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에 진심인 하정우와 하이브리드
하이브리드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알지만 어렴풋해 다시 뜻을 찾아봅니다.
하이브리드(hybrid)
1. 전기, 휘발유 따위의 동력원을 두 종류 이상 번갈아 가며 사용할 수 있는 자동차
2. 서로 다른 성질을 가진 요소를 둘 이상 뒤섞음
3. 서로 다른 두 가지 기술이나 시스템을 하나로 통합하는 것
일본 토요타자동차가 하이브리드를 개발했을 때 모두가 그랬습니다. 전기차가 대세가 될텐데 일본은 또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간다고 했죠. 과거 비디오 테이프 시절 세계가 VHS로 표준을 삼을 때 홀로 beta를 선택해 결국 도태된 길을 갔던 전력이 있는 일본인데, 자동차도 그 길을 간다고 말이죠. 역시 일본답다고도 했습니다. 그런데, 날아다니는 테슬라에 승승장구할 것만 같았던 전기차가 캐즘을 맞으니 토요타가 새삼 다시 부각되고 있습니다. 전기차 업계는 공급 과잉에다 이차전지 업계는 사상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배터리 업계는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배터리 기술이 발전하지 않는한 중국에서 만든 저가형 배터리를 장착한 값싼 전기버스들은 이제 서울, 경기권을 활보하고 있습니다. 가격 경쟁력이 우선인거죠. 말이 길었습니다.
일본의 하이브리드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타보면 알게됩니다. 휘발유와 전기의 강점을 모아 어떻게 틈새 시장을 공략하고 있는지 말이죠. 현대기아차도 미국 시장에선 하이브리드 덕분에 전기차 캐즘을 버티고 있습니다. 그렇게 망할 거라는 토요타의 하이브리드 설계 기술은 특허인 까닭에 현대차를 비롯한 다른 완성차 업계는 하이브리드 엔진의 설계를 토요타처럼 할 수는 없습니다. 전기차 캐즘이 오래될수록 당분간 하이브리드 자동차의 틈새 시장 공략은 계속될 거 같습니다.
배우 하정우라기엔 너무도 부족한 타이틀
배우 하정우 씨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하정우는 배우일까요? 일단 써보죠. 영화, 예능에서 볼 수 있는 하정우는 배우입니다. 하지만, 그는 누구보다 그림을 오래 그려왔고, 걷기를 좋아하며, 책도 펴냈습니다. 영화감독도 했죠. 술에 대해선 일가견이 있습니다. 화이트 와인 애호가인 하정우가 추천한 코스트코의 한 와인은 가성비 끝판왕입니다. 저도 아주 좋아합니다. 외국의 와인업체와 함께 자신의 그림을 레이블로 한 하정우 와인을 출시하기도 했죠.
하정우는 스토리텔링의 대가입니다. 하정우 와인은 기존에 있었던 뉴질랜드 와인 '러시안잭'입니다. BTS 뷔의 '최애와인'으로도 이미 알려진 와인입니다. 상큼한 신맛을 좋아하는 분들이 좋아하는 와인이죠. BTS의 최애와인에 하정우가 자신만의 스토리를 입혔습니다. 화가 하정우의 그림 중에 사기꾼을 뜻하는 'cheater'라는 글자가 있는 그림이 있습니다. 오래된 친구에게 금전적으로 배신을 당했는데, 그를 생각하며 그린 그림이겠죠. 그런데, 러시안잭을 출시했던 회사가 하정우와 콜라보를 진행하면서 그 그림을 레이블로 골랐습니다. 그래서 탄생한 하정우 와인의 이름이 '콜 미 레이터(Call me later)'입니다. 사기를 당했다면 가장 하고 싶은 말입니다. 다음에 전화해죠... 구하기도 힘든 하정우 와인을 마시는 사람들은 레이블을 감상하며, 그 속에 담긴 이야기를 하며, 서로가 한번쯤 배신 당했던 경험을 나누며, 자연스럽게 하정우 얘기를 안주삼아 와인을 마실겁니다.
