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사이틀 'Lament' 공연까지 정확히 3주 남았다. 올해 초부터 서서히 준비를 시작했고 지난달부터는 모든 공연 스케줄을 비운 채 이 공연에만 집중하고 있다. 2차 세계대전 중 작곡된 프로코피예프의 전쟁 소나타 6,7,8번 같은 대작을 한날 한꺼번에 연주하는 것은 피아니스트에게 큰 도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작곡가 류재준의 위촉곡인 'Lament'는 세계초연으로 이 날 함께 무대에 오른다. 세계초연이란 공식적으로 작품이 이 세상에 나온다는 것을 의미한다. 작곡가에게는 가장 중요한 '해산의 날'인 셈이다.
이렇게 온 세포를 짓누르는 부담감에 12월부터는 밤낮없이 피아노 앞에 앉아있었다. 그나마 글을 쓰는 약간의 여유를 갖게 된 것이 용할 정도다. 잠을 쪼개가며 하루 10시간 이상 피아노 앞에 있으니 근육통으로 몸이 남아나지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은 편했다. 오직 작곡가와 음악 그리고 나만이 존재하는 세계에 들어와 있는 시간들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시시 때때로 몰려오는 부담감을 떨쳐버리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했다.
연주자마다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 공연날까지 3주가 남았다는 것은 이제 음악을 정리하는 단계임을 뜻한다. 그동안 악보를 들여다보며 소리를 찾고 각 프레이징의 의미를 찾으며 자료를 수집했다면 이제는 어떻게 음악을 더 자연스럽게 말하고 전달할지 고민하고 연습하는 것이다. 혼자 연습할 때와 무대에서의 느낌은 또 다르기 때문이다. '잘 친다'의 느낌과 '감동이 있다'는 느낌이 다른 이유는 관객과의 소통이 얼마나 원활한가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오늘부터 가급적 마음의 여유가 허락하는 한, 공연까지 남은 날들을 기록해보려 한다. 작품과 마주하며 나 자신을 온전히 불태우는, 어쩌면 다시는 오지 않을 이 시간들을 남겨놓기 위해서다. 그리고 이 시대를 애통해하는 'Lament, 애가'의 의미를 함께 나누려는 관객들과 이 여정을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기도 하다. 힐링 혹은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이런 공연에 발걸음 하는 관객들이 참 귀하지 않은가. 그저 감사한 마음으로 오늘도 충실히 피아노 앞에 앉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