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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우빈 Feb 01. 2021

사각형 저 너머에

영화 <소울>(2021)을 보고,

※이 글에는 영화 <소울>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두 번째 합격이었다. 원치 않던 첫 번째 대입 성공과 달리, 두 번째는 나의 이십 대 곳곳을 할퀴었던 자격지심과 다른 삶을 기대했던 욕망들이 점철되어 있었다. '내가 여기 가기만 해 봐' 잔뜩 심술이 나서 벼르고 있던, 하지만 더 바랄수록 상처는 두 배로 받는 현실이 무서워 외면하고 있던 내게 드디어 한줄기 햇살이 닿은 것이다. 내 이름이 맞는지 몇 번이고 다시 읽어봤다. 혹시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닐까? 함께 있던 L이 축하한다며 가로수길 브루클린 버거에서 치즈 버거를 사줬을 때야 비로소 깨달았다. 나 정말 합격했구나.


드라마틱한 진화와 변신이 서사의 중심이 되는 디지몬 시리즈에 흠뻑 심취했던 나는 내 인생도 기점을 잡으면 달라질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정말 만화였고 나와는 거리가 상당했다. 경의중앙선 철로 아래 굴다리, 그 커다란 사각형 속으로 들어가서 만난 나의 두 번째 학교는 완전체 진화의 장소가 아니라 굴곡진 인생선 위 그 어디쯤이었다. 이쯤 되면 감격의 눈물 한 방울 흘려주고, 이쯤에선 귀인을 만나 하는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뭐 그런 철저한 각본대로 흘러갈 줄 알았는데 눈물은커녕 멀어진 통학 길에 지쳐 성취감마저 희미해져 갔다. 오늘 모처럼 찾아간 극장에서 만난 <소울>은 그 사각형 안으로 처음 들어갈 때 느꼈던 그 감정을 복기시킨 영화였다.

'유 세미나'로 떨어진 조 ⓒgoogle

<소울>의 피트 닥터는 <토이 스토리>의 장난감 세계, <몬스터 주식회사> 속 벽장 속 세계, <인사이드 아웃>의 감정 메커니즘과 같은 일상 무대를 기반으로 이야기를 쌓아가는 감독이다. 다시 말해, 익숙한 공간에 상상력을 더해 우리가 너무 당연해서 놓쳤던 것들을 재조명하는 것이 그의 무기인 셈이다. 기획 단계부터 간간이 들려오던 <소울>의 세계는 <인사이드 아웃>의 그것과 비슷하여 유사한 컨셉의 답습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품었지만, 관람 내내 역시 내가 틀렸음을 절감할 수밖에 없었다. <소울>의 주 무대는 태어나기 전 세상(the Great Before)이다. 별칭 '유 세미나'(You Seminar)로 통하는 이곳은 지구에 가서 알맞은 육체를 만나기 전에 영혼들이 교육을 받는 일종의 신병교육대다. 태어난 환경에 따라 고유 성격이 형성되는 게 아니라, 태어나기 전 이미 자아가 존재한다는 것이 <소울>의 전제다. 유 세미나에는 남들보다 조금 더 냉소적인 영혼도 있고, 더 의기양양한 영혼도 있다. 영혼이 지구에 가기 위해선 필수로 몇 가지 테스트에 통과해야 하는데, 영화에서 중점적으로 그려내는 마지막 단계는 삶의 불꽃(spark)의 획득 유무다. 불꽃은 한 사람의 인생에 영감을 주는 그 무엇으로 빵, 피아노 같은 특정 오브제일 수도 있고 농구를 하거나 불난 집에 불을 끄는 소방 행위 자체도 얼마든지 불꽃이 될 수 있다. 그 마지막 한 칸을 채우는 것은 훌륭한 멘토들의 조언을 거쳐 완성되는데, <소울>에서 그려내는 이 멘토들은 지구에서 한 분야에 정통하며 위대한 업적을 달성했지만 생과 이별해 사후 세계(the Great Beyond)로 건너가기 직전에 놓인 영혼들이다.


우리의 주인공 조 가드너(제이미 폭스)는 프로 재즈 연주자를 꿈꾸지만 생계를 위해 중학교에서 밴드 합주를 가르치는 비정규직 교사다. 그러던 어느 날, 교장으로부터 정규직 전환 제의를 받는 동시에(여기서 <소울>이 애들 영화가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건반 주자의 공석을 채우기 위해 방문한 유명 재즈 클럽에서 밴드 마스터의 입단 제의도 선물처럼 떠안는 일생일대의 기회가 찾아온다. 조에게 불꽃은 재즈이고 인생 전부이기 때문에 그는 정규직 교사가 더 낫다는 어머니의 만류에도 밴드 합류를 결심한다. 그러나 모든 것이 마법 같던 순간, 조는 그만 맨홀 속으로 추락해버린다. 결코 죽음을 인정할 수 없는 조는 사후 세계로 향하는 컨베이어 벨트를 뛰쳐나가 다른 차원을 넘어 유 세미나에 도착한다.


