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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희 Jul 06. 2021

1. 순수 박물관을 읽고

찌질하지만숭고한 사랑으로 순간을 기억하며 공간을 만들다

순수 박물관을 읽고-오르한 파묵

찌질하지만 숭고한 사랑으로 순간을 기억하며 공간을 만들다

민음사 모던클래식 27.28

21.6.21          



단순한 줄거리임에도 불구하고 또 내가 지루한 책을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이상하게 오르한 파묵의 문체는 책에서 손을 떼지 못하게 하는 마력에 끌려 결국엔 순수 박물관을 모두 완독 하게 되었다.     


얼마나 찌질한지.....하지만 얼마나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 왔는지....     

퓌순의 사랑을 얻기 위해 그 기나긴 9년 이상의 자존심 상하는 굴욕을 참으면서 끝내 사랑을 얻었다는 데에 박수를 보냈다.       


콧대 높은 상류사회 도련님의 아픈 사랑 성장기로 결국엔 사랑의 영웅이 되어 고난을 물리치고 영광의 왕관을 거머쥐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런 굴욕감을 이긴 시련을 끝내 이겨낸 케말에 대한 연민으로 책을 완독 하지 않았나 싶고 지독한 사랑에 함께 중독되어 책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것이 아닐까란 생각도 든다.     


또한, 퓌순의 죽음 이후 포기하지 않는 집념으로 그녀와 함께 했던 순간을 지키기 위해 세계의 모든 박물관을 다니면서 사전 답사를 하고 결국엔 박물관을 세웠다는 데는 엄지를 치켜들 수밖에 없었다.     


뭐랄까...... 강인하지 않았지만 내성적이면서 꾸준하고 집요하게 그는 그의 사랑을 지켜내고 퓌순의 죽음 이후에도 그 사랑을 지켜내기 위해 불굴의 노력을 꾸준히 평생 동안 했다는 점에서 인간승리를 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진지하고 자세하게 주인공이 처한 상황과 그 당시의 이스탄불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작가의 필력에 감탄을 하며 책을 읽었는데 그 필력은 69장의 ‘때로’로 시작되는 모든 문장에서 정점을 이룬다.      


그래서 오르한 파묵의 ‘내 이름은 빨강’ 에 이어 ‘순수 박물관’을 바로 읽었고, 이 책을 끝내고도 오르한 파묵의 책을 연작으로 읽고 싶다는 열망이 들었고 읽을 예정이다.     


전지적 작가 시점이 아닌 1인칭 시점으로 주인공인 남자 주인공 케말의 시점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퓌순의 감정을 추측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 약간 아쉬웠다. 아니 내 부족한 상상력이 아쉬웠다.     


9년간 케말을 지켜보면서 퓌순은 어떠한 감정을 겪었으며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18세의 퓌순은 순수했고 마냥 아름다웠고 모든 것을 케말에게 바쳤었다. 그러다 케말에게 버림받고 부모 손에 이끌려 결혼을 했다.      


그러면서 퓌순은 세상에 눈을 떴고, 참으로 자존심 센 여자에 아름다운 여자로 거듭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대상으로 또 터키의 분위기와 종교 탓으로 여자 스스로 자립할 수 없는 상황에서 남자의 도움 없이 어떤 일도 할 수 없던 그 답답함과 꿈을 이루지 못한 절망감을 케말에게 쏟아부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퓌순은 애증을 동시에 느끼며 케말을 9년간 지켜본 것이다. 결국 여러 상황과 케말의 진지한 인내심을 보며 마음을 열었지만, 여배우가 되고 싶은 꿈을 그녀의 남편과 케말이 방해했다는 분노는 그녀를 죽음으로 이끌었다.     


케말과 퓌순의 사랑이 해피엔딩을 얻지 못한 이유는 독립하고 꿈을 이루길 원하는 그 시대보다 좀 더 일찍 깨어 있던 여성과 그 여성의 열망과 이상을 무시하고 오로지 새장에 가둬두고 자신의 인형으로 사랑하기를 원했던 전 시대적인 남성의 만남이었기에 그 남성이 지독하고 순수한 ‘사랑’을 했어도 결국엔  파국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럼에도 케말의 사랑을 한 편으로 지지하게 된 것은 전 시대적인 사랑임에도 불구하고 순수한 사랑을, 그 사랑과 함께 했던 행복의 순간을 간직하겠다는 그 열망은 보편적이고 숭고한 사랑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순수 박물관 2의 138 쪽의 글이다.

