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주토끼 Jul 11. 2024

시련은 우리를 단단하게 만든다

그 남자 그리고 그 여자 이야기(3)

바람에 눈처럼 새하얀 꽃잎이 떨어진다.


매장 인테리어를 마치고 가게 문을 처음 열었던 날이 생각난다.

그날은 벚꽃이 눈처럼 흩날렸다.


우리가 함께 하기로 했던 초여름.

그와 가족들의 응원에 힘을 얻어 새로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가게를 어떻게 운영해 갈지 구체적으로 스케치하고 어느 위치에 가게를 얻을지 고민했다.

인터넷 플랫폼을 이용해 주문을 받아 케이크를 만드는 매장을 운영하기로 결정했다.

그 이후로 일은 일사천리로 해결되는 것처럼 보였다.




문제는 인테리어 업체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비용을 줄이고자 인터넷에서 여러 업체 견적을 받았고 원하는 디자인을 최저가로 제시한 업체를 선택했다.

선택한 업체에서 매장을 둘러보러 왔다.


매니저로 보이는 사람이 이리저리 수치를 재어 보더니 내게 말했다.


"사장님, 이 시안 맞으시죠? 색은 이렇게 선택하셨고요?"

내게 실물 견본을 보여주며 말한다. 내가 맞다고 하니 이야기를 이어간다.


"변경하시는 사항 없으시면 이 정도면 추가 금액 없이 지난번 견적 금액으로 가능합니다.

더 추가로 필요하신 거 있으세요?"


"아뇨, 없습니다."


"바로 진행하시면 제가 사무실에 잘 이야기해서 외부 간판 조명 하나는 서비스로 넣어 드릴게요. 가계약금으로 공사 금액 10프로 입금해 주시면 공사 일정 시공 날짜 잡아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별 의심 없이 그 자리에서 보여준 계좌로 돈을 보냈다.


"네, 금액 확인했습니다."


공사 일정을 정했고 업체 매니저는 계약서 한 장을 남기고 떠났다.


일주일 뒤 문의사항이 생겨 업체에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지 않아 소리샘으로 연결됩니다.”

현장에 사람을 보내겠다는 업체는 갑자기 연락두절이 되었다.

견적을 알아보았던 홈페이지도 사라졌다.


믿을 수 없었다.

이 사실을 알리지도 못하고 안절부절 몇 날 며칠을 보냈다.

아무것도 모르고 가게에 놀러 온 남자친구에게 그 사실을 털어놓았을 때 남자친구는 그런 나를 보며 잘 챙겨주지 못한 자기 탓이라며 함께 슬퍼했다.




그녀의 안타까운 소식을 듣자마자 나는 탄식했다.

더 자주 물어볼걸. 신경 써 줄 걸.

먼저 사업을 시작한 내가 더 챙겼어야 했는데.

하지만 슬퍼할 겨를이 없다.


커뮤니티에서 같은 피해를 겪은 사람을 모으고, 신고하고.

동시에 새로운 업체도 알아보았다.


피해 사실을 공유하고 대처법을 알려주고 싶어 블로그도 시작했다.


바보 같다고 자책하는 널 데리고 기분전환으로 새로운 여행지를 찾아 놀러 갔다.


가게를 여는 과정 하나하나, 우리가 시간을 쪼개 간 여행지와 맛집을 작성해 남겼다.

그 게시물들이 쌓여 소소하지만 협찬 문의도 들어왔다.


그녀는 이 모든 상황에 항상 고맙다고 말하기도 미안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내 눈엔 모두 사랑스럽고 마냥 귀여워 보였다.

작은 시간들이 모여 우리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었다고 믿었다.




모든 일이 잘 마무리되고 가게가 안정화된 연 여름.

우리가 만난 지 1주년.

관계를 지속하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야 했다.


이 무렵부터 그녀는 자주 결혼에 대해 언급하곤 했다.


“나 결혼은 여기서 하고 싶어. 여기가 시설이 제일 좋대! 신혼집은 이 동네가 어때?

우리 서로 일하는 곳에서도 가깝고 여기 신도시라 곧 개발되고 좋을 거야!”


그 이야기가 기뻤지만 부담으로 다가왔다.


‘부모님 생각하면 신도시는 어려울 것 같은데. 금액도 예상했던 것보다 비싸고 말이야.

지난번에 살짝 이야기했지만 또 이야기하면 그렇겠지.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니까.

그래, 좋은 것도 여유가 있을 때 할 수 있는 거지.

괜찮아. 너를 행복하게 할 수 있다면. 이게 맞겠지.’


그녀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놓을 수 없었다.

우리에게 오는 미래는 그저 낙관적이고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싶었다.


“그래, 네가 좋으면 나도 좋아.”


각자의 이상이 다르고, 이상과 현실은 또 달랐다.

현실의 벽은 더 높았다.


미래에 대한 기대감이 커질수록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짙어져 갔다.

점점 더 내 생각과 마음을 온전히 말하기 점점 어려워졌다.


그래도 좋았다.

함께 할 수 있으니까.

하고 싶으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이별 그 다음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