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건강, 갱년기우울증, 속을 진정시켜주는 생강
콜록 콜록.
일교차가 큰 요즘 같은 환절기엔 감기가 잊지 않고 내 몸에 들렀다가 간다. 올봄은 조금 길고 심하게 머물다가서 이게 또 코로나인가 했더랬다. 그렇게 기침을 하다보면 미지근한 물이나 따뜻한 차 한 잔이 생각나곤 한다. 목이 칼칼하니 적당히 소독도 되고 목도 달래줄 수 있는 생강차.
감기 걸리기 쉬운 겨울엔 약속이라도 한듯 프랜차이즈 카페에서는 일제히 시즌메뉴로 '진저'가 들어간 메뉴를 출시하고, 한겨울의 중심인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시그니처처럼 진저브레드가 나온다. 비단 겨울이 아니더라도 여름철 에어컨 바람 아래에서 콜록거릴 때면 불현듯 스치곤 하는 생강.
w. 마케터 Jane
목과 기침, 겨울은 생강을 떠올리게 한다. 아, 김치 김장도.
한국인이라면 마늘과 더불어 매일 먹고 사는 생강은 한국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향신료인 후추 다음으로 많이 쓰인다.
음식을 만들 때 소량 첨가하거나 뿌리 부분만 먹는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생강 그 자체를 고춧가루와 함께 버무려 생강김치를 만들어 먹기도 하고, 줄기와 잎을 바람과 볕에 잘 말려 된장이나 고추장, 간장에 넣어두고 반찬으로 먹기도 한다. 그리고 생강은 옛부터 약으로도 쓰여왔다.
생강차만 마셔도 생강이 맵쌀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이 맵쌀한 성분은 진저롤(Zingerol)로, 생강만이 가지고 있는 성분이라 이름도 진저롤이다. 생강이 가진 따뜻한 기운 역시 이 진저롤에서 온다. 그렇기에 동서양을 막론하고 겨울철 카페를 휩쓰는 진저 음료 출시는 아주 자연스러운 흐름일 것이다. 이 흐름에 따라 겨울에 생강차를 마시고 있다보면 마냥 맵고 쓴맛만 느껴지는 게 아니라 단맛도 느낄 수 있다. 진저롤 성분이 열을 받게 되면 단맛이 나는 진저론(Zingerone)이 되기 때문이다. 생강은 생으로 먹는 것도 좋지만 찌거나 말려서 막으면 진저롤, 쇼가올(Shogaols)과 같은 성분의 효능이 더욱 높아진다.
진저롤은 몸을 따스하게 해주고 환절기 감기에 효과있으며, 소화촉진과 심혈관계 질환 예방에 도움을 준다. 진저론은 항산화 기능과 항염작용의 효과가 있으며, 노화를 방지하고 생강의 매운 맛을 단맛으로 완화시켜준다. 쇼가올 역시 생강의 맵쌀한 맛의 원인 중 하나로 항염, 항산화, 관절염 및 근육통 완화, 구토 및 메스꺼움 억제 등의 효능이 있다.
작년에 베트남 여행에서 생강 마사지를 받은 적이 있다. 생강 마사지라니. 궁금해서 해봤다가 따가워 죽는 줄 알았다. 피부는 따가웠지만 이후 여행 피로와 근육통이 싹 풀렸던 게 기억난다. 마사지가 끝나고도 한참이나 등에서 은은하게 올라오던 따뜻한 온기도.
- 강한 살균작용으로 거담, 기침, 감기를 치료하는 데 효과적
- 항산화 효과와 활성산소로 인한 유전자 손상 방지
- 구토를 멈추게 하고, 혈중 콜레스테롤과 혈압을 낮춤
- 디아스타아제 단백질 분해효소로 소화촉진
- 복부팽만, 소화불량, 가스 제거에 도움
- 진저롤 성분이 몸(복부)을 따뜻하게 하기에 여성 냉증이나 환절기 감기에 도움
- 메스꺼움을 억제하기에 임산부 입덧에도 도움
생강은 생강 강(薑) 자체가 한자이다. 날 것인 생강, 잘게 잘라 설탕에 졸인 편강, 찌거나 삶아서 말린 건강, 불에 구운 흑강 등으로 분류된다. 우리나라에선 경북 영주의 특산물이기도 하다. 생강 특유의 맵쌀한 향과 아릿함이 도넛과 만난 영주 생강도넛이 유명하다. 중국, 홍콩 등 중화권에서는 샤오룽바오를 채썬 생강이 들어간 간장과 곁들여 먹고, 일본에서는 무슨 음식을 먹든 초생강을 쉽게 볼 수 있다. 유럽과 미국에선 크리스마스나 기념일에 진저브레드를 먹는데, 유럽에서 흑사병이 유행했던 시절 생강을 먹었던 사람들이 살아남은 것을 보고 헨리6세가 생강 먹기를 적극 권장하면서 진저브레드가 정착하게 되었다고 한다.
