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지 이야기
대학에 오니 나는 유학을 갔다 온 놈 취급을 받기 시작했다.
내가 다닌 학과는 외국인 교수님들만 있었다. 수업은 모두 영어로만 진행됬다. 발표도, 과제도, 페이퍼도 모두 영어로 써야 했다. 심지어 기숙사에서는 영어로만 이야기해야 한다는 규칙까지도 있었다. 동기들 반 이상이 외국에서 유학을 갔다 온 친구들이었다. 개중에는 한국어보다 영어가 편한 친구들이 많았다. 심지어 단순 교환학생이 아닌 외국인으로 똑같이 입학한 친구들도 있었다. 그 안에서 듣는 수업마다 문제 없이 잘 따라가니, 아이들은 의아해했다. 나는 유학은커녕 짧게 어학연수도 다녀온 적이 없었다.
"내가 영어를 할 줄 아는지 나도 몰랐어."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 나는 학교 공부에는 관심이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시험공부와 시험 성적에 대한 집착이 없었다. 집안에 대단한 빽이 있다거나 아버지가 사업체를 운영하시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대다수의 철부지 아이들이 그렇듯, 미래에 대한 생각을 깊게 하지 않았을 뿐이다. 세상이 얼마나 차가운지 느껴본 적도 없었다.
그 당시의 나는 흔히 말하는 오타쿠였다. 다만 일본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미국이나 영국의 드라마나 영화에 빠져있었다. 당시에는 스마트폰이 없었고, 넷플릭스도 없었다. 대신 PMP라는게 있었다. 지금의 스마트폰만 한 크기에 두께는 세네 배 정도 되었던 것 같다.
PMP에 프리즌브레이크 시즌 2를 담아서 학교에 가면, 집에 돌아올 때는 시즌 3을 한두 편 정도만 남아있었다.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계속해서 드라마를 봤고, 관심도 없던 야자시간은 마음 놓고 드라마를 봤다. 기술을 터득하면 야자 감독에게 걸리지 않는 것은 문제도 아니었다. 그래도 학교는 연속해서 봐야 하는 드라마에 몰입하기 좋은 환경은 아니었다. 그때부터는 드라마를 밤에 보기 시작했다. 새벽 3, 4시쯤 잠이 들면, 학교에 가기 위해 6시에 일어나야 했다. 부족한 잠은 학교에서 틈틈이 잤다.
학교에서 유일하게 했던 공부는 영어 공부였다. 문법은 중학교 3년과 고등학교 3년 내내 건드리지 않았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영문법은 내가 아는 영어와는 너무 동떨어진 것 같았다. 석호필은 to 부정사가 뭔지 이야기한 적 없었고, 하우스 박사는 be 동사와 일반동사가 뭔지 설명해준 적 없었다.
영문법은 내겐 허상과도 같았다.
그래서 공부 안 했다.
수능 모의고사를 볼 때면 문법 문제는 2개 나왔다. 잘 찍으면 둘 다 맞아서 1등급이 나왔고, 둘 다 틀려버리면 2등급이 나왔다. 성적에는 관심이 없었으니까 그 정도로 괜찮았다. 어차피 하루 정도 기분이 좋았고, 다음날부터 나에겐 의미 없는 숫자였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나는 등장인물들의 대사를 중얼거리는 습관이 있었다. 성대모사까지는 아니고, 그냥 따라 했다. 나이 먹고 보니까 이게 그 유명한 "쉐도잉"이라고 하더라.
나이를 더 먹고 나서 생각해보니 중고등학교 시절 나의 오타쿠 경험은 나에게 많은 도움을 준 것 같다. 단순히 "쉐도잉이 매우 효과가 좋습니다, 여러분!" 같은 어정쩡한 결론을 내려는 것은 아니다. 어떤 도움을 주니 이렇게 정리된다.
1. 영어 문장의 리듬감을 익혔다.
