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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러브 Jul 02. 2023

우리는 또 다른 록시 하트를 빚어내고 있는가?

뮤지컬 <시카고> 속 언론플레이와 사회적 부패

<시카고>는 1975년 초연을 시작으로, ‘가장 오랫동안 공연한 미국 뮤지컬’이라는 타이틀을 보유한 스테디셀러 뮤지컬이다. 주인공 록시 하트는 불륜남을 살해한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아름다운 외모와 스타성으로 주목을 받고 점점 자아도취하기에 이른다. 시카고는 그러한 범죄자의 그릇된 유명세와, 지나치게 관대한 부패한 사회 분위기를 풍자하는 내용이다. 이는 비단 당대 사회의 탓으로 돌릴 수 없는 것이, 현대에도 언론은 범죄자들에게 ‘희대의 살인마’, ‘악마’ 등 강력한 타이틀을 부여하여 그들의 범죄를 유흥적으로 소비하고 있다. 본 글에서는 뮤지컬 시카고를 내용적으로 분석하고, 그와 유사한 현대 사회의 양상을 비판하고자 한다.



록시 하트는 화려하고 주목받는 댄서의 삶을 꿈꿨으나, 정비공 에이모스 하트와 결혼해 평범한 주부로서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녀는 실은 프레드라는 남성과 불륜 중이었는데, 그의 이별 통보에 격분해 총으로 살해하는 범죄를 저지르고 만다. 이후 쿡 카운티 교도소에 수감되면서 자신과 비슷한 이유로 남성을 살해한 여성들을 만나게 되고, 어떻게든 교수형까지는 피하고자 변호사 빌리 플린에게 의뢰하게 된다. 플린은 시카고에서 능력 있는 변호사로 유명했는데, 정의나 범죄의 경중보다도 자본주의의 끝판왕인 면모를 지닌 사람이었다. 그는 록시에게 화려한 언론플레이를 제안하고, 그녀의 빼어난 미모를 이용해 상품까지 판매하기에 이른다. 플린의 지시대로 거짓말을 하고 죄를 부인하는 록시의 모습은 무대에서 꼭두각시처럼 표현되어, 그야말로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사회의 이면성이 풍자되기도 한다. 록시는 자신이 실은 가정 불화 탓에 불륜을 시작했으며, 프레드가 먼저 자신을 죽이려고 했기 때문에 정당방위 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터무니없는 거짓말이었으나, 세상은 도리어 거짓말처럼 이를 믿어버린다. 그녀의 범죄보다도 꾸며낸 “안타까운 사연”에 빠져버린 대중은, 록시를 연민하고 응원하기까지 한다. 자신을 비추는 스포트라이트에 중독된 록시는 한 순간도 주목받지 않고서야 견딜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록시 하트 - 영화 <시카고> 중


그러던 어느 날, 재벌가 3세 여성이 침실에서 남자친구를 총살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뮤지컬에서 이 장면은 록시의 재판 중, 모든 기자들이 해당 소식을 듣자마자 재판소에서 달려나가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그녀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임신했다는 거짓말을 내뱉고, 그제서야 다시금 주목받았다는 데 안심한다. 이처럼 자극적이고, 더 자극적인 사건을 억지로 꾸며내서라도 스포트라이트를 돌려내려 하고, 록시는 지쳐가는 스스로를 발견한다. 반복되는 언론플레이와 거짓말에 지쳐 헌신적이던 남편 에이모스마저 떠나가고, 그녀는 무죄 판결을 받은 이후에도 저를 주목하는 사람들이 사라졌음을 깨닫는다. 이러한 고독은 관객으로써 하여금 남은 것 하나 없는 현실과, 자극성만 추구하는 언론에 회의를 느끼게 한다. 극중 틈틈이 메리 선샤인이라는 호들갑스러운 일간지 기자가 등장하는데, 그녀는 매사에 가볍고 동정을 베푸는 성격으로 록시의 “거짓 사연”이 일파만파 퍼지는데 일조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40대 중후반 여성으로 보였던 그녀 역시 극 마지막에는 가발을 벗어던지는 남성으로 등장하여(실제로 시카고 뮤지컬에서 해당 역은 남성이 여장한 채 임하고 있다),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님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다.


