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돈 룩 업(Don't Look Up)>
어렸을 때, 하루는, 인형 옷을 만들고 남은 천을 함부로 주차장에 버려서 엄마에게 혼난 적이 있다. 쓰레기를 들킨 경위가 조금 웃긴데, 조각천을 봉투에 잘 싸서 버린 것도 아니고 그냥 베란다에서 주차장 쪽으로 천을 모조리 던져버려서 내 눈에 보이지 않게 했다. 곧 비가 올 듯 하늘이 흐렸던 날이라, 내 눈에만 안 보이면 다른 사람 눈에도 안 보일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어른의 눈에 버려진 천 조각들은 너무나 잘 보였고, 각도와 거리상 베란다에서 야외주차장 쪽으로 던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으며, 무엇보다 그 천 조각이 당시 내가 입던 원피스 옷감이었기 때문에, 엄마는 단숨에 내가 범인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나는 엄청나게 혼났다.
영화 <돈 룩 업>을 보며 그때가 떠올랐다. 일단 내 눈에 안 보이고, 쓰레기를 처리했으니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믿던 그 날이. 당연했다. 영화 <돈 룩 업>은 결국 무지를 넘어선 멍청함에 관한 이야기이며, 과학자의 말을 지지리도 듣지 않는 시민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마치 베란다에 쓰레기를 투척하고도 아무 생각이 없었던 나처럼.
그렇기에 영화 <돈 룩 업>은 SF 영화이기 이전에 코미디 영화다. 가장 재미있는 코미디는 타인의 무지를 꼬집고 풍자하는 것인 까닭이다. 남의 멍청한 짓을 지적할 때만큼 우리가 즐거움과 쾌감을 느끼는 순간은 많지 않다. (아이들이 태어나 가장 먼저 배우는, 그래서 가장 흔한 욕이 ‘바보’가 아닌가?) 영화 <돈 룩 업>은 바로 이 지점을 정확히 공략하여 ‘멍청함’의 사회적 역학을 코미디로 풀어낸다.
멍청함은, 그러니까 바보짓은 인류의 유구한 역사다. 오죽하면 <바보의 세계>라는 논픽션까지 출간되었을까. 인간들은 쓸데없는 짓을 벌여 사서 고생하고, 혹독한 대가를 치르는 동시에 쓸데없는 짓에서 엄청난 성취를 이룬다. 바보짓과 발전은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 있다. 영화 <돈 룩 업>에서 과학자들이 ‘쓸모없는’ 천문학을 연구하다가 혜성을 발견한 것도, 시민들이 그 사실을 의심해 시위가 일어나는 것도, 정부에서 혜성에서 천문학적인 금액의 자원을 발견해 혜성 파괴를 중단한 것도 모두 같은 바보짓의 연장선에 있다.
논픽션 <바보의 세계>가 바보짓의 희망편이라면 영화 <돈 룩 업>은 바보짓의 절망편이다. 인간은 멍청해서 일을 벌이고, 멍청해서 고생하며, 동시에 위대한 발견을 했다가 그 멍청함 때문에 죽는다. 재밌는 점은, 영화 <돈 룩 업>이 시청자에게 “너희 정말 멍청해!”라고 소리치고 또 소리치는 모습을 보며, 그것이 대단히 사실적이면서도 동시에 웃긴다는 점이다. 그것은 ‘설마 인간이 저렇게 멍청할까’라는 생각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 인간은 그 정도로 멍청하다. 그리고 감독은 바로 그 지점을 공략해 시청자가 웃게 한다.
감독이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같은, 미디어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모를 수 없는 백인 배우들로 출연진을 꾸린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유명한 사람들이 세상이 멸망한다고 떠드는데, 그들을 믿지 않는 영화 속 시민들은 정말 멍청하지?”라는 코미디를 전달하기 위해서. 그렇기에 영화는 굉장히 메타적이며, 유명한 출연진들이 공식 석상에서 발화했던 이야기들을 되짚어보게 한다. (실제로 출연진 대부분은 기후 위기와 관련해 한 번 이상 연설한 적이 있는 배우들이다.)
그러는 한편으로 조금 소름 돋는 면도 있었는데, 영화에서 비(非)백인 배우는 겨우 두 명 등장하며, 그중에서도 아시안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긍정적으로 보면 인구 중 공식적인 석상에서 발화할 수 있고 그게 영향을 끼치는 사람들의 퍼센트(%)를 나타낸 것일 것이다. 부정적으로 본다면 할리우드에 고착된 백인중심주의일 수도 있고. 하지만 어느 쪽으로 생각하든 시청자는 배우들의 인종 구성이 꺼림칙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이 영화 자체가 콘텐츠 안팎으로 동시대적인 ‘멍청함’을 생각하게끔 구성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영화 안의 인종 비율을 비교하는 동시에 시청자는 현실의 인종 구성과 그들의 발화권을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고민하게 된다. 왜 사람들은 비백인의 말을 듣지 않지? 인류의 전체적인 비율을 따졌을 때 백인보다는 백인이 아닌 사람들이 더 많은 편인데.
영화 <돈 룩 업>이 메타적인 영화인 이유는 바로 이 고민의 연장이 끊이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영화 내부에서 시작된 질문은 결국 영화 외부의 질문, ‘인간은 왜 이렇게 멍청한가’, ‘인간의 멍청함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라는 궁금증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영화는 결코 이 질문에 대답을 주지 않지만 SF라는 극단적인 사고실험을 통해 실제 일어날 수 있는 현상의 한편을 보여주고 있다. 이 영화의 메시지가 단순히 "제발 과학자들 말 좀 들어, 멍청이들아"에서 그치지 않는 이유다.
나 역시 SF를 쓰고 있고, 과학에 관심이 많으며, 인류의 멸망을 바라지 않는다는 점에서 영화 <돈 룩 업>은 정말 재미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나 역시 과학자가 아닌 시민이며,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이 더 많고, 상당한 의심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영화 <돈 룩 업>은 역린을 건드리는 콘텐츠이기도 했다. “너희 정말 멍청해, 알아?”라고 두드리지만 끝내 그걸 인정하지 못하는 내 심정을 그대로 표현해서 기분이 나빴다. 하지만 그래도 내 세상을 한 번 더 두드렸다는 점에서 좋았고……. 복잡한 심경을 그대로 현실 세계에 질문하게 한다는 점에서 영리한 콘텐츠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보는 정말 웃긴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멍청한 짓을 멍청하다는 생각 없이 하고 있는 걸 옆에서 보는 건 생각보다 즐거운 일이니까. 하지만 그 멍청함이 전세계적인 단위로 벌어진다면 어떨까. 모두가 자신의 멍청함을 두 손으로 가린 채 바보짓을 계속 이어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영화 <돈 룩 업>은 분명한 코미디다. 하지만 SF이며, 사고실험이고, 웃으면서도 정색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것은 모두 인간이 멍청하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당장도 우리는 하늘을 두 손으로 가리고 멍청한 짓을 이어가고 있지 않은가. (기후 위기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