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연'은 시간의 슬픔이자 무기력이다. 반대로 새는 우리의 희망의 등불이자 별이며 무지개이자 환희의 노래다. 올리비에 메시앙(Olivier Messiaen 1908-1992)
클라리네티스트에게는 매우 가혹한 작품이다. 모든 음역대를 넘나드는 고도의 테크닉을 구사하며 악보의 음악적 의미를 잘 이해하고 연주할 수 있어야 한다. 연주자뿐 아니라 감독들에게도 깊은 통찰의 해석을 요구하는 이 작품을 영상화하는 것은 정말 큰 도전이었다.
1. 제목의 의미
abîme는 현대 프랑스어에서 잘 쓰지 않는 문학적인 단어다. 유의어로 gouffre가 있는데 싱크홀을 뜻한다. 이 작품에서는 '깊은 수렁'으로 해석된다. 번역본으로는 깊을 심(深), 못 연(淵)을 쓴다.
이 제목에서 메시앙이 노트에 남긴 슬픔과 무기력의 의미와 무게감을 느낄 수 있다. 어떤 방법을 써도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의 운명, 그리고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유일한 자의 고독함과 허무함이 가득 묻어난다. 해서 오래된 책들과 체스판, 기하학적인 장식품, 지구본 등의 소품으로 지식과 능력의 무능함을, 그리고 고흐의 방을 연상시키는 세팅과 흑백 컬러로 고독함을 표현하고자 했다.
2. 새의 모놀로그
클라리넷 솔로로 연주되는 이 곡은 앞서 1번 '수정의 전례'에서 예배를 인도한 새의 독백이다. 이어 요한계시록 10장에 등장하는 '시간의 종말을 선포한 천사'의 외침을 듣고 슬픔에 빠진다. 새는 이미 시간의 비밀과 운명을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곧 현실로 다가온다는 사실에 대한 분노와 연민을 노래한다.
이 내용은 단순한 추측이나 상상이 아니다. 이 해석을 뒷받침하는 단서들은 모두 악보에 나타나 있다. '시간의 종말을 위한 사중주'는 총 8개의 악장으로 되어있는데 각 넘버의 메인 모티브들이 모두 3번에 집합되어 있다. 시간이 종말 하는 과정의 각 장면을 3번에 모두 담은 것이다.
이 숨은 의미를 표현하기 위해 넣은 장치가 3분 30초부터 나타나는 크리스털 상자 속 화면이다. 각 넘버의 장면을 파노라마처럼 보여줌으로 시간의 운명을 알고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새의 슬픔을 나타내고자 했다.
새의 독백을 돕는 또 다른 장치는 시계다. 커다란 괘종시계에 비치는 새의 걱정스러운 얼굴과 시간의 연약함을 나타내는 작은 탁상시계가 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의미하는 모래시계는 이후 종말이 가까워지는 5번부터 힘을 잃고 바닥에 쏟아진다.
3. 숨도 쉴 수 없었던 촬영
이 영상은 처음부터 끝까지 9분 동안 화면이 한 번도 전환되지 않는다. 정일성 촬영감독의 영화 '서편제' 이후 뮤직비디오로는 처음 시도된 롱테이크 원샷 촬영이다. 지미집 감독의 능숙한 기술과 음악을 타는 센스 그리고 고도의 집중을 요구하는 작업이었다. 독백의 연극적 느낌을 살려보고자 한 '하늘에서 내려준 미친놈', 현감독의 아이디어였다.
솔직히 처음에는 정말 가능할까 싶었다. 걱정과는 달리 촬영이 시작되자마자 지미집 감독은 클라리네티스트와 호흡하며 무섭게 몰입했고 심지어 시간이 지날수록 감잡았다는 듯 자유롭게 움직였다. 현장에 있던 모두는 지미집의 움직임을 지켜보는 동안 숨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그리고 마지막 엔딩 후 몇 초의 정적이 흘렀다. 하나둘씩 탄성과 박수가 터져 나왔다. 모두의 진심이 만들어낸 그 순간의 희열을 아마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이다.
4. 클라리네티스트 김우연
서른 초반의 젊은 연주자로 세계적인 클라리네티스트 자비네 마이어의 첫 한국인 제자다. 클라리네티스트 김우연은 표현이 과감하며 반응이 빠른 연주자다. 일부 마니아들은 이 연주자의 음색이나 표현이 조금 과하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김우연의 이런 캐릭터가 '시간의 종말' 프로젝트에는 꼭 맞는 연주자였다고 생각한다.
사실 녹음 과정에서 도저히 이유를 알 수 없는 음성과 소리가 섞여 들어와 이틀을 통째로 날렸었다. 어쩔 수 없이 마지막 날 11시간을 집중해서 녹음해야 하는 상황이었고 클라리네티스트의 입술이 버틸 수 있을지가 관건이었다. 연주자를 생각하면 감독으로서 절대 내리면 안 되는 결정이었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긴 시간의 녹음을 버티고 마지막 테이크였던 3번을 완성해내는 클라리네티스트 김우연의 프로 마인드와 정신력은 실로 대단했다. 또한 지미집 감독과의 호흡을 끌어낸 것도 김우연 특유의 에너지 덕분이다. 제 아무리 뛰어난 촬영 감독이라 해도 피사체의 몰입이 없으면 좋은 결과물을 내기 어렵다.
3번 '새들의 심연'은 클라리네티스트와 지미집 촬영 감독, 그리고 함께 작품을 깊이 들여다봐준 소품팀의 헌신으로 만들어졌다. 새로운 도전을 서슴지 않고 작품에 모든 것을 쏟아내는 아티스트들과 작업할 수 있는 것은 정말 큰 행운이었다.
Special Point
한 편의 모놀로그 연극을 보는 느낌으로 접근해보시길 추천드린다. 20세기 프랑스 현대음악이 새롭게 보이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