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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ddie Feb 06. 2021

약자의 무기, 비대칭 전략

불완전한 우리를 위한 전략

비대칭이란 문자 그대로 '대칭이 아닌'것을 의미한다. (Merriam-Webster 사전) 어떠한 것들이 서로 동등하거나 등가성을 갖지 않을 때 우리는 비대칭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군사전략에서도 비대칭은 자주 사용되는 개념인데, 국가들은 전쟁의 불확실성을 비대칭 전략으로 극복하려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비대칭 전략은 "상대가 예상하지 못한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상대의 강점을 무력화하고 약점을 이용하며, 이를 통해 전략적 우세를 달성하고 전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전략"으로 정의할 수 있다. 비대칭 전략의 특징은 첫째, 상대가 예측하기 어려운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며, 예측하더라도 대응할 수 있는 여유를 주지 않으며, 둘째, 상대의 강점은 회피하고 약화시킴으로써 상대의 우위를 상쇄하고, 셋째, 상대의 약점을 겨냥하는 세 가지 핵심 개념으로 정리될 수 있다. (박창희, 2008)


북한은 비대칭 전략의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북한은 한국과의 군사력 격차를 비대칭 전략을 통해 상쇄해왔다. 전통적으로 북한은 수도권을 위협하는 장사정포, 대규모 기갑 및 기계화부대, 대규모 특수전부대, 생화학 무기나 미사일 같은 대량살상무기(WMD)의 개발과 위협을 통해 비대칭 전략을 구사해왔다. 최근 몇 년간은 지속적인 핵개발과 사이버 공격을 통해 한국과의 군 현대화 격차를 극복하려는 비대칭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이러한 북한의 비대칭 전략은 군사력을 현대화하려면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어야 하는데 북한이 가진 경제력은 그것을 감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는데에서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저비용 고효율'을 추구하게 되고, 결국 비대칭 전략을 통해 자신(북한)의 약점을 극복하고 상대(한국)의 강점을 약화시키는 비대칭 전략을 발전시키게 된 것이다.


비대칭 전략과 관련된 한 가지 재밌는 경험이 있다. 몇 개월 전 나는 운 좋게 해외연수에 선발될 수 있었고, 그래서 출국자를 위한 어학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그러나 나 같은 소위 '영알못'에겐 어학과정은 정말 힘든 나날의 연속이었다. 회화 중심의 수업이다 보니 수업시간에는 항상 영어로 이야기를 해야 했고, 가끔씩 같이 수업을 듣는 학생들 앞에서 나가서 랜덤 주제로 이야기해야 하는 즉석 스피치(impromptu speech)에 걸릴 때면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나를 제외하고 같은 반 학생들 대부분이 어느 정도 실력을 갖춘 수준급의 학생들이었기에, 그 부담감은 상당했다.


그러던 중 열정적인 원어민 선생님 L이 주도하시는 어학수업 중 개인별로 미국의 주(state)에 대해서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과제가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반 반장을 맡고 있었던 M과 같은 날짜에 프레젠테이션을 하게 된 것이다. 반장이었던 M은 정말 범접할 수 없는 영역에 살고 있는 사람 같았다. 먼저 한국에서 제일 어렵다는 고시를 통과한 재원이었고, 수업시간에 영어 발표나 토론을 할 때면 남들보다 2배 이상으로 치밀하게 준비해오는 그런 사람이었다. 심지어 못하는 운동도 없는 그야말로 '사기캐' 같은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과 같은 날 발표라니.. 같은 반 학생들 앞에서 망신은 따놓은 당상이었고, 무엇보다 나의 허접한 실력으로 원어민 선생님께 실망을 드릴까 봐 걱정만 앞서갔다. 그 시간에 노력해도 모자랄 판에 말이다.


