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스스로를 ‘불’이라 정의 내린다.
물처럼 유하고 차분하지도, 땅처럼 매사에 올곧고 단단하지도, 공기처럼 정처 없이 자유롭지도 않은 탓이다. 불필요한 상황임에도 직설적으로 말할 때가 있으며, 그러한 실수가 타인에게 상처가 될 수 있음을 알기에 말하기 전 신중하도록 노력하는 편이다.
성질이 급하고 열정은 과다하나 끈기가 부족하다. 다만 종종 감정 조절에 서툰 모습은, 타오르다가도 그 시초에는 여린 불씨를 지니는 불의 형태를 닮았다. 작은 흠에도 쉽게 자책하고 타인의 의견에 지나치게 흔들리기도 한다. 공격적으로 보이지만 물을 끼얹는 순간 흔적 하나 없이 사라져 버리는 불씨처럼, 불은 내 내면의 나약함 또한 표방한다고 할 수 있겠다.
가장 중요시하는 가치는 단연코 ‘신뢰’이다. 좁고 깊은 우정을 선호하는 나의 관계관은 줄곧 서로 간의 두터운 신뢰를 기반으로 해왔다. 유일무이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퍼줬고 다면적인 모습을 숨김없이 보여줘왔다. 허나 모순적이게도 상처란 생전 배신이라고는 없으리라 믿었던 사람으로부터 받는 것이었다. 세상 모두가 등 돌려도 이 소박한 관계뿐이라면 아쉬울 것 없겠다는 기대가 부러진 것. 그것은 수많은 사람으로부터 받는 비난보다도 훨씬 아픈 것이었다. 솔직함을 줄이고 적절한 중용 속 관계를 유지하는데 스며들어야 한다. 그래야만 나의 여린 마음이 지탱하는 법을 깨우치고 일희일비하지 않을 수가 있다.
언젠가 스스로를 ‘땅’으로 정의할 날이 오기를 바란다. 쉽게 흔들리지 않으며 그릇된 생각은 메마르게 하면서도 포용심을 갖는, 도의적이고 강단 있는 존재 말이다. 훗날 한 층 성숙해질 내가 현재의 모습을 마주한다면, 부디 마음이 강해지는 방법을 조언해주길 바랄 뿐이다. 지금의 나는 끈질기게 꺼질 줄 모르는 불씨에 불과하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