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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네 Jun 27. 2024

당신의 죽음을 기억하겠습니다

일본 드라마 시리즈, <언내추럴>

<언내추럴> 7화를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 죽으면 다들 뭐가 잘못되었는지 알 수 있지 않을까?’

23살, 모호하게 짧은 시간 동안 내가 겪은 부조리와 부당하게 들어야 했던 폭언과 타인들이 나를 배신한 순간들을 모두 고발할 수 있을까? 내가 죽기만 한다면.

<언내추럴> 7화는 바로 이런 생각을 한 고등학생의 이야기에서 시작한다. 자신이 죽으면 자신과 친구를 괴롭혔던 무리를 세상에 고발하고 처벌할 수 있을 거라고 믿은 학생의 이야기. 이 학생과 함께 괴롭힘을 당했던 친구는 진실을 알리기 위해 정체불명의 가면을 쓰고 인터넷 생중계를 시작한다. 무고한 죽음과 학교폭력의 진실, 사람들의 방관을 말하기 위해서.

드라마를 보면서 내 이야기가 그 위로 덧씌워져 보인 것은 당연했다. 나는 초등학교 때 왕따를 당했고, 중학교에서는 악의적인 소문에 시달렸으며, 고등학교 때는 가정이 경제적으로 무너지는 것을 보았다. 대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코로나 19 팬데믹이 터졌고, 겨우 학교에 갔을 때는 교수님으로부터 온갖 험담을 들으며 학기를 겨우 마무리 지었다. 그때마다 내가 품었던 복수심. <언내추럴> 7화를 보며 나는 주인공이 느낀 복수심과 ‘죽음’을 수단으로 사용하는 범죄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주인공 나카도


<언내추럴>은 범죄의 사건 현장인 ‘시신’을 부검하는 법의학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일본 드라마 시리즈다. 총 10화에 달하는 시리즈에서, <언내추럴>이 타살된 피해자를 바라보는 시각은 일관적으로 유지된다. 바로 누군가의 ‘수단’으로 이들의 죽음이 쓰였다는 것. <언내추럴> 속 범죄자들은 각자의 유희, 복수, 필요에 따라 피해자를 살해하고 이를 은폐한다. 법의학자는 이때 범죄자들이 남긴 흔적들을 따라 범죄를 추적하며, 끝내 살해당한 피해자를 애도하며 한 편의 극을 마무리 짓는다.

흥미로운 점은, <언내추럴>이 일반적인 범죄 드라마의 규칙을 따라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범죄 스릴러 드라마는 피해자가 살해당하는 장면을 자세히 묘사한 다음, 가해자의 얼굴을 감추며 형사나 탐정이 그를 추적하는 것을 최우선에 둔다. 하지만 <언내추럴>은 다르다. 주인공이 형사나 탐정이 아닌, 법의학자이기 때문이다. 법의학자는 공간적인 사건 현장과 시신이라는 사건 현장 모두를 보며 사건을 재구성해 나간다. 그렇기에 <언내추럴>에는 범죄 장면의 재연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법의학자의 앞에 놓여 있는 것은 범죄가 끝난 뒤의 시신이기 때문에.

<언내추럴>이 또 하나 독특한 이유는, 사회 문제를 고발하겠다는 의지보다 ‘죽음을 꼭 기억하겠다’라는 메시지에 이야기의 초점을 맞춘다는 것이다. <언내추럴> 속 가상의 법의학 연구소인 UDI에는 개인적으로 부검을 원하는 사람들이 찾아오고, 법의학자들은 그들의 요청에 따라 시신을 부검한다. 특정 죽음의 이유를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과 그들을 위해 진실을 파헤치는 법의학자. 이 두 가지 분류의 인물들이 전체 극을 이끌어 간다. 그것은 살인 사건이든, 우연한 사고든, 혹은 전염병이든 상관없이, ‘죽음을 기억하려는 자들’의 의지에 따라 이루어진다. 즉, <언내추럴>을 이끌어가는 힘은 죽음의 진실을 알고 싶어 하고, 기억하고 싶어 하는 인물들의 의지다.


주인공 미코토


<언내추럴>은 메인 플롯과 서브 플롯이 탄탄하며 에피소드 구성과 대사, 장면 모두 흠잡을 곳 없이 완벽하다. 그렇기에 모든 에피소드를 재미있게 볼 수 있었지만, 나는 바로 앞문단의 이유 때문에 ‘죽음을 기억하려는 의지’가 유독 두드러졌던 7화를 잊을 수 없다. 자신의 죽음으로 모든 것을 폭로할 수 있길 바랐던 소년과 그 소년을 막지 못했기에 죄책감에 시달리는 친구, 그리고 진실을 위해 노력하는 법의학자들. 그동안의 범죄 드라마가 범죄를 유흥과 카타르시스의 수단으로 사용했다면, <언내추럴>은 죽음을 수단으로 사용한 이들을 처벌하고 그들 죽음의 억울함을 기억하려는 의지가 돋보인다는 점에서 마음에 오래 남았다.

동시에 이런 생각이 들었는데, 만약 지금 자살을 수단으로 진실을 고발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꼭 말려주고 싶다. 하지만 만약 말리지 못해 그 사람이 목숨을 끊었다면, 끝에 끝까지 진실을 파고들어 그 사람이 말하고자 했던 바를 함께 이야기하고 싶다. 그렇게 한 사람 한 사람의 죽음이 수단으로 쓰인 과정을 모두 풀어내고 온전한 죽음으로 남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싶다. 드라마 <언내추럴>이 말하고 싶었던 것도 바로 이 지점이 아니었을까. 당신의 죽음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으나, 만약 죽었다고 하더라도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가 당신의 죽음을 기억하겠습니다,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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