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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와 전자책에 속은 '가짜 지식'

읽고 쓰고, 질문하고 답하는 '몸이 힘든 연구'가 주는 '진짜 지식'

by 캬라멜

전문가들의 설자리가 없어지고 있다고들 한다. 유튜브와 챗GPT 때문이다.


유튜브에는 학교 교사보다 우리 동네의 학원 강사보다 더 훌륭한 전문가들이 제대로 잘 만든 콘텐츠를 하루에도 수십, 수백 개를 쏟아낸다. 예전에는 그래도 궁금한 건 구글과 포털 사이트를 뒤지면서 찾았지만, 이제는 챗GPT를 통해 질문(프롬프트)만 잘 넣으면 얼마든지 훌륭한 답을 얻을 수 있다. 연구나 기획의 초기 단계에서는 챗GPT와 같은 AI프로그램의 도움을 받으면 몇 사람이 동시에 브레인 스토밍을 통해 아이디어를 내는 것과 같은 결과를 낼 수 있어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


하지만, 유튜브를 통해 얻은 단편 지식이 나의 지식이나 지혜로 이어지는 지에 대해선 지금까지는 비관적이다. 나의 경험이 그렇고, 주변의 후배들을 보면 더 그렇고, 그런 의미에서 태어나면서부터 유튜브와 같은 동영상 재생 플랫폼이 익숙한 Z세대, 알파 세대의 '생각 근육', '말 근육', '글 근육'에 대해 우려가 되는 것도 사실이다. 내가 생각하는 우려는 이렇다.


유튜브를 통한 정보의 습득은 집중을 방해하는 요소가 많아도 너무 많다. 어른이나 아이할 것 없이 인간의 집중력은 생각보다 높지 않고,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오죽하면 황농문 교수의 '몰입'관련 연구나 책, 미하이 책센트미하이의 관련 이론이 지금까지도 인기가 식지 않고, 관련 서적은 스테디셀러로 남아있을까. 지금처럼 동영상 콘텐츠와 영상 매체가 발달하지 않던 시절에도 '몰입'이 어려웠는데 지금은 말할 것도 없다.


유튜브는 태생적으로 광고를 기반으로 한 상품이며, 유튜버는 자선사업가가 아닌 다음이야 수입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장치들을 곳곳에 넣어놓고 있다. 유튜브에서 정보를 얻을 때는 그렇게 중간중간에 배치된 광고 요소들을 건너뛰면서 내가 필요한 정보를 얻어야 한다. 광고 요소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해도, 한 콘텐츠가 끝나면 유튜브 알고리즘에 의한 연관 동영상, 관련 동영상이 어떤 이유에서 추천되는지 전혀 설명해주지 않고 노출된다. 이게 문제다. 유튜브를 통해 연구자나 학생이 자신이 원했던 계획대로 필요한 영상을 계획대로 보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그렇게 2~3시간을 유튜브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컴퓨터를 끄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런데 머릿 속에는 정보가 제대로 정리되지 않는다. 복잡한 유튜브 콘텐츠의 잔상과 중간 중간에 노출됐던 CG와 자막에 대한 기억이 없는 건 아닌데 그렇다고 체계적으로 정리되지 않는다. 대체로 그랬다. 때문에 지식이나 지혜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유튜브는 권할 만한 것이 못된다.


전자책 역시 마찬가지다. 출퇴근 시간에 볼 수 있고, 여행갈 때도 수십여 권의 책을 전화나 태블릿 하나로 볼 수 있는 만큼 편리성에선 단연 e-book을 종이책은 따라 갈 수 없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난 뒤의 기억의 측면, 공부나 연구 측면에서 전자책은 역시 휘발성이 너무 강하다. 최근들어 100여 권이 넘는 전자책을 사서봤는데, 전차책에 그어놓은 수없이 많은 밑줄은 볼 때마다 새롭다. 처음 본 것처럼... 하지만, 내가 애지중지하는 메모 노트에 펜으로 옮겨 놓거나, 내 생각과 함께 줄도 긋고, 그림도 그리면서 써놓은 책의 내용은 그 장면이 그대로 사진을 찍어놓은 것처럼 생각이 잘 난다. 특히, 해당 내용을 다시 찾아야 할 때는 0대 100이다. 전자책의 내용은 해당 페이지의 정보값만 겨우 찾을 수 있지만, 내가 메모해 놓은 책 내용이나 기록은 정확하게 찾기도 쉬울 뿐더라 '나만의 언어'로 바꾸기도 쉬웠다. 궁극적으로 내 말, 내 지식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대학원을 다시 다니기 시작하면서 이제야 제대로 나만의 '찐' 지식을 쌓는다는 느낌을 종종 받는다. 그 전에는 하루에도 몇 시간씩 유튜브를 보고, TED 강의도 보고, TV에서 하는 전문가들의 강연도 보고, 주말에는 하루종일 유튜브와 전자책의 바다에서 놀았지만 돌아서면 그 뿐이었다. 그건 그 인플루언서의 지식이었고, 그 교수만의 지혜였으며, 그 전문가만의 노하우였을 뿐 내 것으로 바뀌지 않았다.


