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티븐 킹 Nov 30. 2022

붉은 융단을 깔아놓은 것 같은 칠면초

인천 인터넷신문 i-view(아이뷰)에  실린 글임 -객원기자 신분

https://naver.me/GEuWgMLO

칠면초 군락지로 석모도가 유명하다 하여 인천에서 1시간 40여 분을 로 이동하여 석포리 선착장에 도착하니 나룻부리항 시장이 맞이한다. 2017년 6월 28일에 개통한 석모대교가 생기기 전에는 강화도 외포리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석모도의 석포리 선착장에 내려야만 했다. 가보니 석포리 선착장은 철문으로 굳게 닫혀 있고 옆으로는 기다란 건물에 조그만 가게가 여러 채 줄지어 갖가지 농산물을 파는 시장이 형성되어 있다.

 인상이 좋은 문명자(72) 씨가 운영하는 ‘스마일’이라는 가게에 들어갔다. 새우젓과 순무, 고구마, 버섯, 마른 새우, 땅콩 등을 팔고 있다.

  “순무는 얼마예요?”

묻자

  “다섯 개인데 하나 더 줄게.”

오천 원어치만 사겠다 하니 원래 5개에 만 원인데 4개를 준다. 미안함으로 땅콩 한 대접에 5,000원과 새우젓 1kg에 15,000원 하는 것을 더 구매했다. 할머니는 고마워하면서 그동안의 인생살이를 실타래 풀듯 차근차근 펼쳐준다.

  강화도에서 태어나 열아홉 살에 서울로 가서 직장에 다니다 스물네 살에 통통배를 타고 석모도로 시집을 와서 농사를 짓고 살았다. 그때는 전기도 들어오지 않아 갖은 고생을 했다. 마흔세 살에 장사를 시작하였는데 물건을 머리에 이고 석포리 선착장에 먼저 간 순서로 자리를 차지하여 줄줄이 앉아서 농산물을 팔았다. 현재의 건물은 생긴 지 얼마 안 되었다. 그간 불이 난 때도 있었다며 지나간 세월 동안 말도 못 하게 힘들었다고 하소연한다. 줄곧 스마일 표정으로 말하던 할머니가 5년 전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말을 할 때는 숙연해졌다. 태풍주의보가 내려지면 발이 묶인 관광객이 민박하면서 물건을 많이 사 가서 장사가 잘 되었지만 석모대교가 생기는 바람에 장사가 안 되어 현재는 개시를 못하는 날도 더러 있다고 공개했다. 앞에 대섬은 물이 빠지면 걸어가서 새우, 소라, 굴을 잡았는데 현재는 바닷속이 많이 파여 나가 깊어져 들어갈 수가 없다고 안타까워한다.

  갈 수 없다는 대섬을 왼쪽에 끼고 걷노라니 칠면초가 보이고 낚시를 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인천 청학동에서 왔다는 지창환(54) 씨와 성종숙(52) 씨는 딸과 예비 사위, 아들과  함께 낚시를 하고 있다. 애완견 몽실이(화이트 삭스)까지 데려왔다. 내년에 결혼하기로 한 사위가 글램핑에 당첨이 되어 어젯밤 하루를 묵고 오늘은 대섬 앞에서 낚시를 한다며 밝은 모습으로 가족끼리 와서 즐겁다고 이야기한다. 자연 풍경이 좋아 저절로 힐링이 되고 무엇보다 공기가 맑아 기분이 상쾌하다고 말한다.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추억을 쌓아 만족스럽다며 달뜬 표정 속에 활짝 웃는 모습이 보여 소녀처럼 예쁘다. 뱃속에 담아 가는 것보다 눈에 담아 가서 더 좋다고 표했다. 무의도에서 주로 낚시를 하는데 이번에 석모도에서 하게 되었다며 바닷물에 튀어 오르는 물고기를 보니 어떤 종류의 고기가 얼마나 잡힐지 기대가 된다고 강조했다.

  바닷가 갯벌에는 칠면초가 얼굴을 붉히며 곧 사랑이라도 고백할 모양으로 빨간 융단을 깔아 놓은 듯 아름답다. 칠면초는 칠면조처럼 변한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염분이 많은 바닷가나 갯벌에서 군락을 이루고 사는 한해살이풀이다. 처음에는 녹색이다가 차차 자주색으로 변해 결국 붉은색으로 바뀌어 바닷가 근처가 레드카펫을 깔아 놓은 듯하다. 누렇게 익어가는 벼는 곧 추수를 하려는지 멀리 트랙터도 보인다. 억새와 갈대가 강화나들길 11코스를 은빛으로 출렁이는 춤을 추며 나그네를 반긴다. 코스모스는 길가에 울긋불긋 피어 수줍은 듯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다. 고추잠자리도 자신의 존재를 내세우며 모델이 될 터이니 사진이라도 찍어달라는 듯이 사뿐 앉아 시간을 벌어준다. 혼자 오롯이 걷는 들녘이 풍요롭다.

  서울 갈현동에서 왔다는 이정재(68) 씨와 최계용(63) 씨 부부는 장날에 맞춰 2일, 7일은 강화도 쪽으로 온다며 전국의 장날을 주로 찾아다닌다고 설명한다. 칠면초는 시 월 초에 와야 가장 예쁘단다. 볼음도에 가서 은행나무도 보고 북한의 연백평야도 보면 좋지만 배를 타고 가야 해서 주로 석모도에 자주 온다고 말한다. 여름 생선인 민어를 먹기 위해 목포 자유시장까지 간다며 6만 원을 주면 도톰하고 맛있는 민어회를 실컷 먹을 수 있다고 자랑한다. 운전하는 것이 힘들지 않아 하루 코스로 다녀올 때가 있다는 소리에 깜짝 놀랐다. 1일과 6일은 홍천이나 횡성 장에 가고 3일, 8일은 화천이나 양평 장, 0일과 5일은 충주와 여주 장, 4일과 9일에는 설악이나 양양 장에 가서 구경하고 필요한 물건도 산다고 알려준다. 석모도 민머루해수욕장에 들려 나오다 정자에 앉아 바람에 흔들리는 황금 들녘의 벼 물결을 바라보는 것이 가장 아름답다고 힘주어 말한다. 멋진 부부라는 생각으로 한껏 부러움을 가지고 헤어져 주차장에서 막 차에 올라타니 최계용 씨가 비닐봉지에 뭔가를 담아 꽤 먼 거리를 뛰다시피 달려온다. 여행 이야기를 들어줘서 고맙다는 뜻으로 귤을 여러 개 주나 보다. 나룻부리항에서 산 볶은 땅콩을 얼른 담아 주니 갑자기 마음이 훈훈하다. 이 세상은 정말 착하고 예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더 많다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자전거에 형형색색으로 페인트 칠을 하여 높이 쌓아놓은 곳은 보문선착장으로 환자 이송을 위한 헬기장이 있다. 이름만 들어도 상쾌한 강화 바람길이 펼쳐진다. 깊어가는 가을에 빨간 융단을 깔아놓은 것 같은 칠면초가 널려 있는 바닷가를 보고 싶다면 석모도에 가보기를. 많은 이들이 보고 행복해하기를 바라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1박 2일 전라도 봄꽃 여행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