또 생강 향은 톡 쏘는 스파이시 계열로 정체된 기분을 환기시키며 낯선 오리엔탈에 대한 환상을 불러일으키기에 에르메스, 몰튼브라운, 아쿠아디파르마, 아르마니, 바이레도, 딥디크 등 매우 많은 유명 명품 향수의 원료가 되어왔다. 가라앉은 기분을 환기하고 에너지를 내는 향. 우리 모두 답답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매운 게 확 당길 때가 있다. 열증과 기분을 환기시키는 생강은 옛부터 여성 갱년기 증상과 우울증 치료제로 쓰여왔다. 궁중 여인들이 포로 생강즙을 짜서 갱년기 우울증 치료에 썼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렇듯 생강 향은 따뜻한 특성으로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동시에, 톡 쏘는 향으로 기분전환과 활기를 불어 넣어 다시 시작할 힘과 동기를 준다.
생강은 숙취로 메스껍고 토할 것 같을 때 배와 함께 숙취해소에 도움을 주고, 해외에서는 멀미할 때 권장하기도 한다. 분다버그와 같은 생강이 들어간 진저에일은 비행 중 기내 인기음료이며, 멀미방지와 소화를 돕기 위해 기내식에도 생강이 첨가된다. 생강의 디아스타아제 때문인데 소화를 돕고 복부팽만, 뱃속 가스제거에도 탁월하다. 배가 더부룩하다면 생강차 한 잔이 도움될 것이다.
가스 얘기가 나와서 덧붙이자면, 매해 여름쯤이면 신문이나 기사에서 생강굴 사고를 접하곤 한다. 생강굴 메탄가스 사고. 수직형의 토굴 안에는 작물이 부패하면서 유해가스가 발생하는데 일반 공기 중 산소 농도는 20%지만 여름철 생강이 저장된 토굴 안에선 산소농도가 약 1.5% 이다. 그래서 들어가기 전에 신문지에 불을 붙여 토굴 안으로 던져보는데 불이 꺼지면 산소농도가 낮다는 것이니 꼭 환기와 설비를 켠 후 들어가야 한다.
한 번쯤 들어본 적 있는 진저비어, 진저에일은 마치 도수가 있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사실은 대부분 탄산수에 생강향을 첨가한 무알콜 음료다. 진저브레드 쿠키를 생각하고 단독으로 먹었다간 조금 힘들 수 있다. 엄청 맛있을 줄 알고 먹었던 하리보 감초젤리 같달까. 진저에일은 술이나 기타 음료와 혼합하여 칵테일로 많이 쓰인다.
이렇듯 현대에선 생강을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지만 고려시대를 넘어서 중국, 로마 등 옛부터 생강은 국가에서 관리하는 귀한 1등품 상품이었다. 고종은 생강차를 마시고 사신은 인삼차를 마셨을만큼 삼 이상의 대우를 받았다. 중종 땐 세자가 동궁전 관원들에게 직접 쓴 서찰과 생강을 내린 일화도 있다. 중세 유럽에서도 매우 귀한 향신료였는데, 향신료 전쟁의 주범인 육두구처럼 신분을 과시하기 위한 용도였다. 양 한마리와 생강 몇 줌이 교환될 정도로 권력과 부의 상징이었다고.
오천원권의 주인공, 율곡 이이는 생전 생강차를 즐겨 마셨다고 한다. "화합할 줄 알고 자신의 색을 잃지 않는 생강이 되어라"라는 말과 함께. 생강의 향과 맛처럼 자신만의 강한 개성을 지키고, 필요할 땐 과감히 자신의 개성을 죽여 화합해야 함을 뜻한다. 새로운 맛과 향을 낼 수 있도록.
요근래 날씨가 갑자기 더웠다가 쌀쌀해졌다가 변덕스럽다. 회사의 에어컨은 상시 켜져있고, 나는 냉증 걸린 사람처럼 사무실에서만큼은 따뜻한 물을 마신다. 몸이 서늘하고 목이 칼칼할 때면 이 따스한 계절에도 생강차가 생각난다. 아마 맵쌀해서 목이 따가울 것이다. 이 맵쌀함은 생강만이 가진 생강다움이다. 잘못 씹으면 맵지만, 가끔은 달달해지고, 가끔은 향기로워지며, 가끔은 깊은 곳에서 사람을 건져내기도 하는.
어릴 적 싱크대 창가 앞 유리병이 기억난다. 엄마는 잘게 썰은 생강과 인삼을 꿀에 재워 병에 넣어두고 내가 잔병치레를 할 때마다 먹이곤 하셨다. 다 먹은 유자차 병에 들어있던 생강과 인삼.
사시사철 따뜻한 기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