하이브리드가 가장 어울리는 하정우
지금 하이브리드하면 가장 생각나는 사람이 바로 하정우입니다. 공교롭게도 하이브리드 하정우. 라임도 비슷합니다. 하이브리드의 약점은 잘못하면 둘의 특성이 충돌하거나, 하나도 제대로 하지 못할 때 이것도 저것도 아닐 수 있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전 작가로서의 하정우에 대해 확신이 들지 않았습니다. 연예인으로서의 이미지가 그 그림이 과대 포장되었다고 생각했죠.
감독이자 배우, 작가인 하정우가 최근 개인전을 열었습니다. 서울 삼청동의 갤러리 학고제는 아무에게나 그 장소를 허락하지 않습니다. 왠만한 작가들에게 갤러리는 그야말로 ‘갑’입니다. 작가가 갤러리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갤러리가 전시할 작가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비오는 어느날 갤러리 학고제를 찾아 작가 하정우를 경험해보기로 했습니다.
이번 전시의 주제는 'Never tell anybody outside the family' 가족 외의 사람에게 내 생각을 말하지 말라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하정우가 좋아하는 영화 대부의 대사라고 합니다. 저 대사가 담긴 그림도 전시돼 있었습니다. 200호, 100호짜리 대형 그림에서부터 작은 그림까지. 가장 하정우스러운 그림에서 하정우스럽지 않는 느낌의 작품들이 관람객들을 맞았습니다. 전시회를 보고난 뒤 전 제가 생각했던 '하정우스러움'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성급한 선입관이 또 있었습니다.
많은 그림들이 있었는데 모두 2024년 올해 그린 작품들이라고 합니다. 영화 비공식작전을 찍을 때 모로코의 카펫에서 영감을 받아 그린 그림에서 한국의 전통 하회탈까지. 그가 즐겨 그렸던 얼굴도 또다른 버전이 탄생했고요. 영화 대부의 대사가 모티브가 된 학고제 관계자가 설명했습니다. 하정우는 노력파라고... 많은 작품과 활동 시간에 언제 그림을 그릴 시간이 있었을까 의심이 들었는데, 한방에 이해가 됐습니다. 나머지 모든 시간에 그림을 그렸다고 합니다. 아침부터 밤까지...
개인적으로 바스키야 작품을 좋아하는데, 하정우는 바스키야입니다. 하지만, 하정우스러운 바스키야풍에서 이제는 ‘하정우스러움’로 홀로선 느낌입니다. 하이브리드 하정우를 보면서 또 느꼈습니다. 가장 늦었다고 생각할 때는 아직 늦지 않았다는 겁니다. 하정우 전시회를 다녀온 뒤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갤러리에 계신 분이 얘기했습니다. 지금이라도 배우세요. 평생 그림만 그렸던 작가들도 그림을 배웁니다. 배움에 끝은 없습니다.
하정우는 수택절입니다.
주역의 60번째 괘는 '수택절'입니다. 아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물 밑에 연못이 있습니다. 바꿔말하면 연못 위에 물이 있는거죠. 말그대로 넘칠 수도 모자랄 수도 있는 상태입니다. 전 이 괘사를 좋아합니다. 절제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무분별한 넘침이 문제지만, 요즘과 같은 디지털, 유튜브 시대를 살아가면서 과도한 겸양이나 절제도 문제입니다. 도태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공자는 수택절을 설명하면서 틀을 갖춰 나가는 공부를 하라고 했습니다. 이 괘사를 설명하는 책 중에 공부 얘기를 많이 하는건 그런 이유 때문인 듯 합니다. 호수의 물은 바다와 다르게 육지의 보호를 받습니다. 편안한 곳에 앉아 때를 기다리면서 준비할 일입니다.
2024년 우리나라 10대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연 하정우의 첫 개인전은 2010년부터입니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건 20대 들어서입니다. 그의 개인전은 올해가 14번째입니다. 짐작하신 분도 계시겠지만 1년에 한번 꼴입니다. 그런 하정우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30년 뒤 작가로 평가받고 싶다고 했습니다. 성급하기는 하지만 지금 방향대로라면 30년 뒤에도 하정우는 살아남을 거 같습니다. 그래서 하이브리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