내 지식은 내가 자발적으로 움직일 때 몸을 피곤하게 만들 때 비로소 만들어진다. 석사 수업 초창기에 그렇게 수업 시간마다 교수들은 질문할 것이 있으면 질문을 받겠다고 했다. 왜 그렇게 수업시간마다 질문을 하라고 하는 지 알수도 없었지만, 그닥 궁금한 것도 물을 것도 없었다. 그래도 그럴 때마다 질문을 잘 하는 분들은 항상 있었다. 처음엔 이해할 수 없었다. 같은 수업을 듣고도 어떻게 저렇게 궁금한 게 나올 수 있는지. 뭘 알고 뭘 모르는 지 그분들은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거 같았다. 그런 질문 과정에서 '아~ 저게 그 내용이었구나' 비로소 이해가 되기도 했다.


본의아니게 한 한기에 20~30편의 논문을 읽고, 요약도 하고, 그걸 리포트로 쓰고, 발표를 하고, 교수와 동료들의 질문을 받으면서 자연스럽게 그 과정에 익숙해져 갔다. 논문은 적어도 해당 연구 문제에 대해 학계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가장 권위있는 지식이다. 거기엔 군더더기도, 광고도, '구독'과 '좋아요'도 없다. 유튜브 콘텐츠는 20~30분을 훌쩍 넘길 때도 많고, 몇 시간씩 시간을 소비해가며 중요한 부분을 찾아야 하지만, 논문에선 내가 필요한 부분을 찾는 건 익숙해질 경우 1분도 걸리지 않는다.


대학원에선 내가 궁금한 것을 해당 학계에서 인정받은 방법으로 증명해나가는 과정이다. 궁금한 건 주변에 널렸고, 연구에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은 교수들과 상의하며 찾아갈 수 있다. 학계는 검증되지 않은 다른 방법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폐쇄적이고, 상아탑은 '그들만의 리그'라는 비판을 받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상호 검증을 통해 학문적 성과를 서로 도와가고, 도움을 주고 받는 과정에서 이뤄가는 독특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 말하자면, 그 방법만 지키면 내가 학계에 기여하는 게 1도 없어도, 100을 가져가도 도둑질이라고 하지 않는다. 내가 누구의 어떤 연구에서 무슨 도움을 받았다는 걸 정확하게 인용하는 것만을 요구할 뿐이다.


그렇게 교수들과 동료들의 지적과 질문 속에서 살아남은 '소논문'과 지도 교수와 심사위원들로부터 수십여 차례의 지적을 받아 탄생한 '학위 논문', 박사 과정에서 권위있는 학술지 투고를 위해 제출했다가 이름도 모르는 심사위원들로부터 받은 지적을 수정해 '통과'가 떨어진 '학술지 투고 논문' 등은 오롯이 내 지식과 학문적 지혜로 살아남는다. 내 이름으로 검색을 하면 해당 연구가 나오고, 'SCI 등재'라는 꼬리표라도 달게 되면 그때부턴 제법 자신감도 붙는다.


우리가 유튜브를 통해 접하는 어떤 분야의 전문가들이나 박사, 교수, 인플루언서들은 몸을 힘들게 하는 그들만의 오랜 독서와 연구와 노력을 통해 권위를 인정받고 그 경지에 올랐지만, 정작 그렇게 되고 싶어하는 우리는 그들이 하는 유튜브와 전자책 만을 보고 얻은 단편적인 지식으로 그들처럼 되기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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