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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를 해달라고요?

두려움을 익숙함으로 바꾼 발표와 논문 그리고...

by 캬라멜

지도 교수로부터 전화가 왔다.


"요즘 바쁘시죠? 언제 시간이 되면 학생들을 상대로 강의 한 번 해주세요~"

"네?"


강의 내용은 내가 하고있는 일과 관계된 것들이라 어렵지 않았다. 부담스러운 건 내가 학생들 앞에 설 수 있느냐의 문제다. 어차피 박사 과정을 하게되면 이런 의뢰가 한 번씩 들어온터라 이제 피할 수 없다고 생각은 됐다. 학회나 학술 세미나에서 하는 발표나 토론, 발제 등에 비하면 학부생들을 대상으로 한 강의는 어렵지 않을 거 같았다. 그렇다고 준비없이 대충해서는 주어진 3시간을 채우기도 쉽지 않을 거고, 무엇보다 그들이 강의를 듣고난 뒤에 '시간 낭비'였다고 생각하거나 '감동도 감흥도 없었다'고 느끼거나 교수나 학교에서 설문이라도 할 때 '권하고 싶지 않음'이라고 쓴다면 낭패다. 그런 후기들이 걱정이 됐다.


누군가를 대상을 말을 하거나 글을 써야 할 때 항상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건 그걸 보고 들을 대상에 대한 파악이 먼저다. '넌 누구냐?' 학부 학생들이었고, 교내 방송과 신문을 발행하는 기자, PD, 촬영을 담당하는 나름 예비 언론인들이었다. 일단 강의를 들을 학생들이 만들어놓은 한 한기 분량의 방송에 대해 모니터를 시작했다. 왜 이들에게 교육이 필요한 지 파악하는 건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학교 홍보실장을 맡고 있는 교수님의 부탁도 이해가 됐다.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한다지만 그렇다고 굳이 칭찬거리만을 찾아서 강의를 하고 올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내가' 배워온 방송의 문법대로 볼 때 '학생'들의 입장에서 문제가 될만한 부분들을 PPT로 정리해봤다. 그리고 애써 내가 말하는 걸 정답이라고 하지 않으려고 했다. 회사 후배들을 기사를 고쳐줄 때도 느꼈던 거지만 요즘 Z와 알파세대들에 대한 '화법'은 그들이 먼저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MZ 후배들과의 대화 과정에 이해가 되지 않거나, 수긍하지 않는 부분이 나오고 있다는 건 표정으로 단번에 드러난다. 그걸 모르고 여느 꼰대처럼 '이걸요? 제가요? 왜요?'하는 애들이라고 생각하는 건 그들과 소통하지 않겠다는 거랑 다름없다. 그러다보니, 난 말하고 표정을 살피고 바로 묻는 것이 습관이 됐다. 강의도 그렇게 준비했다.


강의 시간은 오후 1시부터 2시간 남짓이 될 거 같다. 준비한 자료에 대한 설명을 끝내고, 더이상 질문이 없을 때까지다. 지각하지 않으려고 서둘렀더니 오히려 일찍 도착했다. 학생들은 그날따라 배달음식 사정이 여의치 않아 점심을 먹는 시간이 좀 많이 늦어졌다고 학교 관계자가 전했다. 그렇게 하나둘씩 학생들이 강의실에 들어왔다. 입장을 바꿔 강의를 들을 때 처음부터 본론을 시작하는 교수법이 싫었던 탓에 나도 가벼운 얘기부터 '아이스 브레이킹(얼음 깨기)'를 시작했다. 본론에선 익숙하지는 않지만, PPT도 나름 준비하고, 레이저 포인터를 써가며 이목을 집중하는데 최대한 도움이 되려고 했다.


강의를 위해 강단에 서보니 듣고 있는 청중들은 딱 두 부류였다.

강의를 듣고 있는 학생들과 그렇지 않은 학생들.

눈을 반짝이는 학생들과 그렇지 않는 학생들.

대답을 하는 학생들과 그렇지 않은 학생들.

질문을 하는 학생들과 그렇지 않는 학생들.

그리고 하품을 하는 학생들. 강의 내용이 졸려서일까? 애써 밥을 먹은 직후에 급하게 책상에 앉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첫 강의는 그렇게 끝났다.


되돌아보면 대학원은 누군가를 대상으로 발표를 할 일이 많았다.


