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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인생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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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각형 Jun 15. 2021

역할놀이와 면도기


6살 때의 일이다.

옆집에 사는 친구와 같이 역할놀이를 했다.

내가 아빠 역할 친구는 엄마 역할이다.


길바닥에 덩그러니 놓인 면도기를 발견했다.

나는 잘됐다 생각하며 면도기를 손에 들었다.

아빠가 면도기를 쓰는 걸 보고 이건 아빠가 쓰는 물건이라는 생각을 한 것이다.


아빠 흉내를 내며 얼굴에 면도기를 대며 하는 척한다.

친구와 까르르 웃으며 놀았다.


어떻게 면도기를 세우다가, 입술 아래턱을 스쳤다.

스윽, 소리와 함께 따끔하다.

피가 줄줄 흘렀다.


당황한 나와 친구는 급히 근처 슈퍼로 뛰어갔다.

어른에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울먹이며 아줌마에게 다가가 말했다.


"아줌마, 피가 나요."


슈퍼 아줌마는 깜짝 놀라시며 휴지를 뜯어 피가 나는 턱에 대고 말했다.


"이거 꾹 누르고 있어."


아줌마의 말대로 나는 힘을 주어 휴지를 꾹 눌렀다.

피가 나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무서웠다.


휴지는 빠르게 피로 축축하게 물들었다.

여러 번 휴지를 교환하고 나서야 서서히 피가 멎었다.


그사이 슈퍼 아줌마는 집으로 전화를 걸어주었다.

엄마는 달려와 보자마자 날 혼내셨다.

왜 이런 걸 가지고 놀았다며 아직 내 손에 남아있던 면도기를 바닥에 던지셨다.


아픔에 뚝뚝 눈물을 흘리면서 나는 잘못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내가 뭘 잘못한 건지는 알지 못했다.

그때까지도 나는 면도기에 날카로운 날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갑자기 피가 난다.

이 정도로만 생각한 것이다.

어린 나에겐 충격적인 일이었다.


그대로 울면서 엄마의 손에 이끌려 집으로 돌아갔다.

아래턱에 커다란 반창고가 붙여졌다.


상처는 금방 나았지만, 그 후에 나의 턱엔 흉터가 자리 잡았다.

그 흉터는 아직도 아래턱에 희미하게 흔적이 남아있다.

2cm의 작은 흉터이다.


어린 시절 치기 어린 행동이 낳은 결과이다.


지금 생각하면 어린 나에게 왜 그런 걸 가지고 놀았냐고 묻고 싶다.  

여자아이가 아빠 역할한다고 겁도 없이.

아직도 흉터를 볼 때마다 어이없어 웃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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