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러브 Feb 07. 2022

꿈도 열정도 없는 삶은 비운의 삶일까?

픽사 영화 <소울>

영화 <소울> 포스터




'나에게 닥친 일을 가치 있게 바꾸는 것은 결국 나에게 달려있다' - 캠프 파워스 감독




열정 없는 삶은 비운의 삶일까?

픽사의 애니메이션 영화 <소울>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본 영화는 무기력하고 삶의 본질에 체념하던 한 때,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위로가 되었다.

감정이입한 대상은 주인공 '조 가드너'와 '소울 22호', 그리고 그들의 대비되는 상황.



1) 조 가드너의 초반 자아상

조 가드너는 재즈 피아니스트가 되겠다는 목표를 향해 하루하루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인물이다.

꿈을 이루기 위해 만반의 노력을 다하는 그의 모습과 행복에서 묻어난 땀과 눈물을 보면 다시금 '열정'의 의미를 곱씹게 된다. 어릴 적 아카데미 감독상을 거머쥐는 최초의 아시안 여자 영화감독이 되겠다는 꿈이 있었다. 열정에 사로잡혀 친구들을 소집해 소소하게 영화를 찍고, 제대로 된 형식조차 없이 시나리오를 써보였더랬다. 살면서 어떻게 열정이란 요인이 빠질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2) 터닝 포인트

조 가드너는 교통사고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게 된다. 재즈 피아니스트로서의 첫 걸음을 내딛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눈앞에서 순간의 불운으로 놓쳐버리게 된 것이다. 이때 우리는 삶의 허무함과 일회성을 상기하게 된다. 생전 꿈을 준비만 하다가 가버린 조의 삶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과연 그의 삶을 '비운'으로 치부할 수 있을까?



3) '태어나기 전 세상'

태어나기 전 세상은 말 그대로 출생 전 영혼들이 모여있는 곳이다. 삶에 대한 기대감으로 벅차올라야 할 이곳에, '소울 22번'만큼은 매사에 무기력하고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해 오랜 시간 태어나지 못하고 있다. 영혼이 된 조는 일련의 절차에 따라 소울 22번의 멘토가 된다.



4) 열정 vs 무열정

소울 22호는 죽어도 지구로 가고 싶지 않단다. 그에게는 삶의 의욕이 없단다.

조 가드너는 그런 그를 이해할 수가 없다. 주어진 삶에 감사하지 못하는 소울 22호의 불평이 그에겐 배부른 소리처럼 들렸을 지도 모르겠다. 상황에서부터 대비되는 둘은 옥신각신하면서도 그들만의 여정을 떠나게 된다.



5) 살아있는 것 자체로도 축복

부드러운 반전, 소울 22호는 실은 조 이면의 자아상이었다. 열정이 없는 삶은 가치가 없을 것이라는 두려움. 그것이 영혼으로 고스란히 드러난 형태였던 것이다. 꿈을 이뤄야한다는 열정-다른 말로는 압박을 목표로 매일을 달려오던 조는 한편으로 지쳤을 수밖에 없으리라. 그러나 그는 순수한 삶의 본질을 깨우치기에 이른다. 삶의 순간순간, 소박한 아름다움과 감각들을 보면 매일이 달라진다.




꿈을 이루지 못한 삶은, 열정 없는 삶은 과연 비운의 삶일까?




'걷는 가면'처럼 살아오며, 불가피하게 돈에 대한 간절함만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을 때다. 험악한 사회 속에서 어떻게든 내 자리를 마련하고자 고뇌하고 자책하는 나날 속, 삶에 던지는 것이라곤 오로지 원망뿐이었다. 안줏거리로 도대체 왜 찢어지는 고통을 겪으면서까지 꾸역꾸역 살아가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탄식한 기억이 난다. 간절한 내일과 보잘것없는 소망마저 좀처럼 이루어지지 않았다. 저주받은인생이라며 순간의 쾌락과 행복에 집중한 채, 모든 길과 가치를 놓아버렸을 때다.

그 시기에 이 영화를 만나고 나는 신비한 감각을 경험했다.


몸 속 혈관과 생생한 감각들이 선명하게 들려오고, 평소 의식하지 못했던 일상의 행복이 그제야 실감나는 느낌이었다. 때마침 꺼내보고 싶은 주기도문의 구절이 있다. (나는 세례받은 이래로 스스로를 천주교로 규정하고 있으나, 종교에 대해 대체로 무념무상인 사람이다. 다만 종종 성경 구절을 비유로 언급할 때가 있다)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시련과 고통이 주어진대도, 때로는 그 모든 것들을 감당할 수 없을지라도, 인생에서 주어는 '나'다. 길의 선택자 또한 나라는 뜻이다.


비상이 있으면 추락도 있고, 슬픔이 있으면 반드시 행복도 있다. 우는 것도, 웃는 것도, 새로운 내일을 배워나갈 수 있는 인간만이 지닌 축복이라고 할 수 있다. 고통을 느끼고 아플 수 있는 존재라는 것. 우리는 유정적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데 더 많은 의미를 얹어볼 수 있다.


주어진 시련과 고통마저 아름답게 승화시킬 수 있는 용기.

그것을 찾아나가고자 부딪히고 극복해내는 과정이 곧 삶이 아닐까.


무기력한 한숨에 잠시나마 생명을 불어넣어주는 마법. 영화 <소울>을 한줄평하자면 그렇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