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ddie Apr 29. 2022

나의 영어 선생님들 - part 1

영어는 여전히 나에겐 도전적인 과제이다. 미국에서 공부를 하는 아직도 영어로 무엇인가를 말하는 것이 두렵고 어렵다. 특히 나는 무엇인가에 열정적으로 몰입하여 노력하는 스타일도 아니고, 영어 공부를 빠짐없이 하는 부지런함도 갖추지 못했다. 그래서 나의 영어 실력은 항상 제자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나의 치명적인 단점들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준 내 인생의 영어 선생님들이 있었기에 그나마 지금 어설프게 영어를 조금은 하는 '척' 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지금 내가 쓰는 글은 그들에 대한 이야기다.


1. 직장상사 K

K는 나의 군대 상관이었다. 회사로 치면 내가 신입사원 시절 '과장급'이었던 사람이다. 그는 항상 차가웠고, 공과 사 모두 내게 엄격했다. 사실 그가 나는 부담스럽고 무서웠다. '신입사원' 수준의 나의 업무 실력은 항상 그를 만족시키지 못했고, 그에게 항상 혼이 났다. 심지어 그의 책상이 나의 뒷자리에 있어서 그는 내가 무엇을 하는지 언제든지 볼 수 있었다. 그래서 더 부담스러웠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그가 가진 습관 중 하나는 영어공부였다. (영어를 잘하는 것 같았던) 그는 매일 신문(국방일보)에 나오는 영어 지문을 스크랩해서 자신의 업무용 컴퓨터 옆에 붙여놓고 항상 영어를 공부했다. 갑자기 어느 날 그는 내게 "영어공부를 해라"라고 권유를 했다. 딱히 특별한 것 없이 '텝스'시험을 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결과에 상관없이 개인 자력표에 등록하라는 것이었다. 나는 반신반의하며 '텝스' 시험을 쳤고, 437점이라는 말도 안 되는 점수를 획득했다. 형편없는 점수였지만 개인 자력에 등록할 수 있는 하한선은 넘긴 점수였기에 개인 인사자력표에 등록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형편없는 점수가 나중에 내가 '선발직' 부서에 뽑힐 수 있는 중요한 근거가 되었다. 그 부서 지원자 중 점수는 낮지만 유일하게 내 자력에 영어성적이 기록되어 있었던 것이었다. 그 후로 영어공부는 여전히 하지 않았지만, '국방일보'에 나오는 영어만큼은 가끔씩 눈여겨보게 되었다. 영어에 대한 작은 습관의 시작이었다.


2. 대학 후배 J

J는 대학시절 동아리 후배였다. 나는 대학시절부터 '아싸'였기에 동아리에 가입했지만 그렇게 원만한 활동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J와도 그렇게 큰 인연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졸업 후에도 SNS상으로 여전히 소식을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다. 어느 날 나는 조직에서 제공하는 대학원 과정에 합격하게 되었다. 그러나 '형편없는' 어학실력을 갖고 있었기에 내심 걱정부터 되었다. 그러던 중 J가 SNS상으로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절박한 마음으로 J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러자 J는 나의 상태를 이리저리 체크하더니 EBS의 '로즈리' 강사 강의를 들어보라는 것이었다. 고등학교 수험생들을 위한 어법 강의였다. 누구도 통제하지 않는 인터넷 강의를 이어나가는 것은 나에게 곤욕이었지만, 그 강의를 끝내고 나니 영어 어법에 대한 감각을 조금씩 갖게 되었다. 치명적인 카리스마로 학생들을 휘어잡는 로즈리 선생님도 고마웠지만, 나의 상태를 정확히 알고 적절한 처방을 해준 J에게 너무 고마웠다. 아직도 그 고마움을 잊지 않고 있다. 


3. 동료 S

S는 대학원에서 만났다. 입학 전까지는 S를 알진 못했지만 우연한 계기로 친해진 후 직장에서 커리어를 쌓아온 과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서로에게 공통점이 많았다. 심지어 '소주 한잔' 좋아하는 것까지 비슷해서 우리는 급속도로 친해지게 되었다. 운동선수 출신인 S는 멋진 외모에 성격도 시원시원한 친구였다. 어느 날 어김없이 S와 소주 한잔을 기울이던 중에 갑자기 '토익 000점'을 먼저 넘는 사람에게 못 넘은 사람이 술을 사는 는 내기를 하게 되었다. 물론 나는 그 내기 이후에도 공부는 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토익시험장에서 S를 만났다. 그는 내 앞자리에 앉았고, 답안지를 나눠주기 전 짤막하게 '나 000점 넘겼어'라는 말을 나에게 넌지시 건네었다. 갑자기 멘붕이 왔다. 은근 그 말이 나의 경쟁심을 자극했던 것이다. 그때부터 나는 그 시험에 몰입하게 되었고, 평소라면 대충 지나쳤을 문제도 꼼꼼히 살펴보게 되었다. 시험이 끝난 뒤 나는 S에게 약속대로 술을 샀다. 며칠 뒤 토익점수가 나왔다. 그런데 나도 지난 내기에서 약속했던 000점을 넘기게 된 것이었다. 점수를 받고 가장 먼저 S에게 연락해서 기쁨을 나누었다. 그 뒤로도 항상 우리는 만나면 서로의 발전과 꿈을 위해 응원해주는 사이가 되었다. 멋진 동료이자 자랑스러운 친구인 S의 '도발'이 없었더라면, 아마 목표한 점수를 얻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너무 고맙다.



(다음회에 계속)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