가장 많은 건 '내가 그대로 드러나는' 수업시간 발표

대학원 수업은 발표에서 시작해 발표로 끝난다. 보통 15회 이상되는 학 한기의 커리큘럼에서 1/3정도는 교수들의 강의 수업으로 진행되지만 나머지 시간은 최소 1~2차례의 발표를 하고, 그걸 토대로 소논문 같은 기말고사를 제출하면 한 한기 수업이 끝난다. 이런 수업을 학기당 최소 2~3개는 들어야 학기가 끝난다. 그런 학기를 4~5개를 거쳐야 졸업의 순간이 온다. 석사 초창기에는 수업시간 발표도 어려웠다. 20년이 넘은 대학교 학부생 시절 나름대로 리포트는 잘 썼다고 생각했는데, 글로 쓰는 거랑 그걸 발표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었다. '한글' 워드로 쓴 리포트와 발표용 '파워포인트'의 차이 이상이었다.


발표할 전체 내용을 꿰고 있어야 하는 건 물론 시간 배분도 필요했고, 발표 이후 교수나 동료들로부터 질문에도 막히지 않고 답을 해야 비로소 끝난다. 처음엔 그게 참 힘들었다. 하지만, 이상한 건 그걸 반복할수록 익숙해져간다는 거다. 교실 내에선 모든 게 허용된다. 직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는만큼 더 배우는 게 아닌 내가 모르는 걸 더 많이 자각할수록 비싼 수업료가 아깝지 않게 된다.


처음엔 모든 질문에 답을 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교수가 아닌 이상 내가 다 알 수 없는 것들이 더 많았다. "좋은 질문이십니다. 미처 몰랐는데, 같이 한번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그리고 익숙해지면 졸업하게 되는 논문 발표

발표와 달리 학술지 투고나 논문은 전혀 다른 종류의 것들이다.

논문은 학위 논문과 학술지 논문으로 나눠진다. 학위 논문이 석사나 박사 학위를 받기 위한 학교 내의 논문이라면, 학술지 논문은 박사 학위를 받기 위해 반드시 투고해야 하는 통과 논문이거나 박사나 교수 등의 연구자들이 연구성과를 공표하고 공인받는 논문이다.


이것보다 더 큰 차이가 있다. 학위 논문은 내가 누구인지 아는 심사위원들이 내 이름을 보고, 지도 교수와 함께 논문을 심사하는 반면, 학술지 논문은 철저하게 블라인드 상태에서 진행된다. 내가 누군지 평가자들은 모른다. 나도 평가자들을 모른다. 평가의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서다. 말하자면 논문을 투고한 사람도, 심사하는 사람도 서로가 누구인지 모른다. 철저하게 논문에 씌어진 글과 논리, 실험, 그 결과 등으로만 평가를 받아야 한다. 학술지 심사위원들의 평가는 잔혹했다. 처음부터 통과되는 경우도 잘 없다고 하지만, '부분 수정 후 재심사'가 아닌 '대폭 수정 후 재심사' 등의 1차 심사 결과가 통보되면 그야말로 '멘붕'이 된다.


블라인드 테스트, 그 잔혹한 심사에 대하여

석사 학위를 받고 나름 논문이 뭔지 보인다고 생각했는데, 첫 투고에서 날아온 3명의 심사위원들의 평가는 태어나서 처음 받아보는 성적표였다.


심사위원 평가1.jpg 첫 투고 학술지 심사위원 A의 1차 평가 결과(좋다는 내용은 전혀 없다)

전체 10개 평가 항목에서 중간으로 볼 수 있는 '적절함'이 단 3개, 나머진 일단 문제가 있다고 본 것들이다. 경미하거나(4개), 심각하거나(3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논문을 고쳤고, 두번째는 통과에 성공했다.


심사위원 평가2.jpg 첫 투고 학술지 심사위원 B의 1차 평가 결과(기여도와 종합평가)

다른 심사위원의 평가도 다르지 않았다. 나의 투고 논문에 대해 학문적 기여도가 '약간 있다'가 1개일뿐 나머진 미미하다는 거다. 결국 1차 투고 논문을 '대폭 수정'해서 다시 재출한다면 심사위원들이 '다시 심사'를 해보겠다는 결과를 받았다.


만약, 처음 받아본 최악의 심사위원 평가로 멘붕이 됐다. 이같은 일련의 과정을 몰랐으면 그냥 포기했을 거다. 그런 과정을 이미 겪어본 선배들과 그런 과정을 평생 겪고 있는 교수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그런데 진짜는 지금부터였다. 돌파구는 마련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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