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문학에서 해답찾기 - <영혼의 집> 편
<영혼의 집>을 다 읽었다. 1권은 약 400페이지, 2권은 약 300페이지. 총 700페이지 분량의 대서사시였다. 이사벨 아옌데는 그 방대한 지면에 트루에바 가문의 흥망성쇠로 라틴아메리카의 격동하는 근대사를 밀도 높게 표현해냈다. 아주 존경스러운 작업이 아닐 수 없다.
<영혼의 집>은 에스테반과 클라라가 결혼하며 새로 지은 모퉁이 집의 별칭이다. 모퉁이 집은 영혼과 소통하고 미래를 예언할 줄 아는 클라라 덕에 항상 영혼과 활기로 넘쳐났기 때문이다. (클라라가 죽으면서 쇠락의 시대가 시작되지만)
창작과 관련해서는 인물의 속내를 미묘하고 세밀하게 포착하는 서술, 그리고 인간의 본능을 꿰뚫는 서술이 인상깊었다. 특히 3인칭과 1인칭(에스테반 시점)을 번갈아 사용하면서, 주인공인 에스테반 트루에바가 변해가는 과정을 주제의식이 잘 드러나도록 표현해냈다. 나쁜사람에서 착한사람으로의 단순한 이행이 아니라, 분노한 사람에서 분노가 사라진 사람으로 변하는 과정. 이를 통해 분노가 얼마나 지독한 불행을 낳는지를 깨닫게 한다.
모든 인간의 마음엔 욕망이 잠복하고 있다. 하지만 욕망은 하나가 아니어서, 서로 다른 것들끼리 충돌하고, 항상 줄다리기를 한다. 또, 드러내도 괜찮은 욕망이 있는 반면, 드러내면 큰일이(?) 나는 욕망도 존재한다. 그래서 인간은 타인과 교류할 때 페르소나를 만들어낸다. 새어나가면 안되는 욕망을 단속하려고.
이를 창작과 관련지어 말해보자면, 욕망의 충돌을 더 세밀하게 구현해낼 수록 캐릭터는 더 인간다워지는 것 같다. 서로 다른 욕망의 힘겨루기를 견디지 못해 뚝딱거리는, 모순적인 인간의 모습. 그리고 <영혼의집>의 캐릭터들은 유독 그런 점들을 잘 드러낸다. 그래서 그 중 세 캐릭터를 중심으로 그들이 지닌 욕망과, 그 욕망들이 충돌하는 양상을 간단히 분석해보려고 한다.
에스테반의 누이인 페룰라가 나에게 가장 흥미로운 캐릭터였다. 페룰라는 어머니의 병을 핑계로 청혼자를 물리치고, 성녀처럼 살아가며 가톨릭적 귀감이 되려고 한다. 기독교에서는 인간은 선행을 베풀어야 하고, 천국에서 그 댓가를 얻을 것이라 가르친다. 이를 지키기 위해 가난한 이들과 항상 함께 해야 하고, 병든 부모님과 어린 동생을 보살펴야 하고, 색욕을 멀리해야 한다. 그래야만 기독교적 질서가 지배한 이 사회에서 인정받을 수가 있다.
"페룰라는 금요일마다 가난한 사람들과 무신론자, 창녀, 고아들을 위해 기도를 드리러 미세리코르디아 지역의 빈민가에 갔다. 그곳 사람들은 페룰라에게 쓰레기를 던지고 요강을 쏟고 침을 뱉었다. 그래도 페룰라는 빈민가 골목에 무릎을 끓고 앉아서 가난한 사람들이 뿌린 구정물과 무신론자들이 뱉은 침과 창녀들이 버린 허드레 물건과 고아들이 던지를 쓰레기를 잔뜩 뒤집어 쓴 채 하느님 아버지와 성모 마리리아를 그치지 않고 계속 찾으면서 자신들이 무슨 짓을 저지르고 있는지 모르는 저 사람들을 용서해달라고 간청했다."(p.159, 1권)
하지만 남동생 에스테반은 페룰라처럼 금욕적이고 모범적인 삶을 살지 않고 번 돈도 흥청망청 쓴다. 불만이 샘솟는다. 이렇게 살아봤자 어떠한 댓가도 받지 못하는 삶, 억울한 마음도 생겨난다. 에스테반의 자유는 곧 부당해보이기 시작한다. 그래서 페룰라는 에스테반이 죄책감을 가지게 만든다. 항상 이렇게 고생스럽게 살아가는 나를 기억하라고. 에스테반은 누나의 고생을, 인정받고 싶은 마음을 몰라주니까. 페룰라의 모든 욕망에 무관심하니까.
