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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ddie Apr 23. 2022

감정은 사라지고 결과만 남는다

“감정은 사라지고 결과만 남는다”


하기 싫은 일을 할 때 동기를 부여하는 작자 미상의 이 문장은 요즘 내 머릿속에서 다른 의미로 맴돌고 있다. 고뇌 끝에 내가 내린 결론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는 것이다.


조직에서 일하면서 석사과정을 풀타임으로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받을 수 있었다. 지나친 겸손을 표현할 때 '운 좋게' 라는 말을 쓰지만, 정말 나는 '운 좋게' 그 기회를 획득했다.(고 믿고 있다) 근거 없는 나의 망상(?)이지만, 그때 당시 서울에 있던 학교의 지방 이전이 결정된 상황이라 학교의 경쟁률이 다소 떨어진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지원해서 그야말로 운 좋게 합격한 것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왜냐하면 같이 입학한 동기들은 하나같이 다 똑똑하고 훌륭한 사람들이었고, 나는 하한선을 겨우 넘기는 말도 안 되는 어학성적으로 합격했기 때문이다.


석사과정 2년은 본질적으로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었던 탓에 개인적으로 많은 힘든 시간을 보냈다. 사실 남들은 이미 알고 있거나 쉽게 이해하는 내용조차 이해를 못 해 남들보다 몇 배의 시간을 투자해야 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힘들었던 것은 능력주의로 포장한 보이지 않는 차별들이었다. 어쩌면 내가 ‘그들만의 리그’에 괜히 끼어있는 하찮은 존재라고 느끼게끔 만드는 환경은 더할 것 없이 내게 곤욕이었다. 어쨌든 나는 불만 없이 그 시스템에 순응해야 했다. 실제로 나는 부족했고, 무식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정말 훌륭한 몇 분의 스승들을 알게 된 것이다. 내가 2년이라는 시간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그저 “나”라는 한 인간의 수준과 그 바닥을 알고 있음에도, 변함없는 성원과 지지를 보내준 스승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분들 덕에 나는 시스템의 산물이 아닌 독립적인 생각을 하고 조금이라도 ‘성장한’ 사람이 될 수 있었다. 나를 키워준 것은 능력주의로 포장한 가혹함도, 계량적 어학 점수와 화려한 배경, 경력에 대한 찬사와 기대도 아니었다. 그저 '나'라는 보잘것없는 한 인간에 대한 사심 없는 이해와 배려, 응원이었다.


당시 영어의 주어, 동사도 구분할  몰랐던 내가 지금 미국에 와서 강의를 듣고, 공부하고 있다. 나는 지금의 나의 모습을 “감정은 사라지고, 결과는 남는다.” 어설프게 포장하고 싶지 않다. 그때 당시 느꼈던  감정, 설움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고 시간이 흐를수록 선명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것에 대한 분노와 설움이 나를 조금은 성장시켰을 수도 있지만, 나는 그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은 분명 '따뜻함'이었다. 그렇게 믿고 싶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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