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착같이 살아나가는 미나리와 같은 생명력에 관하여.
A24
최근 가장 주목할 만한 영화 제작사는 A24이다. 2012년에 설립된 A24는 다른 미국의 영화 제작사에 비해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고 아직 규모의 면에서도 작지만, 제작하는 작품마다 작품성을 인정받으며 영화계의 신흥강자로 떠오르고 있다. 대표작만 해도 <더 랍스터 (2015)>, <스위스 아미 맨 (2016)>, <문라이트 (2016)>, <플로리다 프로젝트 (2017)>, <레이디 버드 (2017)>, <미드소마 (2019)>, <더 라이트하우스 (2019)>, <언컷 젬스 (2019)> 그리고 <페어웰 (2019)> 등 소위 최근 잘 만든 영화를 말할 때 자주 언급되는 영화들이 모두 A24에서 제작되었다.
A24 제작 영화들의 특징은 특별하지 않을 것 같은 이야기도 의미 있는 작품으로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영화의 재미와 극적인 효과를 유발하는 특성 중 하나가 커다란 하나의 사건이라고 한다면, <문라이트>, <플로리다 프로젝트>, <레이디 버드> 등과 같은 작품은 이를 포함하고 있다고 보기 힘들다. 그저 흘러가는 대로 차분하고 잔잔하게 인물의 삶을 보여주는 것이다.
2020년 A24와 Plan B에서 제작하고 정이삭 감독이 연출한 <미나리 (2020)> 또한 평범함을 노래한다. 정이삭 감독의 유년기를 주제로 한 이 영화는 과한 상황 설정이나 사건들이 등장하지 않는다. 말 그대로 '드라마'라는 장르에 걸맞게 그저 한 발짝 떨어져 묵묵히 그때의 그 시간들을 담았을 뿐이다.
영화 <미나리>를 보고 전체적인 생각들을 적어보았습니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낯선 땅에 적응해보려 한다는 것
<미나리>가 끝나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내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했던 적은 언제였던가 떠올려보는 것이었다. 처음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익숙한 중학교 친구들이 없던 고등학교에 들어갔을 때, 스무 살이 되어 대학 생활을 막 시작했던 때, 여태 나의 삶의 방식과는 너무나도 다른 군대에 입대해 적응해야 했던 때 그리고 2년 전 처음 해외에서 홀로 지내야 했을 때 등이 생각났다. 돌이켜 보면 처음에는 모두 나에게 힘든 시간들이었다. 대학교에 입학했을 때처럼 금방 적응해 대학 생활을 즐기던 때도 있지만, 반대로 군대와 같이 적응하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린 경우도 있다. 하지만 나의 경우는 모두 나 스스로만을 책임지면 되었다. 내가 책임져야 할 누군가가 같이 있던 것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미나리> 속 가장 제이콥의 경우는 나와 다르다. 그 또한 낯선 땅 미국으로 가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나와 비슷할 수 있겠지만, 그에게는 그가 가는 길을 함께 따라오는 아내 모니카와 두 아이가 있다. 물론 아내 모니카도 그와 함께 가정을 유지하기 위해 바쁘게 일하지만, 적어도 <미나리> 내에서는 제이콥이 제시하는 삶의 방식을 좋든 싫든 따르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제이콥의 책임이 더욱 무겁다고 보았다. 도시 생활을 뒤로하고 시골로 가 우리만의 사업을 하자고 제안한 것도 제이콥이기 때문이다. 두 아이 데이빗과 앤은 제대로 된 학교에 가지 못하고 있으며, 또래와 쉽게 어울리지도 못하고 있다. 심장이 약한 데이빗은 병원이 집에서 한 시간이 넘게 걸리기는 탓에 더욱 조심해야 한다.
이 가족에게 미국 아칸소 주의 트레일러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큰 도전이다. 그들은 어떻게 해서든 적응하고 살아나갈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 정이삭 감독은 2시간의 러닝타임 동안 이 과정이 얼마나 힘들었고 많은 좌절이 있었는지를 차분하게 보여준다. 극적인 좋은 일이 일어나지도, 상황이 운 좋게 해결되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이며, 관객은 그저 그의 지난날을 바라볼 뿐이다.