영어를 쓰는 사람들은 한국인들과 혀 놀림 자체가 다르다. 그리고 이 사람들은 말이 자꾸 위아래로 왔다 갔다 한다. 마치 부산말처럼. 나중에 알고 보니 영어 단어에는 "강세"라는 게 있더라. 단어의 연속인 문장은 결국 강세의 연속이었고, 자연스럽게 말은 위아래로 왔다 갔다 할 수밖에 없었다. 높낮이가 아닌, 강세와 약세의 연속.
이걸 이론적으로 깨달은 것은 아니지만, 그냥 거기에 익숙해져 버렸다. 그 리듬감이 입에 익자, 내가 읽는 영어 문장들은 꽤 외국인 같은 느낌이 났다.
2. 듣기 연습을 안 했는데도 들리기 시작한다.
학창 시절 학교에선 아침마다 영어 듣기평가 오디오를 틀어줬다. 나는 3년 내내 이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재수 없을 수도 있지만, 난 듣기평가 문제가 어렵다고 단 한 번도 느낀 적이 없었다. 고등학생 때는 내가 마치 우월한 사람인 것 같은 착각을 했었지만, 뒤돌아 생각해보니 중학교 고등학교 때 내가 드라마를 보면서 들어왔던 문장들의 양이 엄청났을 뿐이다. "듣기평가"라는 과목을 공부하지 않았을 뿐, "듣기"는 정말 엄청나게 많이 연습한 셈이다.
그런데 듣기를 아무리 많이 해도 듣기평가를 어려워하는 이들이 있었다. 훨씬 시간이 지나서 이론적으로 정립한 것인데, 그 이유는 1번 때문이다. 영어의 강세를 익히고 리듬감을 익히지 않으면 듣기 실력은 자라나지 않더라.
3. 굉장히 자연스러운 표현이 나온다.
누군가 초등학교 국어책에서 나오는 한국말을 실생활에서 구사한다고 생각해보자. 뭔가 웃기다. 교과서에서만 나온 표현들로 영어를 할 경우 이런 느낌이 들지 않을까 싶다. 20살이 넘어서 외국인 친구들과 대화를 해 보면 이렇게 이야기한다. "네 영어는 정말 자연스러워"
사실 당시의 내 영어는 문법적 오류도 많았고, 뜻이 통하지 않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하고 싶은 말을 완벽하게 할 수 없는 경우도 많이 있었다. 그렇지만 학교에 다니면서 갖는 모든 모임, 일상 대화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는 있었다. 드라마에서 배운 표현들을 계속 따라하다보니 나도 모르게 혀에 익은 표현들이 굉장히 많았다. 무슨 뜻인지 한국어로 정확히 해석해 낼 순 없었지만, 어떤 상황, 문맥, 감정상태에서 그런 표현이 나온다는 것을 몸에 배어있었던 것이다.
이 세 가지는 정말 "방대한" 양의 쉐도잉을, 아직 머리가 굳기 이전이었던 중고등학교 시절에 행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다. 덕분에 "자연스러운 영어 실력"이라는 것을 얻었지만, 일류 대학에 가지는 못했다. 고등학교 시절 선생님들도 나를 좋게 생각하진 않으실 것 같다.
영어를 가르치면서 뒤돌아보면, 내 경험에서 많은 힌트를 얻는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도 많이 깨닫는다. 나는 체계적인 영어 공부를 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자연스러움을 추구할 수 있었을 지언정, 정확성을 보여줄 순 없었다. 결국, 내 영어 실력은 구멍이 송송 뚫린 기다란 천과 같은 느낌이었다. 뭐든 감쌀 수 있을 정도로 큰 천이지만, 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것 같았다.
그 구멍을 채워가기 시작한 것은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도 몇 년이 지난 뒤였다. 특히 영어를 가르치기 시작하면서 그 구멍을 채워가는 속도는 점점 더 빨라졌다. 내 경험에서 좋은 것들을 뽑고, 모자란 것들을 리스트업하면서 나는 영어를 가르치는 나만의 방법론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경험에서 우러나오니까 내 방법에 대한 확신이 생겼고, 자신감이 생겼다. 학생들의 영어 실력이 향상 되니까 확신은 더욱 강해졌다.
영어 왕초보의 체계 세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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