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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가람 Jan 20. 2022

우리는 모두 '종말'을 향해 달려간다

메시앙이 바라본 요한계시록

'종말' 終末, end, eschatology

시간이나 사건의 끝. 마지막. 인생의 끝. 우주적으로는 세상이 끝나는 시간


메시앙이 나치 포로수용소에서 작곡한 작품 '시간의 종말을 위한 사중주'의 원 제목은 'Quatuor pour la fin du Temps'이다. 프랑스어를 잘 아는 사람이면 의아할 것이다. 문장의 첫 글자는 대문자를 쓰는 게 맞다.

그러나 프랑스어에서 이렇게 제목의 마지막 단어, 'Temps'이 대문자인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제목을 쓸 때 모든 단어 앞에 대문자를 사용하는 영어와는 달리 프랑스어는 그렇지 않다. 원래대로라면 이 문장에서 'Temps'은 소문자인 'temps'으로 쓰는 게 맞다.


메시앙이 '시간'을 proper noun, 고유명사로 썼다는 사실로 우리는 그가 이 '시간'에 얼마나 큰 의미를 부여하고자 했는지 알 수 있다. 그는 '시간'을 어떤 고유한 운명을 가진 하나의 존재로 생각했다. 성경의 예언서 요한계시록 10장에 나오는 '세상의 종말을 선포하는 천사'에서 기인한 발상이었다.


이 작품을 뮤직비디오로 제작하며 가장 어렵고 조심스러웠던 부분이 바로 이 요한계시록이었다. 종말을 다룬 예언서인 만큼 자칫 이단 종교적 해석으로 비칠 수 있는 위험 때문이었다. 시놉을 쓰기 전 먼저 요한계시록에 대한 자료들을 약 2개월간 수집했다.


워낙 상징적 표현이 가득한 예언서라 해석이 너무 다양했다. 목사님들의 자문을 받으며 최대한 거르고 걸러 정리한 해석을 놓고 보니 그제야 메시앙이 바라본 계시록이 보이기 시작했다.   


메시앙이 생각한 요한계시록은 묵시문학으로서의 판타지다. 묵시문학이란 신이 감추고 드러내지 않은 신비를 계시한 문학으로 자연계의 이상, 숫자, 천사화의 대화 등 상징을 통해 우주론적 종말을 표현한다. 세상 모든 만물이 '할렐루야'를 외치는 거대한 예배 장면 또한 요한계시록에서만 볼 수 있는 판타지다.

(우리가 잘 아는 헨델의 오라토리오 <메시아> 중 '할렐루야' 또한 요한계시록의 내용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요한계시록의 이미지적 영감을 준 윌리엄 블레이크의 '천국과 지옥의 결혼 (Marriage of Heaven and Hell)


메시앙은 이 판타지적 종말을 '시간의 운명'으로 바라봤다. 그리고 이 스토리의 텔러로 '새'를 선택했다. 조류학자였던 그는 새에게 어떤 특별한 영적 에너지가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작품 속 연결되는 8개 곡은 새, 시간 그리고 예수 이렇게 세 개의 주제가 교차한다. 메시앙은 이 배치를 두고 창세기에 나오는 7일간의 창조(Creation) 그리고 8일째를 평화의 날로 노트하고 있다.  


작품 전체의 흐름은 이렇다.

새의 예배로 시작하는 1번이 끝나면 2번부터 '시간'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후 6번까지는 종말을 맞이하는 시간의 운명을 보여준다. 마지막 7,8번은 시간이 완전히 사라진 뒤 일어나는 영원을 향한 새로운 세상의 모습을 나타낸다.


나치 포로수용소에서 작곡된 '시간의 종말을 위한 사중주'가 유독 와닿았던 것은 2차 세계대전이라는 당시의 사회적 상황이 전쟁과 크게 다르지 않은 현재 코로나19 상황과 닮았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언제 죽음이 들이닥칠지 모르는 불안을 안고 살아가는 인간의 나약함, 오늘이라는 축복도 결국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중인 인간의 운명, 그 굴레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영원성이 무엇인가에 대한 메시지를 던지고 싶었다.


그리고 해석적으로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현대음악에 대한 편견이나 오해를 풀고 싶기도 했다.


 아마 오늘의 배경 설명만으로도 영상 속에 새로운 것들을 발견할 수 있으시리라 생각한다. 작곡가 메시앙의 시각으로 관점을 조금만 틀어서 본다면 한층 더 신선하고 흥미로운 감상 포인트가 될 것이다.


디렉터로서 드리는 힌트는 크리스털 상자와 모래다. 각각 비밀과 시간을 상징한다는 점을 포인트로 두고 이 두 장치의 움직임을 따라가 보시길 추천드린다.


https://youtu.be/NsyRqH3 SL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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