"페룰라는 지금 어머니를 보살피는 정성으로 에스테반을 보살피고 시중을 들어주면서도, 한편으로는 동생이 죄책감을 느끼도록 보이지 않는 그물을 쳐서 동생을 옭아매었다. 에스테반이 돈으로는 갚을 수 없는 누나의 은혜에 평생 빚진 마음으로 살게 만들었다.(p.83, 1권)"
이러한 인정욕과는 또 별개로, 페룰라는 깊은 관계와 사랑에 대한 강한 욕망도 가지고 있다. 그렇게 두 욕망은 충돌한다. 선행을 베풀며 살아가는 성녀가 되어야 하지만, 누군가를 소유하고 진정으로 사랑하고 싶다.
"페룰라는 오로지 어마어마한 사랑 하나만을 위해 태어난 그런 사람이었다. 엄청난 증오나 끔찍한 복수, 가장 숭고한 영웅심을 위해 태어난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그녀는 자신의 운명을 그렇게 낭만적으로 풀어나갈 수 없었다. ... 어머니가 되기 위해, 대의명분을 위해, 열정을 위해, 풍요를 위해 뜨거운 피를 가지고 태어난 덩치 크고 풍만한 여자가 그렇게 자신을 소진하며 살아야 했던 것이다."(p.194, 1권)
그래서 페룰라는 클라라가 뺨에 한번 입을 맞추어 주었을 뿐인데도 눈물을 보인다. 사소한 애정 표현이 너무 절실했던 것이다. 그래서 결국 페룰라는 "시누이라기보다는 욕심 많은 남편의 질투심 비슷한 열정으로" (p.224, 1권) 클라라를 사랑하게 된다. 클라라는 매일 병든 어머니를 보살피는 고생과 욕구의 인내로 점철된 삶에서 유일하게 페룰라의 욕망을 충족시켜준 인물이다.
"페룰라 형님, 난 항상 형님을 생각했어요. 실은 형님이 떠난 이후로 형님만큼 저를 끔찍이 사랑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답니다."(p.266, 1권)
하지만 하남자 에스테반이 이를 두고 보고 있을리가. 지진이 일어난 날 클라라에 대한 걱정과 지진에 대한 공포로 페룰라는 클라라의 침대로 가서 함께 잠을 잤다. 이를 목격한 에스테반은 분노해서 페룰라를 집에서 쫓아낸다. 그렇게 페룰라는 사랑하는 클라라와 생이별을 하게 된다. 에스테반은 자신의 욕망을 표출하기 바빴을 뿐 단 한번도 페룰라의 욕망에 신경 쓴 적이 없었다.
에스테반은 페룰라를 쫓아내고선 매달 돈을 보내며 자신의 죄책감을 덜어내려고 한다. 하지만 페룰라에게 필요했던 건 돈이 아니라 진정한 사랑이었는걸. 그래서 클라라에게 집착했고 그 누구보다, 어쩌면 남편인 에스테반보다도 더더욱 클라라를 사랑했다.
인간은 사랑없이 살 수 없다. 하지만 당시의 보수적인 가톨릭은 사랑하지 못하게 하면서 사랑을 베풀도록 강요했다. 그래서일까, 페룰라의 비극이 카톨릭에 대한 비판으로 읽히기도 한다. 이사벨 아옌데의 돌려까기 기지가 돋보이는 지점이다.
