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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ddie Aug 01. 2021

고백(Go-back)

당직근무에 관하여

대부분의 공공기관은 시설의 보안 또는 24시간 상황을 관리 및 유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당직근무자를 운용한다. 기관의 특성에 따라 일부 다르겠지만 이 당직근무자들은 근무시간 이후에 조직 구성원들을 대표하여 근무를 하는 개념이기 때문에 당직근무를 하는 중에는 취침을 할 수 없다. 1980년 국무총리령으로 규정된 '공무원 당직규정'에 의하면 당직근무자는 취침을 하거나 근무지를 이탈할 수 없도록 되어있다. 즉, 당직근무란 다음날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 얄짤없이 밤을 새워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직근무를 해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하루 업무시간 동안 업무를 온전히 다 하고 남들이 퇴근한 뒤 다시 남아서 밤을 새운다는 것은 상당히 부담스럽고 힘든 일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당직근무 순번에 상당히 민감하다. 개인적으로 가장 힘든 직위는 이 당직근무를 편성하고 조정을 총괄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계급고하를 막론하고, 당직근무에 편성되어 있는 사람들의 민원(?)을 상대해야 하는 업무이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당직근무는 힘들기 때문이다. '동트기 전이 가장 어둡다'는 말이 있는데, 당직근무를 서다 보면 새벽 4시~5시가 되면 엄청난 졸음과 피로가 몰려온다. 말 그대로 '동트기 전이 가장 피곤한' 것이다. 그러다가 해가 뜨고 아침이 밝아오면 신기하게도 그 졸음과 피로는 싹 가신다. 이유는 잘 모르겠으나, 추정컨대 당직근무 종료 후 퇴근하여 휴식을 할 생각과 아침이 되면서 바이오리듬이 다시 정상으로 돌아오는 것의 복합적인 상호작용인 것 같다.  


나는 당직근무와 관련된 나만의 엄격한 원칙이 있다. '절대 졸지 않는 것이다.' 원칙적으로 당직근무는 '취침'을 할 수 없도록 되어있지만, 인간의 특성상 밤을 새우며 잠깐잠깐 조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잠깐 조는 상태'를 만들지 않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한다. 당직근무가 있는 날 전날은 무조건 오후 10시 이전에 잠들려고 노력하고 술도 마시지 않는다. 그야말로 당직근무를 설 수 있는 '최적의 몸 상태'를 만드려고 노력한다. 당직근무를 하는 중에도 끊임없이 무엇을 하려고 노력한다. 책을 읽거나 순찰을 가거나, 아니면 다른 것을 한다. 단, 업무는 하지 않는다. 당직근무 중 업무를 한다는 것은 당직근무의 기본 취지에 맞지 않을뿐더러, 설사 조금의 융통성이 용인되더라도 굳이 당직근무를 하며 업무를 하고 싶지 않다. (집중도 안된다.)


사실 이 원칙은 내가 10여 년 전 초임 시절 스스로 느낀 반성에서 출발한다. 입대 후 2년 차가 된 나는 당직근무 순번이 가혹할 정도로 빨리 돌아오는 특수한(?) 부대에서 근무했다. 소위 '퐁당퐁'이라고 불리는 당직근무가 다반사였다. (이 '퐁당퐁'은 예를 들면 월요일 당직근무를 하고 나서 수요일에 또 당직근무에 투입되는 그런 형태의 당직근무를 말한다. 정말 싫다.) 심지어 당직근무를 하고 난 뒤 바로 퇴근을 해서 휴식을 취하고 다음날 출근하는 요즘과 달리 그때는 오전에 잠시 숙소에서 휴식을 취하고 오후 1~2시쯤 다시 출근해서 업무를 했다. 이런 가혹한(?) 환경에서 당직근무 때 졸지 않는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난 당직근무자로서 해야 할 일을 다하고 난 뒤 새벽 2시~3시쯤 조용한 시간이 도래하면 엄청난 졸음과의 싸움에서 종종 패배했다.


퐁당퐁 근무가 지속되던 어느 날이었다. 새벽 3시쯤 되자 어김없이 졸음이 몰려왔다. 한참 사경(?)을 헤매던 나는 갑자기 위병소(부대 출입사무소)로부터 걸려온 다급한 전화를 받았다. 사단장님께서 들어오셨다는 것이다. 깜짝 놀란 나는 일단 건물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때 당시는 상급자가 오면 건물 입구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상급자가 차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사무실로 향할 때까지 각종 현황에 대해 브리핑을 하는 것이 기본 수칙이었다.)  어두운 새벽, 별이 2개 새겨져 있는 붉은색 성판이 번호판 조명에 비쳐 빛나고 있는 차량이 부대 입구에서 본청 건물로 올라오는 것을 보았을 때, 엄청난 공포를 느꼈고 마치 그 순간이 슬로 모션처럼 느껴졌다. 지금도 브리핑에 취약한 나지만, 방금 졸음에서 깨어난 그때 당시의 나는 제대로 브리핑을 하지 못하고 횡설수설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단장님은 인자한 표정으로 근무자들을 격려하고 떠나셨다. (다행히 그 뒤로 아무 일도 없었다.)


그때부터 나는 당직근무를 할 때는 절대 졸지 않기로 결심했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 원칙은 지켜지고 있다. 때때로 너무 졸려서 멍하게 있다가 정신을 잠깐 잃는 경험을 하기도 하지만, 의자에 뒤로 기대어 사경을 헤매는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으려 부단한 노력을 기울인다. 커피를 마시고, 에너지 드링크를 사정없이 들이킨다. 내부망(Intranet) 서핑도 잠을 쫓는데 도움이 된다. 그래서 당직근무를 하고 나면 나는 정말 녹초가 되어버린다. 그래도 나 스스로와의 약속을 오늘 또 한 번 지켰음에 만족하며 말 그대로 숙소에서 '기절' 한다.


그런데 요즘은 나이가 더 들어서인지 이 원칙을 지키는 것이 조금 힘들게 느껴진다. 다이나믹 듀오의 '고백' 가사처럼, 하루를 밤새면 그다음 이틀은 정말 죽을 맛이다. 세월이란 독약을 마신 탓일까, 이틀 전 금요일 당직근무를 하고 나서 이 글을 쓰고 있는 일요일 지금도 쌓인 피로는 가시지 않는다. 가끔은 한 달 내내 퐁당퐁 밤을 새도 멀쩡했던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 I wanna go b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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