어떻게든 죽음만은 면해야 하는 조는 사후 예정에 없던 멘토를 자처하고, 거기서 22번(티나 페이)을 만난다. 22번은 태어나기 전 세상의 장기 체류자이며 아리스토텔레스, 달라이 라마, 테레사 수녀 같은 현자들이 달라붙어 그의 불꽃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지만 결코 불이 붙지 않는 골칫거리 영혼이다. 마지막 시험에 통과하면 주어지는 지구 통행증을 얻기 위해서 조는 지구 위의 삶에 심드렁한 22번에게 최선을 다해 이것저것 시켜보지만, 통할 리 만무. 한정된 시간 때문에 고심하던 조에게 22번은 다른 통로를 제안한다. 무아지경의 세계로 함께 간 그들은 중앙아시아 어디선가 행해질 주술로 지구에 발을 딛는 데 성공하지만, 아뿔싸 영혼이 바뀌어 버렸다. 고양이의 육체를 빌린 조는 조의 몸에 불시착한 22번이 마법 같은 하루를 날리지 않도록 조종한다. 그리고 마침내 조가 그토록 간절히 원했던, 피아노를 두드리고 객석의 환희를 확인한 순간 영화는 변곡점을 지나간다.

꿈에 그리던 무대 위에서 재즈를 연주하는 조 ⓒgoogle

분명 숨이 멎기 전 주마등 속 한 장면을 차지할 이 순간이 이토록 시시하다니. 공연 후 뭔지 모를 허탈감을 고백한 조에게 밴드 마스터 도로테아(앤절라 배싯)는 의미심장한 어린 물고기 이야기를 들려준다. 바다에 왔는데 바다인 줄 몰라 바다가 어디인지 묻는 어린 물고기 이야기. 그 어린 물고기는 정확히 2019년 3월 2일에 사각형 속으로 들어간 나를 가리켰다. 3년간 치른 수능 성적이 마냥 아쉬웠고, 내려놓고 들어간 학교는 성에 차지 않았으며, 생계를 유지해 줬던 학원에서 학생들에게 입시의 중요성을 떠들어댔던 나는 너무나 당연하게 학교를 옮길 생각을 했고, 그게 그렇게 이십 대 절반을 차지했다. 동경하던 학교에 가는 일은 얼마나 멋진 일일까, 군대에서 잠들기 전 몸을 들썩이면서 상상했던 백일몽은 현실이 되었지만 더 큰 문제가 가슴속에 콱 박힌다. "그래서 그 담엔 뭐 할 건데?"


이미 달성한 성취는 또 다른 동기부여를 주는 게 아니라 이제는 기본 속성이 되어 당연한 일부가 돼버리니까, 기쁨의 순간은 잠깐이고 우리는 그다음 단계를 생각해야 하니까, 그래서 우린 이미 와버린 바다를 묻는 걸까.


집에 돌아온 조는 피아노 앞에 무심코 앉았다가 22번이 바지 주머니 속에 넣은 잡동사니들을 꺼내본다. 조의 성공적 데뷔를 위해 뉴욕 곳곳을 누볐던 그들의 모험을 압축한 이 잡동사니들을 조는 본래 있던 악보를 치우고 건반 위에 올려놓은 뒤, 악보로 삼아 연주를 시작한다. 그는 인생의 목적이었던 재즈를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반짝이는 순간을 위해 달려갔던 열정적인 일상을 손가락으로 하나씩 되짚어가는 중이다.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고 설파했던 무수히 많은 영화들이 존재했지만, <소울>은 그중에서도 독창적인 방식으로 우리 마음속 깊이 닻을 내린다.

일상의 소중함을 깨달은 조 ⓒgoogle

준엄한 교훈을 얻은 조는 유 세미나로 돌아가 22번을 찾아간다.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해 무력감에 매몰된 22번에게 조는 그가 결국 불꽃을 피워냈고 지구 통행증을 만들어냈다고 일깨운다. 허나 <소울>은 22번이 성취한 불꽃이 무엇이었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피자를 처음 맛보았을 때일까 아님, 낙심했던 꼬마 트롬보니스트의 혼연일체 연주를 보았을 때일까. 이발소 모든 사람들이 그의 말에 귀 기울였을 때, 혹은 단풍나무 열매가 유려한 몸짓으로 손에 들어왔을 때... 22번의 불꽃에 대해 말을 아낀 <소울>은 그 어떤 것도 불꽃이 될 수 있다고 암시한다. 숨을 쉬고 햇볕을 쬐고 바람을 느끼며 거리를 걷는 것, 그래, 단지 사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살아갈 용기를 얻는다고. <그래비티>의 엔딩 신이 주는 감흥도 문득 스쳐간다. 살 이유가 없던 라이언(산드라 블록)이 마침내 도착한 지구에서 흙을 맨발로 느끼며 걸어갔던, 환희하는 그 순간 말이다. 저마다 숭고한 삶의 의미를 찾았던 현자들에게 멘토링을 받아 지구 위의 삶이란 이름을 남겨야 하는 삶이라고 생각했기에 지구로 떠나는 것을 거부했지만, 이제는 '사는 맛'을 알아버린 22번은 기꺼이 지구로 향한다.

'유 세미나'에서 지구로 향하는 영혼들 ⓒgoogle

<소울>이 내게 준 위로는 '거창한 의미를 찾지 말고 일상을 살아라'라는 메세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각자 의미를 찾기 마련이고 거기서 단계별 적당한 목표들이 필요하기 때문에,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무언가를 성취해야 하는 사람들이니까. 대신 <소울>은 내게 성취 그 자체로 인간 삶이 구성되지 않는다는 것을 힘주어 말한다. 저 사각형 너머의 삶만이 나의 진짜 인생이 아님을 깨닫게 한다.

아마도 난 계속 힘들어질 것 같다. 새로운 목표가 생겼기 때문이다. 이번 목표 달성을 위해선 내 인생 통틀어 가장 치열하게 싸워야 할 시기가 될 것이다. 더 많은 상처와 좌절이 기다리고 있겠지. 하지만, 이젠 사각형 너머의 삶이 더 이상 두렵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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