블랑카는 에스테반과 클라라의 맏딸로 속물적인 캐릭터의 전형이다. 평민 출신의 사회주의 운동가 페드로 테르세로를 사랑하지만 귀족으로 살아온 삶을 버리지 못하고 프랑스 백작과 결혼을 한다. 근데 사실 이건 다른 작품에서도 꽤 많이 나오는 흔한 설정인 것 같기도. <위대한 개츠비>의 여주인공 데이지가 그 대표격이라고 할 수 있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입 냄새가 나는 것도 싫었으며, 일요일 아침에 나른하게 늘어져 있는 것도 싫었고, 나이가 들면서 아파서 골골하는 것도 싫었다."(p.117,2권)
"사실 블랑카는 판에 박힌 일상만큼이나 페드로 테르세로의 생활 방식과 못사는 동네에 위치한, 아연과 판자를 엮어서 지은 초라하고 작은 그의 집도 소름이 끼치도록 두려웠다."(p.118, 2권)
하지만 조금 다른 지점은 블랑카는 평생 진심으로, 온 마음을 다해 페드로 테르세로를 사랑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 사랑을 어떻게든 지켜가고, 페드로 테르세로를 포기하지 않는다.
"블랑카는 단 한 남자만을 사랑하도록 운명 지워졌기 때문에 그녀의 인생에서는 페드로 테르세로가 유일한 남자였다. 변치 않는 그 절대적인 사랑의 힘 덕분에 따분하고 서글픈 운명을 나름대로 잘 버텨나갈 수 있었다."(p.116, 2권)
블랑카는 사랑이 많은 만큼 또 지독한 실리주의자이다. 사회주의 계열의 대통령이 정권을 잡자, 제국주의자들의 음모로 모든 물자 공급망은 마비된다. 그렇게 전국민이 식량부족 문제를 겪게 되는 그 시점에, 그래도 귀족인 덕에 먹고 살만했던 블랑카는 식량을 나눠 줄 생각보다는 쌓아 둘 생각을 한다. 그리고 프랑스 백작과 이혼을 한 뒤에도 블랑카는 집을 나와 페드로 테르세로와 가정을 꾸릴 생각은 하지 않고, 끔찍이도 혐오하는 아버지이지만, 에스테반의 부에 계속 얹혀 살 생각을 한다.
"블랑카는 트레스 마리아스에서 정기적으로 식품 상자들이 배달될 때마다 얼른 감춰버렸다. ... 블랑카는 자신의 보물을 남과 공유하려 하지 않았다. 알바는 그제야 자기 집안에서 유일하게 정상적인 사람이라고 믿었던 엄마마저 광적인 기질을 지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렇게 블랑카는 자신의 욕망을 제어하지 못하고 때때로 광기를 드러내는데, 창작과 관련하여 블랑카에 주목한 점이 이 '광기' 때문이다. 지극히 평면적인 캐릭터 같지만, 그 광기가 캐릭터에 입체감을 더한다. 페드로 테르세로가 독재자의 눈을 피해 모퉁이 집에 숨어 있을 때 그 광기가 절정을 찍는다.
사회주의 운동을 하다가 대통령의 눈에 든 페드로 테르세로는 나름 고위직 공무원으로 고용된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쿠데타가 터지고 군인에게 쫓기다가 몇달 간 모퉁이 집의 좁은 방에 은신해 있게 된다.그때 둘은 공포와 열정에 휩싸여 격렬하게 사랑을 나눈다. (서술도 나름 구체적이다. 역시 라틴 소설의 에로티즘이란) 페드로 테르세로는 이런 감옥같은 생활이 답답하고 견디기 고통스럽다. 그래서 시간이 갈수록 마르고 여위어 간다. 하지만 반대로 블랑카는 발걸음도 경쾌해지고, 목소리도 낭랑해지고, 피부도 탄탄해진다. 복도를 걸으며 콧노래도 부르고 성격도 좋아진다. 마치 블랑카가 모든 기운을 빼앗아간 것처럼ㅋㅋ 이처럼 유머러스하면서도 생각할게 많아지는 대비는 흔치 않다.
