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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가 Nov 18. 2021

아빠와 김치볶음밥

 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일이다. 어느 날부터 엄마가 집에서 사라졌다. 나는 아빠에게 물었다. "엄마 어디 갔어? 언제 와?" 아빠는 슬픈 표정으로 대답했다. "엄마는 안 와. 멀리 갔어." 그 말을 이해할 수 없던 나는 그냥 엄마가 멀리 갔구나. 몇 밤 자면 올까, 당연히 엄마가 안 온다는 생각을 안 하고 태평하게 지냈던 거 같다.

 그때쯤 부모님 사이가 안 좋아져 엄마가 집을 나간아빠는 어린 나에게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엄마의 부재를 확실히 느끼게 된 건 소풍날 아침이었다. 나는 막 잠에서 깨어 안 떠지는 눈을 비비며 부엌으로 향했다. 이른 아침부터 아빠가 가스레인지 앞에서 분주하게 무언가 만들고 있었다. 그 모습이 참 낯설기만 했다. 내 기억 속엔 늘 부엌에 엄마가 요리하는 뒷모습만 남아 있어서였다.

 하지만 어린 나는 금방 소풍에 대한 셀렘에 소풍가방 챙기는 걸로 관심이 돌아갔다. 가방 안에 어제 미리 사놓은 과자와 음료, 그리고 도시락을 넣어야 했다.

 아빠가 건넨 도시락에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방금 전까지 열심히 만든 김치볶음밥이 투명한 뚜껑 아래로 보였다. 김밥이 아니다. 그게 충격이었다.

 나에겐 소풍 도시락은 오직 김밥뿐이었다. 소풍=김밥. 쟈연스러운 공식같이. 다른 건 생각도 해본 적이 없고 본 적도 없었다. 유치원 소풍 때부터 엄마가 싸준 김밥을 먹었던 나에겐 김치볶음밥의 존재가 충격일 수밖에 없었다. 

아직 철이 안 든 초등학교 1학년인 나는 아빠에게 소리쳤다.

"이거 싫어! 김밥 싸줘!"

김밥은 양보할 수 없는 소풍의 필수품과 같았다. 아빠가 싸준 도시락을 나는 가방에 넣고 싶지 않았다. 

  내 말에 아빠는 당황스러운 얼굴로, "이번 김치볶음밥을 들고 가. 미안하다." 그렇게 말하면서 가방에 도시락을 챙겨주는 아빠에게 나는 끝까지 김밥이 아니라고 울상을 지었다. 집을 나서는 순간까지. 아빠에게 인사도 제대로 하지 않고 말이다.


 소풍을 와서도 나의 온 신경은 도시락에만 가 있었다. 점심시간이 오지 않았으면 했다. 도시락꺼내고 싶지 않았다. 도시락 뚜껑을 열고 내용물을 보면 친구들이 순진무구한 얼굴로 "어라? 넌 왜 김밥이 아니야?" 물어보면 나는 뭐라 대답해야 될까. 지금 생각하면 별거 아닌 일인데 어린 나는 괜한 걱정을 다 했다.


 오지 않았음 했던 점심시간 결국 왔다. 다 같이 동그랗게 모여 앉아 각자 싸온 도시락을 꺼냈다. 나는 긴장되는 마음에 고개를 숙이고 품에 품듯이 도시락을 숨기고 뚜껑을 열었다. 불편한 자세지만 옆에 앉아있는 친구들이 나의 도시락을 보지 않았음 하는 마음에 말이다. 그때까지 나는 엄마가 싸준 김밥 도시락 사이에서 아빠가 싸준 김치볶음밥 도시락이 부끄럽기만 했다. 어린 나는 이렇게 하면 친구들에게 도시락을 보이지 않고 먹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호기심 많은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 다른 친구들 도시락이 궁금했을 것이다. 바로 내 옆에 앉은 친구가 내 품 안에 고개를 쑥 내밀고 내 도시락은 바라보고 말했다. "와! 너는 볶음밥이네! 좋겠다."  그 옆에 있던 친구도 그 말에 내 도시락을 보고 말했다.

 "맛있겠다! 나도 한 입 주면 안 돼?" 

 친구들의 반응은 나의 예상과 완전히 달랐다.

 다들 의 도시락을 부러워했다. 번에 엄마가 싸준 김밥 도시락들 사이에서 아빠의 김치볶음밥은 특별한 존재가 되었다. 나는 숨기듯 품에 안고 있던 도시락을 당당히 꺼내놓고 아빠의 김치볶음밥을 먹었다. 그때의 맛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부엌일에 익숙하지 않은 아빠가 어설픈 솜씨로 만들어준 김치볶음밥은 분명 엄청 맛있진 않았을 것이다. 지만 깨끗하게 비운 도시락은 기억한다.


 그 이후에 아빠가 만들어준 김치볶음밥은 한 번도 먹을 수 없. 얼마 되지 않아 부모님이 이혼하고 엄마와 살게 되면서 아빠를 자주 만날 수 없게 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어느새 김치볶음밥이 되었고, 아빠를 닮아 요리에 재능 없는 내가 지금 가장 잘 만드는 요리 김치볶음밥이다.

 대학생 1학년 때 갑자기 돌아가신 아빠에게 들어 드순 없지만, 어린 시절 소풍에서 잠깐이나마 모두의 부러움을 샀던 아빠의 사랑이 담긴 김치볶음밥 생각만 하면 가슴이 따뜻해지는 추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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