나는 내가 못하는 것에 대한 포기가 빠른 편이다. 나의 치명적인 단점 중 하나인데, 일단 나는 내가 못하는 것을 계속함으로써 받는 스트레스를 감당하는 것이 싫고, 또 그것을 계속 잡고 있을 끈기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사람들 같았으면 영어 프레젠테이션을 앞두고 열심히 자료를 찾고, 대본을 만들어 외우고 했을 텐데 나는 그것조차 하기 싫었다. 그저 걱정하고 고민만 했다. 나의 걸음마 수준에도 못 미치는 영어 스피치를 통해 이루어지는 지루한 프레젠테이션을 들어야 할 같은 반 학생들의 표정과 겉으론 내색하지 않겠지만 실망할 원어민 선생님의 마음에 대한 걱정 말이다.


그러다 프레젠테이션을 며칠 앞두고 묘수가 떠올랐다. 잘할 수 없을 바엔 재미있게 만들자라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프레젠테이션을 '재밌게' 만들기 위한 고민을 한 끝에 중간중간 퀴즈를 내고 사람들의 호응을 이끌어 보기로 했다. 사실 이 아이디어는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몇 년 전 몽골에 출장을 갔을 때 영어를 잘하는 동남아시아 사람들을 교육해야 하는 일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도 동일하게 썼던 방법이었다. 그때 당시 역시나 부족한 나의 영어실력을 커버하기 위한 대안으로 교육 중 호응을 잘하거나 퀴즈를 맞추는 사람에게 한국 컵라면을 상품으로 내걸었는데, 분위기가 엄청 뜨거워졌다. 그것을 보고 있던 동료 교관들이 불공평(unfair)하다며 나에게 질투 섞인 농담을 할 정도 반응이 좋았다. 갑자기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 한번 해보는 거야'


그렇게 시간이 흘러 내 차례가 왔다. 나는 M보다 먼저 발표를 하게 되었고, 나의 비장의 무기인 '랜덤 박스'를 사람들에게 공개했다. 퀴즈를 맞추면 랜덤박스에 제비를 뽑게 하여 그것에 적힌 선물을 전달해주는 그런 시스템이었다. 반응은 나름 성공적(?)이었다. 사람들은 내 영어 발음이나 내용의 구성보다는 영어퀴즈나 선물에 집중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나는 나의 약점을 교묘하게 상쇄시킬 수 있었다. 물론 결과적으로 나를 뒤이은 M의 프레젠테이션이 더 훌륭했다. 역시나 그는 엄청나게 준비를 한 흔적이 돋보였고, 대본도 없이 유창한 영어를 구사했다. 애초에 나와 상대가 되지 않는 사람이었으므로 경쟁심이나 이길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내 비대칭 전략의 대상은 M이 아니라 '나의 부족함'이었다. 단지 내가 원했던 것은 조금이라도 M과의 격차를 줄이는 것이었다. 그렇게 나의 '비대칭 전략'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다.


문제의 랜덤박스




살다 보면 누구나 본인의 힘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에 직면할 수 있다. 내가 가진 시간과 자원(능력)은 한정되어 있는데 반드시 해야만 하는 그런 일들 말이다. 그런 일들을 피할 수 있으면 가장 좋지만, 그러지 못할 때는 자신만의 '비대칭 전략'을 수립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미래를 예측하는 방법 중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는 그 미래를 직접 만드는 것이라는 말이 있듯이 어떠한 경쟁이나 게임에서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그 경쟁이나 게임의 '룰'을 자신의 법칙으로 만들면 된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는 '의병항쟁'은 비대칭 전략의 대표적인 사례다. 미국 또한 '게릴라전'이라는 비대칭 전략을 통해 독립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고, 궤멸 직전에 몰린 중국 공산당도 '지구전'이라는 비대칭 전략을 통해 국공내전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자신의 약점을 상쇄하고 상대의 강점을 무력화시킨다는 측면에서 비대칭 전략은 전략의 본질에 매우 가까우며, 약자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무기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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