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는 왜 그곳에 있을 수밖에 없을까?
나는 전단지를 받는 사람이다.
출근길. 웬만하면 다 받는다. 어차피 누군가는 받아야 끝나는 그분들의 임무이기 때문이다. 전단지를 건내는 아르바이트는 대부분 할머니들의 몫이다. 손에 가득찬 전단지를 다 뿌리면 하루 일당은 얼마나 될까. 이렇게 고민하게 된 건 요즘들어 부쩍 많이 만나게 된 탓이다.
아침. 여의도 지하철에는 매일 출퇴근하는 직장인들이 쏟아져 나온다. 9호선 지하철 신방화역에선 병원 광고가 있는 앞쪽 게이트를 통과해서 왼쪽에 있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게 유리하다. 그래야 국회의사당역에서 내리면 바로 앞에 올라갈 수 있는 에스컬레이터가 있기 때문이다. 이걸 계산하게 된 건 지옥철로 불리는 9호선이기 때문이다. 9호선 러시아워에는 내려오는 에스컬레이터도 통제된다. 출근하는 이들을 위해, 내려오는 길이 막힌다. 내 직장은 그 한복판에 있다. 신방화역 주변에 이사온 지 8개월 만에 이걸 깨달았다. 노력에 따라선 최소의 동선으로 가장 빠르고 안전하게 출퇴근을 하는 방법을 나도 터득할 수 있다는 거다.
8시 반. 지하철역을 나서기 위해 주로 계단을 이용한다. 경우에 따라선 오전, 오후 합쳐 7~8시간씩 책상에만 앉아서 일을 할 때도 있다. 허벅지 근육을 단련하는 기구도 사보고, 다리를 들어올리는 운동도 해보고, 온갖 노력을 다해봤지만 제일 좋은 건 계단이었다. 이건 과학적으로도 증명이 되는데, 요즘 유행하는 연속혈당측정기를 3번에 걸쳐서 테스트해 본 결과 내 몸은 허벅지에 부하가 걸리는 하체 운동이 곧바로 혈당을 낮추는 효과가 있었다.
9호선은 깊다. 계단은 많다. 막바지에 다다르면 밝아진다. 곧 지상이 나오겠지. 그 순간이면 항상 오른쪽 앞에 서 계신 할머니가 있다. 겨울은 전단지 할머니에게 고약하다. 눈만 내놓고 연신 오른손을 흔들며 전단지를 팔락거린다. 걸음을 재촉하는 출근족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서리라. 같은 할머니다. 헬스와 사우나.
2025년 2월의 헬스 전단지는 시의적절하다. 1월보단 더 효과적이다. 새해의 운동 결심이 이어지는 신년회들로 위협받고, 생각만큼 살이 빠지지 않는 ‘작심삼일’ 인생들의 시선을 잡고, 귀를 솔깃하게 한다. 호주머니에 넣고 회사로 간다. 처음엔 신선했다. 하지만, 그 할머니는 내일도 그 자리에 있었고, 모레도 그 자리에 있었다. 안타깝다. 그 이후 난 관찰한다. 내 앞의 몇 명이나 전단지를 받을까. 대부분 받지 않는다. 시선을 피한다. 그들의 잘못은 아니다. 왜? 같은 전단지이기 때문이다.
같은 시간대에 같은 장소에서 전단지를 뿌리는 건 하나는 맞고 하나는 틀리다. 출근 시간에 가장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는 길목을 차단했다는 점에선 100점이지만, 같은 사람에게 비슷한 전단지가 전달될 확률이 아주 높다는 점에서 전단지 할머니의 퇴근 시간은 더 늦어질 수 있다. 대부분 비슷하다.
점심 시간. 여의도의 식당은 뻔하다. 동여의도와 서여의도. 바둑판처럼 펼쳐진 도로에 먹거리의 선택지가 많은 증권가 중심의 동여의도와 달리 국회 앞을 중심으로 이른바 맛있고 가성비 있는 식당은 제한적인 서여의도에선 사람들이 비슷하게 걷는다. 11시 반이 되면 구내식당을 포기한 많은 직장인들은 국회에서 바라볼 때 9시에서 11시 방향으로 모인다. 이름난 노포는 아니지만 서울에서 가장 건물 지하에 식당이 많은 여의도 식당들의 특성이 보인다. 전단지 할머니들은 알고 있다. 직장인들의 동선을...
전단지는 두 가지다. 새로 생긴 신장개업이거나 기존 식당이 각종 이벤트에 들어갔거나. 전단지 할머니들은 대략 5명은 넘는다 . 식당으로 발걸음을 재촉하는 행인들의 반응 역시 두 가지다. 모두 받거나, 하나도 안 받거나. 난 웬만하면 다 받으려고 하는 쪽이다. 할머니들에게 전단지를 받은 행인은 구세주다. 제로투원. 하나가 어렵지 받아준 사람은 웬만하면 더 받아줄 걸 알기에. 그래야 빨리 퇴근하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읽어본다. 대부분 아는 식당이다. 마침 겨울이라 굴을 좋아하는 우린 OOO굴국밥을 가는 길이었다. 전단지 중에 하난 그 식당이다.
식당 주인들의 패착은 두 유형이다. OOO굴국밥은 그 일대에선 노포다. 점심과 저녁 언제나 가도 대부분 절반 이상은 들어차고, 만원일 때도 많다. 점심 시간 그 곳을 지나가는 직장인 절반 이상은 이미 알고 있는 곳일 가능성이 크다. 나름 오래된 강자인 그 식당의 주인이 그걸 몰랐을 리가 없다. 그렇다면 인근에 경쟁자가 생겼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전단지를 하기로 했다면, 오히려 기존 고정 고객들을 대상으로 ‘팬덤’을 강화하는 쪽이면 어땠을까? 식당 앞에 할인이나 쿠폰을 두고 이번 겨울에 자주 오는 손님들을 대상으로 할인폭을 강화하는 거다.
다른 패착은 그 전단지를 받아도 전혀 갈 것 같지않은 업종이다. 사장님이 다른 곳에서 왔거나 기존 메뉴가 잘 안되서 다른 음식점으로 바꿨을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는 일리가 있다. 간혹 여기에 이런 식당이 생겼구나 놀라기도 한다. 하지만, 보통의 경우 이 전단지를 챙겨와서 다음에 간다고 마음먹기 보다는 새로운 식당을 먼저 검색하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의 새로운 식당에 대한 도전은 언제가 위험 부담이 큰 만큼 검색과 후기가 사람들의 마음을 더 크게 움직이게한다고 봐야 한다.
손이 얼어붙을 듯한 날씨에도, 할머니는 같은 자리에 서 있다. 난 전단지를 받는다. 내가 받지 않아도, 누군가는 받아야 한다. 이제 전단지는 정보 교환으로서의 가치와 마케팅 효과보다는 그 시각, 그 곳을 지나는 대부분의 아는 사람들에겐 하나의 풍경이다. 없으면 괜히 찾게 되고 혹시 몸이라도 아프신 건 아닌지 걱정도 된다.
경기가 어려워 식당하시는 분들이나 자영업자 모두 어렵다. 마케팅까지는 아니더라도 젊은 직장인들의 눈길을 끌고, 발길을 잡기위해선 어떤 걸 해야하는 지도 사장님들도 알고 계실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엔 한 달 벌어 직원 월급 주고, 임대료 내고, 남은 돈으로 가족들과 먹고 살기에도 빠듯하기에 '전단지'라는 수단을 택하지 않았나 싶다. 당장 끊어버리면 전단지로 먹고 살 할머니들이 눈에 밟히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