나도 무언가를 해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데이빗의 아버지 제이콥은 병아리 감별사로서 뛰어난 능력을 보여준다. 공장에서 남들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수컷과 암컷 병아리를 구분해낸다. 하지만 그는 왜 그의 일을 뒤로하고 아무도 오지 않는 들판에 농장을 만들고자 했을까? 그는 병아리 공장에서 아들 데이빗에게 수컷 병아리들은 쓸모가 없기 때문에 걸러내 폐기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수컷 병아리가 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병아리 감별만 하며 살기에는 경제적인 측면을 떠나서 그 스스로 생산을 해낸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들과 딸에게 아빠가 뭔가를 해낼 수 있다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고 증명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그의 말처럼 성실성 하나만 가지고 내가 뭔가를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이며, 이 사회에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는 아들 데이빗을 데리고 이 땅에 큰 정원을 하나 만들 거라며 계획을 열심히 이야기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의 도전 의식은 점차 아집으로 변해간다. 수원지를 제대로 찾지 못했고 채소를 너무 가깝게 심었다. 제대로 된 거래처를 찾지 못했고 그마저도 뒤통수를 맞는다. 제이콥의 선택은 잘못된 것이었으며, 그의 아내 모니카는 이러한 상황이 점점 초조해져 갔다. 이제 그가 말하는 계획과 목표가 허황된 것으로 비치기 시작한 것이다.
제이콥이 끝내 농사에 실패하는 모습은 정말 마음 아픈 장면이었다. 그는 이 농사를 성공해 큰 부자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까? 물론 그런 마음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 한 사람으로서, 타지에서 온 이민자로서, 아버지로서, 여러 책임질 사람들을 곁에 두고 있는 사람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자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결국 제이콥은 그가 비웃던 지하수를 찾는 의식을 따랐고, 싫어하던 엑소시즘을 집에서 행했다. 내키지 않던 교회에도 나가기로 한다. 우리 모두 공감할 수 있다. 과거의 내 선택이 틀렸음을 인정하는 이 과정들이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이곳의 소속도, 저곳의 소속도 아니라는 사실
모니카는 그의 남편 제이콥을 지영 아빠라고 부른다. 마찬가지로, 제이콥은 그의 아내 모니카를 지영 엄마라고 부른다. 하지만 미국에서 지영은 앤으로 불린다. 제이콥과 모니카는 영어를 사용하는데 다소 서툴다. 반면 딸 앤과 아들 데이빗은 영어를 구사하는데 능숙하지만, 미국인 친구에겐 좀 다르게 생긴 사람으로 비친다. 모니카는 오랜만에 보는 친정 엄마가 가져온 고춧가루가 반가워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이민자의 운명일까? 이들은 미국인도, 그렇다고 한국인도 아니다. 소속이 애매하다는 느낌은 불편할 수밖에 없다. 어느 누구에게 진심을 토로하기도, 기대기도, 도움을 요청하기도 꺼려지기 때문이다. 이들은 점점 예민해져 갈 수밖에 없었고,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자주 다툰다.
할머니, 날 편하게 만들어주는 그 이름
어쩌면 이 적응하려는 노력과 소속감을 가지려는 노력에서 가장 자유로운 사람은 데이빗의 외할머니 순자이다. 그녀는 처음 보는 손자 데이빗의 이름도 어색하지 않게 부르며, 금방 친해진다. 먹어본 적 없던 마운틴듀를 거리낌 없이 마시며, 낯선 커피잔에 한약을 따라준다. 영어로 방송돼 알아듣지도 못하는 프로 레슬링을 재밌게 시청하며 시간을 보낸다. 그녀는 제이콥과 모니카에 비해 경제적인 책임감에서 자유롭기 때문에 그럴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녀의 이런 거리낌 없음은 데이빗과 앤에게 편안함을 준다. 그들을 돌봐주는 사람이 이곳을 낯설어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이제 마흔이 넘은 정이삭 감독의 기억에서 아직도 외할머니와의 추억이 깊게 남아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미국의 생활에서 방황하던 아버지와 어머니로 인해 느낄 수 없던 안락함과 편안함을 외할머니가 조금이나마 메워주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이 모든 어둠을 뚫고 나오는 미나리
제이콥의 농사는 실패했다. 제대로 된 우물을 찾지 못한 탓에 작물들은 말랐고, 그나마 건진 채소들은 순자의 실수로 모두 불타버린다. 부부를 도와주러 왔던 순자는 갑작스러운 뇌졸중으로 가족의 부담이 되기도 한다. 모니카는 제이콥의 계획을 신뢰하지 않으며 그와 따로 사는 것을 고려한다. 데이빗의 가족이 처음 아칸소 주의 바퀴 달린 집으로 이사 왔을 때, 모든 것이 탐탁지 않았던 모니카의 모습은 시간이 지나 가족 모두에게 현실이 되었다.
