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재 외 8명
예전에는 프로그래머들이 책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책상마다 책이 여러 권씩 있었고, 그중에는 대부분의 프로그래머가 들고 있는 유명한 책들도 있었다. 책의 쓰임새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뉘었는데, 하나는 프로그래머로서의 역량을 높여주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보를 필요할 때 제공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후자를 목적으로 하는 책들을 특별히 ‘레퍼런스’라고 불렀던 것 같다.
레퍼런스가 필요한 이유는 프로그래머가 해결해야 할 문제가 다양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알아야 하는 것도 많은데, 그것을 머릿속에 다 기억하고 있기는 어렵다. 따라서, 큰 맥락은 이해하고 있되, 구체적인 방법이나 도구에 대한 것은 레퍼런스를 두고 필요할 때 찾아봤다. 얼마나 많은 것을 외우고 있는지는 면접을 통과할 때나 필요했고, 실무에서는 얼마나 필요한 정보를 빨리 찾아내는가가 더 중요했다.
비슷한 일이 팀장에게도 벌어진다. 실무자로서 뛰어난 성과를 만들어 내던 사람이, 팀장으로서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발생한다. 실무자일 때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일을 해야 하고, 겪어보지 않았던 문제들을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팀장이 처한 상황의 종류가 매우 다양하다. 산업에 따라 다르고, 상사와 팀원의 특성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따라서, 한 두 가지 맥락만으로 팀장으로서 해야 할 일을 모두 잘 수행하기는 어렵다.
시중에는 팀장을 위한 책이 많다. 하지만, 대부분은 커다란 맥락을 다루고 있다. 그래야 많은 사람이 그 책을 볼 것이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상황에 대해 구체적인 지침을 알려주려고 하면 대상 독자가 적어진다. 그런데, 현장에 있는 팀장들에게는 그런 책이 필요하다. 큰 맥락을 이해하는 것이 물론 필요하지만, 당장 내가 겪고 있는 구체적인 문제에 대해 조언을 줄 수 있는 책도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 책 <나는 팀장이다>는 바로 그런 용도로 사용하기에 적합한 책이다. 말하자면, 팀장을 위한 ‘레퍼런스 북’인 셈이다.
<나는 팀장이다>는 아홉 명의 저자가 참여한 책이다. 단순히 책의 일부를 나누어 쓴 것이 아니라, 아홉 명의 저자가 모여 모든 내용을 검토한 듯하다. 그래서, 내용이 상당히 충실하다. 전체적인 구성도 충실하지만, 하나의 주제에 대해서도 빈틈없이 다루려고 노력한 모습이 보인다. 물론, 한 권의 책에서 다룰 수 있는 양은 제한되어 있다. 그래서 주제 하나를 깊이 들어가지는 못하고 있다. 하지만, 어떤 것을 고려해야 하는지는 빠뜨리지 않고 언급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팀장이다>의 또 하나의 특징은 매우 현실적이라는 것이다.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문제나 해결 과정을 보면, 저자들이 직장 생활을 잘 이해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특히, 대한민국의 직장 생활을 잘 이해하고 있다. 시중에 나와 있는 책들 중에는, 우리나라의 실정에 맞지 않거나 직장 생활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책이 많이 있는데, 이 책은 직장 생활을 수십 년 해본 사람이 썼다는 느낌이 금방 들 정도로 현실에 맞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물론, 현실적인 이야기일수록 상황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수 있다. 동일한 현실에서는 작동하지만, 다른 현실에서는 작동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 책에 나온 예시들 중에도, 대기업에서는 그럴 것 같지만 내가 몸 담았던 IT 쪽에서는 갸우뚱하게 되는 부분도 있었다. 그런데, ‘레퍼런스’라는 것이 원래 그렇다. 나와 비슷한 상황의 이야기를 찾아서 보는 것이 ‘레퍼런스’다. 따라서, 이 책의 내용을 어디에나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기보다는, ‘이렇게 접근하는 방법도 있다’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바둑에는 ‘사활묘수’라는 것이 있다. 특정 상황에서 나에게 유리한 결과를 가져오는 절묘한 선택을 말한다. 이 사활묘수만 잘 안다고 해서 고수가 되지는 않는다. 전반적인 흐름이 좋지 않은데 구체적인 부분의 선택 몇 가지를 잘한다고 해서 승패를 바꾸지는 못한다. 하지만, 어느 정도의 실력을 쌓고 나면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이 사활묘수다. 나와 상대가 비슷하게 맥락을 이해하고 있을 때는, 디테일한 부분에서 승패가 갈리기 때문이다.
리더십에 관해 전반적인 이해가 없는 상태에서 이 책을 먼저 읽는 것은 크게 추천하지 않는다. 오히려 혼란스러울 수 있고, 책에서 이야기하는 것과는 다른 결과에 도달할 수 있다. 하지만, 리더십에 대해 어느 정도의 이해를 갖추었다면, <나는 팀장이다>도 한번 읽어 보기를 권한다. 그러면 통찰의 빈 공간을 메울 수 있고, 더 다양하게 생각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