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아빠의 늘어가는 주름을 보고 그들과의 공생에도 끝이 있으리라 실감한다.
마지막을 생각하면 슬퍼진다. 아무리 세상에 영원한 건 없다지만, 그들은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그 자리에 있었으면 좋겠다.
집에 가면 한달음에 달려나와 나를 맞이해줬으면 좋겠고, 아프다는 말을 달고 살아도 그게 병원을 드나들 정도는 아니었으면 좋겠고, 퇴직 후 조금이라도 더 의미있는 삶을 꿈꾸며 바쁘게 몸을 움직였으면 좋겠고, 항상 그렇게 하루하루 살아가고 살림을 꾸려나가는 데 열정적이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내가 지금 엄마 아빠 나이 즈음을 먹고 중년의 주름을 가질 때가 되었을 때, 그들은 여전히 나에게, 그래, 그때 쯤 되면 어깨가 뻐근하니 쑤실 때야, 그때 쯤에는 얼굴에 그렇게 열이 오르고 사소한 일에도 화가 나. 그래도 살 만한 나이야. 별 것 아니라는 듯 평범한 미소로 나를 달래줬으면 좋겠다.
그래서 물 흐르듯 무덤덤하게 할머니가 되고 싶다. 그때에도 아주 노년인 우리 엄마 아빠는 초연한 척하는 노년의 나에게 매번 습관처럼 지어대는 그 평범하디 평범한 미소를 지어줬으면 좋겠다. 그리고선 평화롭게 누워있는 우리집 막내 나루의 등허리를 쓸면서 나에게 말해줬으면 좋겠다. 머리 어깨 무릎 발이 다 쑤셔도 여전히 살 만한 나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