 하지만 '행복'은 충분한 단어가 아니다. 그 뒷방에서 경험한 시를 그 사오분이 내게 부여한 깊은 충족감을 다르게 설명해 보고자 한다. 그것은 시간이 멈추어, 모든 것이 영원히 그대로 있을 거라는 느낌이었다. 이런 느낌 바로 옆에는 안도감, 지속성, 그리고 집에 온 듯한 기쁨이 있었다.  또 다른 쪽에는 우리가 사는 이 우주가 마냥 단순하고 좋은 곳이라는 믿음, 더 수사적으로 말하자면, 어떤 세계관이 있었다.      


나는 이 글을 통해     

'시간이 멈추어, 모든 것이 영원히 그대로 있을 거라는 느낌'  이 것 때문에 케말이 순수 박물관을 만들었고, 퓌순과 함께 했던 매 순간을 기억해주는 매체인 물건들을 수집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사랑을 잃은 상실감을 느낄 때, 상실감을 잊기 위해, 행복했던 때를 그리워하며 과거가 되어버린 행복했던 그 순간이 멈추어 영원히 그대로 그 순간 그대로 멈추기를 얼마나 바랄지 상상해보게 된다.     


그래서 난, 지금의 행복을 감사하게 또 매 순간을 더 행복하게 보내기 위해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이 글을 통해서, 또한 이런 순간의 소중함을 다룬 영화나 책을 통해 내게 주어진 또한 내가 언젠가 그리워할 이 순간을 제대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00세를 넘긴 김형석 교수는 누군가에게 행복을 많이 주는 인생이 가치 있는 인생이라고 했다. 나만을 위해 사는 인생은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남는 인생이 아니라고 했다.     



순간이 모여 우리 인생을 만든다. 또 매 순간 우리는 선택을 하며 살게 된다. 제대로 멋지게 살기 위해서는 멋지고 행복한 순간을 많이 만들어야 하며 순간순간을 아주 소중하게 대해야 한다는 것을 배운다.          


실제로 오르한 파묵은 소설을 쓰면서 실제 박물관을 세우기로 결심했고, 2012년 4월, 소설의 배경이 되는 퓌순의 집을 박물관으로 열었다. 주인공 케말만큼이나 작가도 집요하고 인내심이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노벨상을 받은 사상과 문장력뿐만 아니라, 허구인 소설을 현실화시키는 박물관을 실제 만들다니 그 집념에 박수를 보낸다.     


순수 박물관 2의 372쪽에서 

 진정한 박물관은 ’시간‘이 ’공간‘으로 변하는 곳이다.      


359쪽에서는

 즉, 정반대의 것도 옳을 수 있다는 것, 감각과 위트가 있으면 무엇이든 모을 가치가 있다는 것,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것 그리고 사랑하는 것과 관련된 모든 것을 모아야 한다는 것, 제대로 된 건물이나 박물관이 없더라도 우리가 모은 수집품들의 시(詩)가 바로 그 물건들의 집이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던 것이다.     


작가와 케말이 세운 ‘순수 박물관’의 목적이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시간’적으로 과거나 그 순간에 삶을 의미 있게 하고 위안을 주는 것들을 ‘공간’에 전시함으로써 다시 그 순간(시간)이 떠올라 추억에 잠겨 그 순간을 ‘ 이 공간’에서 느낄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마치 어떤 음악을 들을 때 그 음악과 관련된 추억을 되새기거나 이사하면서 20년 전에 보았던 장난감이나 물건들을 통해 이 물건과 얽힌 추억을 떠올리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2년 1월, 스페인 여행을 위해 3일간 경유했던 이스탄불이 떠오른다. ‘책’이라는 매개물을 통해, 9년 전(순간) 그때로 돌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이국적인 이스탄불의 문화와 음식, 건축물을 여행자의 눈으로 잠깐 본 기억이 떠오르지 않다가 이 소설을 통해 영화처럼 눈앞에 쫙 펼쳐지는 것이 아닌가.     


코로나가 끝나고 여행을 다시 하게 되면 이스탄불에 다시 가서 터키 사람들과 문화를 제대로 느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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