그러나 데이빗의 가족은 주저앉지 않았다. 불을 낸 것에 자책하며 가족을 떠나던 순자를 통해, 데이빗은 그의 약한 심장을 뒤로하고 열심히 달린다. 불이 난 창고에 모니카는 그의 남편을 도우려 뛰어들며, 제이콥은 그가 애지중지하던 농작물은 재쳐둔 채 그의 아내만을 걱정하고 데리고 나온다. 뱀이 많이 나와 들어갈 수 없던 땅에 들어간 순자가 심어둔 미나리는 무럭무럭 자라났다. 데이빗의 가족들은 미나리와 같이 이 모든 어둠을 딛고 다시 일어나고 극복해냈다. 그들이 이후 어떠한 일을 해나갔는지는 영화에서 알 수 없다. 단지 알 수 있는 것은 데이빗은 자라 그의 유년기를 담은 영화를 찍었다는 것이다.
어디서든 잘 자란다는 미나리는 데이빗 가족의 상징이 되었다. 서로를 구해주자고 온 미국, 그 이름도 낯선 아칸소 주에서 처음 생각했던 우리만의 큰 농장의 꿈은 무너졌다. 수도세를 내지 못해 물은 끊겼고, 집다운 집도 아닌 곳에 다섯 명이 살아야 한다. 꾸역꾸역 길러낸 우리 가족의 첫 작품은 검은 재가 되었다. 애꿎은 담배만 연신 피워댈 수밖에. 하지만 우린 미나리처럼 어떻게든 살아나갈 것이다. 버려진 땅 같은 곳에서도 열심히 자라난 지구 반대편에서 온 미나리. 이 강한 생명력이 우리 가족의 상징이다. 정이삭 감독은 이렇게 말한 것 같았다.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1925)>는 이렇게 막을 내린다.
'그리하여 우리는 조류를 거스르는 배처럼, 뒤로 끝없이 밀려나면서도 앞으로 앞으로 나가는 것이다.'
미나리라는 상징의 활용
정이삭 감독은 그의 유년기를 그의 작품에 담았다. 이러한 점에서 알폰소 쿠아론의 <로마 (2018)>가 연상되기도 했다. 나만이 알고 있는 내 어린 시절의 기억을 대중들에게 공개하는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로마>는 알폰소 쿠아론이 그의 유모를 추억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미나리>는 전 세계 곳곳의 이민자들이 겪었을 어려움들을 담았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현재 해외 여러 영화제에서 <미나리>가 자주 언급되고 상을 받을 수 있는 건 이런 공감을 잘 불러일으켰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영화 내내 착실히 보여준 고난들에 비해, 이 숱한 위기들을 극복해낼 수 있었던 계기가 된 미나리와 같은 장면의 분량은 다소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적어도 이민 생활의 어려움만 보여주는 것이 아닌 이겨낼 수 있었던 원동력도 함께 보여줄 의도였다면 말이다. '미나리처럼'만 강조하기엔 그 분량이 너무 짧았다는 아쉬움이 들기도 한 작품이다. 주제의 면에서는 비슷했지만 <로마>의 마지막 장면인, 남은 가족들이 해변에서 서로를 끌어안고 깊은 유대감을 느끼는 장면이 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이러한 까닭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