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사람들이 -나를 포함해서- 으레 써내려가는 연대기가 있다면 그건 다름 아닌 폭식 연대기일 것이다.
스트레스로 폭식하고 폭식하다가 몸을 망치고 하지만 또 일터에서는, 그 외의 주변에서는 각종 스트레스를 다시금 쏟아붓고 그로 인해 또 폭식하고 그러다 결국 죽음에 이르는 모순적 순환고리. 애석하게도 미각은 우리 몸에 한참 해로운 방향으로만 발달해버렸고 그 결과 몸 속에는 나트륨과 msg만이 쌓여간다. 간은 365일 24시간 조금도 쉬는 찰나 없이 해독 작용을 하느라 고생을 거듭하고 암인지 뭔지 하는 무시무시한 혹은 우리의 소중한 장기에서 무럭무럭 자라난다. 혈관은 기름이 섞여 진득한 굳은 피로 막혀버리고 지방은 팔밑 아랫배 옆구리 허벅지에서 세력을 넓힌다.
각화되는 몸뚱이를 느끼는가. 아니, 체감하는가.
하루도 수십개의 뉴스, 기사, 영상은 쏟아져 나온다.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규칙적이고 균형잡힌 식습관의 중요성 따위를 강조한다. 말미에는 식습관 개선을 위한 상세한 지침들도 친절하게 달아놓는다. 하루에 하나씩만 실천하라는, 꽤 혹하는 멘트가 함께 딸려나온다.
하지만 그걸 본다고 뭐가 달라질까. 다 마음의 문제인 것을. 정신적으로 아프지 않도록 하는 것, 그래서 맵고 짠맛의 자극을 떠올리지 않도록 하는 것. 폭식의 순환고리를 끊으려면 아무리 봐도 이 방법밖에 없다.
하지만 이 각박한 세상 속의 일개미들에게 정신적으로 온전히 건강할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하냐는 말이다.
얼마 전에도 엽떡을 주문해서 당면과 치즈를 왕창 때려넣고 그 무거운 것을 입안에도 때려 넣었다. 떡이 입안에 들어와 질겅질겅 씹힐 때는 참으로 짜릿하고 즐거웠다. 이런 종류의 강렬한 자극. 이런 종류의 짜릿함. 저작운동을 하며 나는 그날의 스트레스를 함께 씹어 삼켰다. 그렇게 스트레스라는 독소를 잘게 잘게 소화시켰다.
내 손가락은 지금도 배달음식 어플을 누르고, 맵고 짠 어떤 음식의 아이콘 위에서 배회하고 있다. 내 의지는 아니라고 믿고 싶지만, 오늘도 써내려간다. 나의 폭식 연대기. 사회생활이 계속되는 이상 그것의 마지막 페이지는 존재할 수 없겠지. 괜시리 서글퍼지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