뷸라 아난


 해당 뮤지컬은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하여 더욱 충격을 주었는데, 이는 바로 뷸라 아난이라는 여성 범죄자다. 시카고는 그녀의 이야기와 사뭇 유사한 내용으로 흘러가는데, 뷸라 역시 불륜남을 살해했다는 범죄보다도 아름다운 외모로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더 나아가서 배심원들에게 추파를 던지기까지 했으며, 당시 그녀를 변호하던 변호사의 모습을 본떠 ‘빌리 플린’이라는 캐릭터를 떠올렸다고 <시카고>의 극작가는 언급한 바 있다. 끊임없이 번복되는 그녀의 진술과 거짓말에도 대중은 ‘눈막귀막’하기 바빴다. 언론 역시 살해의 내막 그 자체보다도, ‘미모의 여성이 불륜남을 살해한 이야기’에 스포트라이트를 선사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언론은 타이틀을 붙이기를 좋아하는 특성이 있다. 그것이 대중의 이목을 단번에 끌 수 있는 단어라면 더더욱 추구한다.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한 ‘N번방 사건’의 가해자 조주빈 역시, 각종 언론에서 ‘희대의 악마’라며 지칭한 결과 포토라인에서 ‘악마의 삶을 멈춰줘서 감사하다’며 스스로에게 일정 타이틀을 부여하기까지 했다. 계곡에서 남편을 살해한 이은해 역시, 범죄 그 자체보다도 예쁜 외모를 이유로 팬클럽이 개설되기도 했다. 이러한 황당한 사례들로 보아 언론이 얼마나 그릇된 방식으로 범죄자들을 지칭하고, 또 다른 록시 하트를 만들어내고 있음을 파악할 수 있다.


록시 하트는 다른 누구도 아닌 대중의 손으로 빚어낸 인물이다. 대중은 줄곧 그녀의 ‘거짓 사연’에 관심을 가져왔고(그게 연민이든 동정이든 혐오든), 각종 타이틀로 불러가며 호응해왔기에 저도 모르는 새 그녀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춰준 것이다. 특정 당사자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언론을 쥐고 흔드는 일명 ‘언론플레이’는 우리 사회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행해지고 있다. 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으로뮤지컬 <시카고>의 극단적인 언론플레이는 꾸밈일 순 있어도 결코 과장이 아니다범죄자들은 대중의 유약한 심리를 악용하여 동정심을 이끌어내기도 하며, 자극적인 것만 찾고 보고자 하는 시각이 그러한 행태에 가속을 더하곤 한다. 현대 사회는 언론에 인해 흘러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미디어에 잠식되어 있다. 특히 기술의 발전으로 단 몇 초면 가짜 뉴스가 곳곳에 판치는 시점에, 대중은 무엇이 진짜이고 거짓인지에 대한 판단력이 흐트러지고 있다. 그러한 ‘판단의 흐트러짐’이 바로 언론플레이어가 바라는 바다. TV에 자극적인 프로그램을 편성하여 은연 중에 정치적 사고에 영향을 준다던지, 주목받는 사회적 사건이나 스타들을 이용해 대중의 시선을 어디론가 돌린다던지, 이처럼 다양한 방식으로 언론플레이는 행해지고 있다. 이에 대중은 비판적 사고를 해야 할 뿐 아니라 ‘눈막귀막’하지 않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자신도 모르는 새에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었다가는 사회에 또다른 록시 하트를 방생하는 데 일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언론플레이는 비단 범죄에서만 해당되는 일이 아닌 만큼, 쉽사리 놀아나지 않도록 정보를 있는 그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 뮤지컬 <시카고>는 지난 시대에서부터 오랫동안 이어져온 작품성 뛰어난 뮤지컬이지만, 현대 사회에서도 공감할 수 있다는 점은 부끄러운 일이다. 그만큼 현대 사회에 이르러서도 사법 제도가 부패하고 언론플레이가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성을 지닌 현대인으로서 끊임없이 비판적으로 사고할 줄 알아야 하며, 혹 지나치게 사회가 주목하는 사건이 발생한다면 다음 한 가지 질문을 물을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은 나에게 있어 또 다른 록시 하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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