사실 블랑카의 입장에서, 상황이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블랑카의 모든 욕구가 충족되었기 때문이다. 귀족으로서의 삶도 여전히 누리면서, 나의 페드로 테르세로를 매일 편히 볼 수 있고, 원할 때마다 사랑을 나눌 수 있다. 블랑카에게는 이런 일상이 두 욕망이 균형을 이룬, 이상적인 일상일테니까.
그래도 결국 사랑에 대한 욕망이 승기를 가져간다. 블랑카는 페드로 테르세로와 함께 캐나다로 망명해서 행복하게 살게 되었기 때문이다. 어찌보면 가장 마음 편한 결말이 아닐까. 사랑이 이기는 결말. 그래서 좋은 마음으로 둘의 행복을 빌어줄 수 있는 결말. 사랑이 이겼다는 말에 누가 토를 달 수 있을까.
가장 표면적인 주인공인 에스테반 트루에바.(사실 진짜 주인공은 알바라고 생각한다.) 에스테반은 고집불통에다가, 원주민 여성에게 강간을 일삼고, 물질만능주의자에 성격파탄자이다. 따지고 보면 가장 많은 욕망을 가지고 있어서 가장 큰 욕구불만에 시달리고, 결론적으론 가장 외롭고 불행한 삶을 살게되는 캐릭터이다.(당시 제국주의자의 전형을 그리려고 한 것 같기도)
에스테반은 사랑에 대한 욕망도 강하고, 또 그만큼 "내가 옳았음"을 증명하고 싶은 욕망도 강하고, 재물에 대한 욕망도 강하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그를 잘 설명할 수 있는 수식어는 "분노를 표출하고 싶은" 욕망이 강한 캐릭터가 아닐까.
"에스테반의 어린 시절은 박탈감과 불편함, 궁핍, 밤이면 끝없이 되풀이되는 묵주 기도, 두려움, 그리고 죄의식으로 점철된 시간이었다. 그 결과 그에게는 분노와 엄청난 자존심만이 남게 되었다."(p.89, 1권)
에스테반도 불안정한 시기에 태어나 참 불우한 유년시절을 견뎌야 했던 건 분명하다. 몰락 귀족의 집안에서 가난하게 자란 탓에 성공하겠다는 독기를 품고 커왔다. 그러다보니 타인의 시선도 참 많이 신경쓴다. "사람들의 조롱을 두려워하는 에스테반 트루에바"(p.219)는 성공한 사람이자 유서깊은 귀족으로 보여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 그래서 블랑카가 강제로 프랑스 백작과 결혼하게 만들고, 니콜라스가 열었던 댄스 클래스도 폐지시키고, 클라라와 쇼윈도 부부로서의 삶을 이어간다.
너무 어렸을 때부터 차곡차곡 쌓여온 분노 탓에 에스테반은 분노를 폭력적으로 표출하곤 했다.
"에스테반은 화가 치밀어 예전의 나쁜 버릇이 도졌다. ... 건장한 시골 처녀들을 넝쿨 숲에 넘어뜨렸다."(p.229, 1권)
그렇게 지주로 있었던 작은 마을 트레스 마리아스의 젊은 처녀들에게 강간을 일삼고선 자기 아이를 임신한 어린 여성들을 외면했다. (이런 나쁜짓은 결국 자신의 사생아가 사랑하는 손녀딸 알바에게 끔찍한 고문을 가함으로써 모두 다 되돌아온다. 이런 사필귀정 스토리. 아주 맘에 들어.) 또 그런 분노를 애꿎은 사회주의자들에게 풀고, 블랑카가 사랑하는 페드로 테르세로의 손가락을 도끼로 자르기도 한다. 그가 저지른 끔찍한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이런 비호감 행보에도 불구하고 그는 참 불쌍한 캐릭터다. 그토록 사랑받고 싶었던 사람으로부터 단 한번도 사랑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첫사랑이자 클라라의 언니였던 로사는 사고로 독극물이 든 차를 마셔서 죽고, 그 이후 사랑하게 된 클라라로부터도 사랑받지 못한다.
