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ddie Mar 27. 2023

전역을 왜 결심했냐고요?

최근 각종 언론매체에서도 직업군인 이탈률 증가에 대해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했다. 이는 직업군인들 사이에서 형성되고 있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뉴스의 내용은 각기 다르지만 공통된 전역의 원인으로는 직업군인에 대한 합당하지 않은 '처우'를 지적하고 있다. 병 복무기간 단축, 봉급 및 수당, 열악한 군 숙소, 잦은 이사 등의 원인으로 직업군인들이 군을 떠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런 이유로 장기복무를 포기하거나 전역을 결심하는 선후배, 동료들을 보아왔다. 부인할 수 없는 명백한 사실이다.


그러나 단순히 처우 하나만으로 직업군인 이탈을 설명하기엔 다소 부족한 면이 있다. 대부분의 직업군인들은 전역 전까지 국가에 대한 헌신과 봉사를 사명으로 전후방 각지에서 묵묵히 임무를 수행해 왔다. 그러나 최근 각종 뉴스기사들이 대한민국의 퇴역, 예비역 군인들을 단순히 처우가 좋지 않아 사익을 찾기 위해 군을 떠나는 사람으로 호도하는 것이 아닐까 조심스럽다. 직업군인에 대한 처우는 늘 부족했고, 그들은 그 부족함을 애국심과 대한민국 군인이라는 자긍심으로 감내해 왔다. 이러한 복합적인 상황을 모르고 단순히 이탈의 원인으로 처우 문제를 든다는 것은 어쩌면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내가 생각하는 직업군인 이탈의 본질적인 원인은 '사람'에 있다. 임무나 과업 중심으로 모든 업무 사이클이 돌아가다 보니 리더가 원하는 최종상태를 구현하기 위해 무수한 사람들의 시간이 희생된다. 외부용역이나 예산을 투입해서 쉽게 해결할 수 있는 일도 옛날에는 사람을 쥐어짜면 어떻게든 만들어 왔으니 '라떼' 감성에 빠져있는 일부 상급자들은 여전히 구시대적 업무방식에 빠져있다. 이렇게 일을 하다 보니 업무를 추진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강압'이 수반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시간과 자원은 제한되어 있고, 그 제한된 범위 안에서 어떻게든 결과를 내기 위해서는 말 그대로 '쥐어짜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마른걸레도 쥐어짜면 물이 나온다.'라는 살벌한 말이 군대에서는 농담으로 회자된다.


'쥐어짜 내는 것'이 하나의 문화이다 보니 이런 것에 특화된 사람들이 조직 곳곳에 포진해 있다. 유독 군대에는 이런 사람들이 많다. 상급자들은 이런 사람들을 중간관리자로 두길 좋아한다. (물론 아닌 훌륭한 분들이 더 많다.) 자신이 할 성가신 일을 '중간관리자'가 대신 처리해 주기 때문이다. 대부분 지휘관들은 대개 1~2년 안에 성과를 내야 하기 때문에 단기간에 원하는 결과를 얻는 데는 쥐어짜기가 최고다. 축구를 하더라도 군대에서 페어플레이보다는 상대방 선수에게 거친 태클을 하거나 욕설을 하는 모습들이 '전투적이다.'라는 말로 용인된다. 같이 근무했던 상급자 중에는 축구실력으로 하급자의 '전투력'을 평가하는 지휘관도 있었다. 결국 목적 달성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들이 유능하게 평가받는 조직문화가 형성된다. 전쟁을 해보지 않으니 이런 모든 모습들이 전투적으로 보인다고 모두들 착각하는 것이다.


결국 이런 '사람'이 중요하게 생각되지 않는 조직문화에 질려 하나 둘 조직을 떠난다. 강압에 특화된 '자칭' 전투력 높은 사람들이 승승장구하고(나는 이런 부류의 사람들을 공감능력이 결여된 소시오패스로 정의한다.), 부하를 인격적으로 대우하고 합리적으로 업무를 추진하는 정말 '좋은' 사람들은 대개 진급을 하지 못하고 군을 떠난다. 물론 간혹 이런 분들 중에 정말 실력이 출중하여 진급하시는 분들도 있긴 하지만, 일반적이지 않다. 40대를 훌쩍 넘긴 나이에도 여전히 야근을 밥먹듯이 하고, 상급자로부터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하는 부서의 과장, 처장님들을 보면서 그 밑의 실무자들은 '미래가 암울하다.'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다들 그렇게 살기 싫어서 군대와 '헤어질 결심'을 한다. 같은 사무실에 있는 선배들을 보며 미래의 '나'를 투영해 본다. 그저 암울할 뿐이다.


군대라는 특수한 조직의 특성상 존재 목적 자체가 국군의 사명에 근거하고, 이에 따라 개인의 개성과 삶은 상대적으로 존중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직업군인들은 양성교육 과정에서 그 정도의 '불편함'은 감내할 수 있도록 교육을 받는다. 그러나 양성교육을 마치고 실무에 투입되는 군대라는 조직은 늘 히어로와 빌런이 공존하는 '복잡한 유니버스'이다. 어느 조직이나 그렇지만 대개 군 조직에는 '빌런'이 확률적으로 높게 포진되어 있다. 군 생활 초반에는 이러한 복잡한 유니버스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자존심 따위는 버리고 열심히 일하지만, 어느 순간 빌런들의 무차별적인 공격을 받으며 결국 현타를 맞이하는 순간이 오게 된다. 그 순간 그들은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내가 이런 대우를 받으면서 이 빌런들을 굳이 상대할 필요가 있나? 내가 나가고 말지.'


최근의 '초급간부' 처우개선에 집중된 문제해결 방식은 단기적으로는 성과가 있을지 모르나 장기적 측면에서는 여전히 물음표이다. 직업군인 인력운영의 안정성은 능력 있는 초급간부들을 중견간부로 성장시켜 나가는 데에 있다. 그러나 장밋빛 미래를 약속받고 입대한 초급간부들이 같은 조직 내 선배들을 보면서 자신의 미래를 그릴 것이고, 그 미래가 여전히 막막하고, 암울하다면? 결국 오늘과 같은 문제가 되풀이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초급간부의 '처우'만 개선시킬 것이 아니라, 초급간부, 중견간부 가릴 것 없이 즐겁고, 행복하며, '사람'이 존중받는 조직문화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전역지원서를 가슴에 품고 사는 사람들을 위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