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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네 Jul 22. 2024

한국 SF의 탈인간중심주의

김보영의 『종의 기원담』과 SF를 읽는 이유

  1. 들어가며 : 최근 SF의 경향


  SF는 기본적으로 미래 담론을 내재하는 문학 장르다. 이는 SF의 정의 자체부터 ‘과학적(Science) 상상력(fiction)’을 담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학적 상상력은 우리가 기존에 알지 못했던, 혹은 알고 있었으나 실제로는 구현되지 않았던 것들을 소설 속에 풀어낸다. SF가 우주, 로봇, 컴퓨터, 가상현실 등의 소재를 사용하여 상상력을 풀어내는 것은 그러한 이유다. 따라서 과학적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세계는 필연적으로 우리가 ‘과학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미래’에 관한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SF의 소재는 시대에 따라 변화해 왔다. 미국과 소련이 대립하던 냉전 시기에는 우주 전쟁 이야기가 대두되었고 2000년대에는 시간여행 소재가 유행했다. 2020년, 오늘날 SF는 과연 어디에 주목하고 있을까? 최근 각광 받는 한국 SF 소설, 김초엽의 『파견자들』부터 한국 SF의 명작 『종의 기원담』, 각종 문학상을 휩쓴 켄 리우의 『신들은 죽임당하지 않을 것이다』까지. 이들은 모두 ‘비인간’을 공통된 주제로 삼고 있다. 그중에서도, 이들이 주목하는 캐릭터로서의 주제는 바로 ‘비인간 행위자(non-human actor)’다.



첫 문장은 다르코 수빈의 ‘인지적 소격 효과’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왔다. 다르코 수빈은 SF에서 말하는 환상이란 단순히 실재와의 이항대립으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오히려 다양한 형실 요소들과 긴밀하게 관계 맺으면서, 그 자체를 새로운 방식으로 사고실험하게 만든다는 것이 다르코 수빈의 주장이다. 다르코 수빈은 이를 통해 SF의 환상은 단순히 미래를 예언하거나, 수용자들로 하여금 꿈과 희망을 가지게 만드는 데서 그치지 않고 오히려 현실을 풍부하게 사고하고 통찰할 수 있게 만든다고 주장했다.(『The Routledge Concise History of Science Fiction』, Mark Bould, Sherryl Vint, Routledge, 2011.02.24.



  2. 김보영의 『종의 기원담』과 비인간


  21세기 이전의 SF는 비인간 행위자를 문제적 존재로만 다뤄왔다. 비인간은 인간에게 낯설고, 위협적이며, 문제적이고, 위태로운, ‘악(惡)’의 이미지로 사용되었다. 그렇기에 이전의 SF 속 비인간은 인간이 정복해야 할 대상에 불과했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 인류세 담론이 등장하고, 기후 위기에 따라 비인간과 인간이 관계 맺는 방식을 재고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타나면서 SF 속 비인간의 모습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단순히 이야기의 플롯을 만들기 위한 흥미 요소가 아니라, 이야기에서 선택하고 행동하는 제3의 캐릭터로서 소설을 끌어나가는 것이다.


  비인간 캐릭터를 행위자로 등장시키는 일의 의미는 SF가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재질문하는 데 있다. 비인간 캐릭터는 더 이상 악(惡)의 이미지로 인간과 대립하지 않지만, 인간과 더 가까운 곳에서 근원적으로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가 무엇인지 질문한다. 만약 비인간이 생각할 수 있다면 인간과의 경계는 어떻게 허물어질까?(인공지능) 비인간의 행동은 인간 세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기후위기) 이 질문들이 내재한 공통된 질문은 다음과 같다. 비인간과 인간은 과연 어떻게 공존해야 할까? 그리고 SF 작가들은 이 질문에 답하는 방식으로 꾸준히 집필해 왔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김보영의 『종의 기원담』이다.


  김보영의 『종의 기원담』은 한국 SF 최초로 전믿서상 후보에 오른 소설로, ‘인간과 비인간의 인간적 초상을 나란히 그려낸 점’을 높게 평가 받고 있는 작품이다. 이 소설은 총 3부작으로 이뤄져 있으며, 비인간인 로봇의 시점에서 인간을 바라보는 일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이야기는 “어째서 로봇은 자신이 창조되었다는 상상에서 안정을 얻지?”(14쪽)에서 시작되는데, 공장과 기계, 기름과 장치에 의해 자신들이 작동하고 창조되었다는 걸 자랑스러워하는 로봇들이 ‘생물’을 발견하면서 맞닥뜨리는 실존의 문제를 생생하게 그려낸다.

비인간의 자리에서 인간을 보는 일은 인간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창조’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일이다. 인간이 실존의 위협을 느끼는 순간을 로봇도 느낄 수 있다는 생각은 단순히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를 역전한 것이 아니라 ‘생물’과 ‘비생물’ 입장 모두를 살피면서 함께 공존할 수 있는 세계의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이 소설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아이작 아시모프가 로봇에서 제시한 ‘로봇의 3원칙’을 로봇만이 아닌 인간에게도 적용한다는 부분이다. 인간이 비인간을 경멸하거나 숭배하지 않고 비인간 자체로 보았을 때 공존이 시작된다는 점을, 비인간의 입장에서 인간에게 ‘로봇의 3원칙’을 적용함으로써 소설은 인간과 비인간의 공존의 첫 발자국을 내딛게 한다. 인간과 비인간의 공존이라는 현대 SF의 주제가 가장 전면화되는 지점이다.



  3. 나오며 : 우리가 SF를 통해 읽는 것


  앞서 SF는 미래 담론을 내재하고 있는 문학 장르라고 이야기했다. 더불어 SF의 최근 담론은 비인간 행위자에게 초점화되어 있으며, 이는 기후위기와 인류세 등의 다양한 사회적 논의와 더불어 이루어진 것이라고도 언급한 바 있다. SF에서 적절하게 지적했듯, 앞으로의 21세기는 기후위기와 전쟁, 기아 등 다양한 사회 문제들을 앞두고 비인간 행위자와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시대가 될 것이다. 팬데믹을 통해 우리는 로봇뿐만이 아니라 미생물과 곤충 같은 아주 작은 비인간에도 영향을 받는 존재라는 것을 인지하지 않았나. SF는 그 점에서 선두적으로 우리가 생각해야 할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르 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SF를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과학적 상상력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나와 내 주변 타자와의 관계를 재점검하고 한발 더 나아가 어떻게 공존할 것인지를 질문하는 일이다. 이제 세상은 더 이상 인간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21세기에 들어 인간은 뼈저리게 느끼고 있으며, 비인간과 비생물, 인간이 서로 맺는 상호연관성에 어떤 의미를 두어야 하는지 배우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래 담론을 내재한 SF로 미래를 꿈꾸는 일은 우리가 앞으로 살아갈 방식에 대한 또 다른 제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4. 참고자료


- 이양숙. (2020). 한국소설의 비인간 전환과 탈인간중심주의. 한국문학과 예술, 34, 227-259, 10.21208/kla.2020.06.34.227

- 윤애경. (2022). 한국 SF소설에 나타난 포스트휴먼의 자유의지와 젠더 수행성. 국제언어문학,(53), 8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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