안타깝게도 그의 모든 표현 방식이 틀렸다. 자신의 욕망을 보류할 줄 몰랐기 때문이다. 사랑받고 싶고, 분노를 표출하고 싶고, 옳고 싶은 모든 욕망을 표현할줄만 알 뿐 타인의 욕망에는 관심이 없었다. 이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죽기전 미리 자신의 무덤을 만드는 장면인데, 아주 호화로운 무덤 한 가운데에 사랑하는 클라라와 로사의 조각상을 세운다. 그럼 뭐하나. 이미 로사는 죽어버렸고, 클라라는 에스테반의 폭력으로 이가 빠져 평생 의치를 달고 살아야 했는걸.(그 이후로 클라라는 에스테반에게 말 한마디 건네지 않는다.)
그런 그가 처음으로 사랑을 나눌 수 있게 된 손녀딸 알바 덕분에, 에스테반에게 들렸던 분노의 악귀가 조금씩 떠나가기 시작한다. 평생 자기밖에 모르고 살아왔던 에스테반은, 정부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던 창녀 트란시토 소토를 찾아가 알바를 살려달라며 무려 눈물을 흘리며 빈다. 그러면서 이런 말도 할 줄 아는 사람이 된다.
"알바는 하나밖에 없는 내 손녀딸일세. 나는 사실상 이 세상에서 외돌토리나 다름없고, 페룰라 누님이 저주하며 예언한 대로 내 몸과 영혼은 모두 쪼그라들고 있지. ... 초록색 머리카락을 가진 손녀딸이 내게 남은 전부이고, 내가 진정으로 걱정하는 유일한 사람일세. ... 트란시토, 제발 나 좀 도와주게, 원하는 건 뭐든지 말하게. 공산주의자들의 치하에서 사정이 좀 나빠지고 땅도 빼앗기기는 했지만 그래도 나는 여전히 부자일세."(p.297, 2권)
분노는 사라졌다. 그렇게 또 귀결되는 결말. 사랑이 승리했고, 우리는 사랑해야 한다는 것.
욕망의 충돌로 캐릭터는 더 인간다워진다. 이는 당연히 스토리의 개연성에도 영향을 미친다. 캐릭터의 선택에 의해 이야기는 진행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욕망들로 피라미드를 세운다면, 그 꼭대기에 올라가 마땅한 것은 단언컨대 '사랑'이다. 어찌보면 개연성과 핍진성의 핵심이 되는 키워드일수도.
군부에 끌려가 끔찍한 고문을 당하던 알바를 구해준 어느 평범한 여자에 대한 서술로 글을 마무리한다.
"그녀는 우리 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든 것을 체념하고 억척스럽게 살아가는 여자였다. 자신의 인생을 거쳐간 남자들에게서 자식을 한 명씩 낳았으며, 그것도 모자라 다른 사람들이 버린 아이들과 찢어지게 가난한 친척들, 엄마나 누나, 이모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라면 다 받아주었다. ... 내가 그 여자에게 엄청난 위험을 감수하고 나를 구해주신 거라고 얘기하자 말없이 웃었다. 나는 그제야 비로소 가르시아 대령이나 그와 비슷한 사람들의 시대는 이미 끝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이 이런 여자들의 정신까지 파괴할 수는 없을 것이다."(p.312, 2권)
자, 다음에는 페르난도 바예호의 <청부살인자의 성모>로 다시 찾아오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