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침에 집에서 기름으로 조리한 음식을 먹는 것을 싫어한다. 계란프라이, 구운 스팸 같은 것들 말이다. 기름으로 조리한 음식 자체가 싫어서가 아니다. 단지 그 음식을 조리하는 과정에서 나는 냄새가 옷에 배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급적 아침은 기름이 들어가지 않는 음식으로, 간단히 먹는 것을 선호한다. 물론 나는 아침에 계란프라이와 베이컨이 들어간 미국식 조식뿐만 아니라 '밥 한 숟갈에 스팸 한 조각'도 매우 좋아한다. 단지 '우리 집'에서 먹는 것만 제외하고.
나는 부산의 어느 작은 동네에 위치한 20평도 되지 않을 법한 작은 공동주택에서 자랐다. (지금도 부모님은 그곳에 살고 계신다.) 너무 좁은 공간 때문에 거실이 곧 주방이었다. 거실에서 우아한 식탁에 앉아 식사를 하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다. 그래서 늘 안방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식사를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옆집과 우리 집을 가로막던 벽을 부수는 과감한 확장공사를 해서 나름 거실이라고 부를만한 공간이 생겼다.)
너무나 좁은 주방의 크기 때문에 환기가 되지 않았다. 한차례 명절이 지나가면 집아 곳곳에 배어있는 기름냄새 때문에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였다. 아침에 등교를 하면 교복에는 항상 기름냄새가 배어 있었다. 한창 주변의 시선이나 외모에 신경 쓸 나이였는데 옷에서 기름냄새가 풀풀 나니 어지간히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었다. 요즘은 흔히 널려있는 섬유탈취제 '페브리즈' 같은 것도 당시에는 일반적이지 않았던 것 같다. (찾아보니 페브리즈는 1998년 최초 시판되었다.) 그래서 옷에 냄새가 한번 배면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 그저 바람이 부는 바깥에 널어놓는 수밖에.
그래서 어머니께서 아침 반찬으로 계란프라이, 생선구이 같은 것들을 할 때면 어린 마음에 투정을 많이 부렸던 것 같다. 그런 음식을 조리할 때면 옷에 냄새가 밸까 봐 내방 문을 닫고 절대 문을 열지 않은 적도 있다. 나는 정말 내 옷에 냄새가 배는 것이 싫었다. 아침에 집을 나서면 학교까지 버스나 지하철을 타야 하는데, 기름냄새가 풀풀 나는 교복으로 타는 것도, 학교에서도 친구들에게 기름냄새로 내가 먹은 아침메뉴를 굳이 알려주고 싶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천하의 몹쓸 놈이지만, 그땐 그랬다.
며칠 전 고향집에 다녀왔는데, 집에 와서 보니 옷에 잔뜩 기름냄새가 배어 있었다. 어머니께서 큰아들과 며느리, 손주 왔다고 지난 설날 차례를 지내고 남은 음식들을 잔뜩 '데워' 주셨기 때문이다. 환기가 되지 않는 좁은 집안 곳곳에 밴 기름냄새도 여전했다. 집에 돌아와 기름냄새가 밴 옷들을 세탁기에 넣으며, 그 동네사람들이 좋다고 아직도 넓고 편한 곳으로 이사를 가시지 않는 부모님을 원망했다. 그러던 중 평소라면 '극혐'했을 눅눅하게 옷에 배어 있는 기름냄새가 문득 다르게 느껴졌다. 익숙하면서도 포근했다. 그때서야 깨달았다. 그것이 기름냄새가 아니라 옷에 밴 어머니의 사랑이었다는 것을.
나는 참 못난 자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