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33살 아니에요?” 수업 중 한 학생이 물었다. “아닌데~ 나 40살이에요”.내 대답에 학생들이 작게 술렁이더니 이윽고 한 학생이 입을 열었다
“우와, 쌤, 저는 쌤 20대 후반인줄 알았어요”
그 말에 괜스레 쑥쓰러워진 나는 하이파이브와 함께 “오~ 00이~ 사회성 만렙~!” 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나 이내 젊어 보인다는 말에 쑥스러워진 나도, 그 말을 한 학생에게 ‘사회성 만렙’이라며 치켜세운 나도 한 없이 부끄러워졌다. 성교육을 하러 와서 외모평가에 긍정적으로 반응하고 이러한 평가행위는 좋은 것이라고 몸소 보여주었으니 나는 실패한 교육을 하고 온 셈이었다.
sns에서 내가 구독하고 있는 플러스 사이즈 모델이 있다. 주로 패션에 대한 컨텐츠를 제공하는데 최근 들어 ‘부지런한 일상’을 주제로 하는 브이로그를 업데이트 하고 있다. 컨텐츠 주제가 왜 달라졌나 하고 봤더니 ‘당신은 뚱뚱하니 게으를 것이다’ 라는 DM과 댓글을 자주 받아서 그렇지 않다고, 나는 플러스 사이즈이지만 ‘부지런하게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란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서는 날씬한 몸을 만들고 유지하는 것이 ‘자기관리’가 되었다. 플러스 사이즈라는 이유만으로 ‘게으르다’며 의심받고, 나는 게으르지 않다고 ‘증명’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최근 한 드라마에서 맡은 역할 때문에 39kg까지 감량한 여자 배우가 있는데 그에 대해 한 기사는 헤드라인을 이렇게 뽑았다. ‘암 환자 연기 위해 37kg까지 감량… 방법 어땠길래? (물론 건강에 대한 우려나 연기투혼으로 보는 기사들도 있었지만) 그의 감량 방법까지 친히 우리에게 알려주려는 의도는 무엇일까? 우리의 알 권리를위해서일까? 아니면 이렇게 하면 살 빠지니까 ‘자기관리’ 하라는 소리일까?
우리나라 남성의 48%가 비만이며, 여성의 비만율은 약 26%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섭식장애 환자의 75%는 여성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에 따르면 지난 2017년 3116명이었던 섭식장애 환자는 2021년4881명까지 증가했다. 환자 4881명 중 3654명은 여성으로, 비중은 75%에 달한 것이다. (섭식장애의 원인이 다양하다지만) 남성비만율이 더 높지만, 여성 섭식장애 환자가 더 많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여성에게 더 엄정한 ‘외모잣대’를 들이대고 있다는 걸 증거하는게 아닐까.
하루는 둘째 아이가 ‘앞으로는 밥을 먹지 않겠다’ 선언했다. 이유를 물으니 ‘남자 아이들보다 키가 커질까봐 두렵고, 같은 반의 00이가 자신을 향해 네가 우리 반 여자 돼지라고 했기 때문’이란다. ‘아니야, 네가 얼마나 이쁘고 소중하고 복스러운데’ 했더니, ‘그건 엄마 눈에만 그런거지’ 라는 답이 돌아왔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젊어 보인다는 평가에 ‘사회성 만렙’ 이라며 떠들어제낀 순간이 내 딸에게는 ‘너는 돼지’ 라는 말로 돌아왔다.
외모에 대한 칭찬은 당연히 정상적이고, 그래야 하고, 때로는 이상적이기까지 한 미의 기준을 품고 있다. 그렇기에 굳이 누군가의 외모를 비하하거나 비난하지 않아도 칭찬만으로 그 기준에 부합되지 않은 사람을 자동으로 찍어 누를 수 있다. 그래서 성형을 하는 노력이라도 하면 그때는 또 인조인간이라고 평가 절하한다. 그럼 타고 나길 예쁘고 멋져야 한다는 건데, 타고난 것이 과연 칭찬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걸까.
‘선생님 20댄 줄 알았어요’ 다시 그런 순간이 온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들뜨지 않고, 사회성 만렙이라며 맞장구치지 않고, 외모평가 말라며 눈치주지도 않고,
그저 외모평가는 우리에게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는 메시지를 건네 보내보는건 어떨까.
‘그랬군요, 자 오늘은 00에 대해 이야기 나눠봅시다’
하고 말이다.
자료 출처)
박민영, 암 환자 연기 위해 37kg까지 감량… 방법 어땠길래?, 헬스조선. 2023.12.21 14:42
20대 식생활, 30,40대 음주와 흡연, 50대 만성질환 ‘적신호’, 시사저널, 2024.01.20
제대로 된 조사나 통계도 없는 섭식장애…의료시스템 구축 절실, new1뉴스. 2023-05-06 0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