. 우리 둘은 꽤 오래 낫지를 않는다. 조금이라도 나아지려 하면 다시 증상이 솟구치고, 나아지려 하면 컨디션이 확 떨어져 버린다. 둘째는 그런 우리 사이에 있어도 이제 끄떡없어 보인다. 이미 항체가 생겨서 그런가 보다 하고 한숨 돌리지만, 둘째를 낫게 하느라, 또 이제는 첫째를 돌보느라 내 몸을 보살필 시간적 여유도 심적 여유도 없다.
일적으로도 할 일이 넘치고, 공모전에 낼 동화도 또 적어야 하는데 그것조차 진행이 되질 않는다. 마음은 급한데 몸이 따라주질 않으니 매일같이 종종걸음이다.
당장 몸이 이 지경이면서 다가오는 주말에는 또 동물원 계획을 짜 놓았다.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을 조금도 허투루 보내고 싶지 않아서이다. 정말 첫째를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인데 언제 이렇게 커버렸을까, 그동안 내가 해주지 못한 것들이 떠오르며 시간이 너무 아깝다. 지금도 이렇게 좋고 귀여운데 이제 조금만 있으면 친구들과 노는 걸 더 재밌어할 텐데 그전까지만이라도 최선을 다해 아이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
한 시간 반 정도가 걸려 가는 차 안에서 나는 아마 기절한 듯이 잠들지도 모르겠다. 그때뿐이라도 좀 쉴 수 있다면 정말 달콤할 텐데. 하지만 그것도 꿈일 뿐이다. 요새 둘째가 차를 타면 얼마가 걸리든 쉬지 않고 말을 하는데 호응을 해줘야 한다. 내가 자려고 하면 눈물까지 뚝뚝 흘리면서 뜯어말린다. 장거리 여행을 할 때는 차에서 내리면 대답해 주느라 목이 쉬어있을 정도다. 그래도 다섯 살 특유의 말투로 이야기를 하는 걸 보면 힐링이 절로 된다. 얼마나 귀여운지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지경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이토록 순수할 수 있다니 절로 웃음이 지어진다.
첫째도 마찬가지다. 요새 방과 후 수업에 요리를 배우고 싶대서 신청을 해줬더니 월남쌈부터 고구마빵까지 만들어오는 것들이 죄다 수준급 요리들이다. 맛은 또 얼마나 있던지. 입에 넣자마자 재료들이 폭죽처럼 펑펑 터져서 환호성이 터져 나올 정도이다. 내가 이렇게 표현하면 첫째는 내 엄마라서 그런 거 아니냐며 말하지만 속으로는 나를 닮아 무척이나 좋아하고 있을 것이다.
요리를 배우는 이유도 너무 기발했는데 자신의 아이가 태어났을 때 자신이 만든 음식을 먹고 웃는 걸 보면 얼마나 행복할까 하고 말을 했기 때문이다. 고작 열 살짜리 아이가 벌써 자신의 아이를 낳고, 자신의 아이에게 음식을 해먹일 생각을 하다니. 거기다 그걸 먹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행복해할 자신을 떠올리다니. 나는 순간적으로 입이 떡 벌어졌다.
그런 귀한 마음으로 만들어 온 음식들은 늘 가져오면 꼭 내 몫으로 먼저 내어준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엄마는 꼭 먹어야 한다면서 말이다. 그리고 내가 먹는 모습을 기대하며 지켜본다. 그 작고 까만 눈으로 말이다.
이런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내가 키우고 있다니. 그러니 지금 앓고 있다 하더라도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매일 같이 "엄마"라고 불러주며, 날 찾아주고, 나와 이야기를 나눠주고, 내게 볼을 비비고, 내 품에 안기는 걸 가장 좋아하는 이 두 아이가 있어서 삶이 다채로운 색상으로 가득 채워지는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