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일하고 싶은 팀 매니저 되기 - 프롤로그
A기업으로부터 리드 UX 디자이너의 롤로 오퍼를 받았다. 현 회사(당시)에서 약 5년간 다양한 서비스를 경험하며 많은 성과를 내고 있었고 높은 평가를 받고 있었기에 '이직'을 한다는 자체에 고민이 많았다.
UX 디자이너로서 받고 있는 주위로부터의 인정과 쌓아놓은 긍정적인 신뢰, 놓치기가 어려운 부분이었다. 또한 지금의 페이스를 잘 유지한다면 마음 편하면서도 즐겁게 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직'하기로 결정했다
같은 환경에서의 반복적인 경험은 깊이는 가질 수 있을지 모르나 나 스스로가 도태될 수 있다고 생각했고 '새로운 도전'이 나의 성장에 더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긍정적으로 본다면 현재 놓인 환경, 나의 생각, 스킬, 경험에 있어서 신선한 변화를 주기 위한 좋은 타이밍이라고 생각했다.
일본에서는 첫 이직이기 때문에 불안함도 한편에 있었지만 '새로운 도전'이라는 모티베이션을 막지 못했다.
그렇게 나는 불안한 마음을 저 편에 던져놓고 떨리는 기대감을 안고 도쿄 오피스로 첫 출근을 했다.
일본에서는 기본적으로 시용기간이 3개월이다(긴 곳은 6개월도 있지만). 시용기간이라고 해서 특별히 다른 것은 없다. 며칠간의 오리엔테이션을 마치고 6개의 프로젝트에 UX리드로 투입되었다.
그런데 잠깐!, 이게 뭐지?...
이 조직은 'UX 디자이너'라는 롤에 대해 전혀 이해를 하고 있지 않았고, 누가 봐도 여기저기서 'UX'를 외치니까 뒤쳐지기 싫어서 이름만 붙여놓은 것처럼 심각한 상태였다.
그 이유는 크게 2가지가 있었다.
첫째로, 'UX 디자이너'가 'UX 디자이너의 역할'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UX 디자이너는 '내부 사용자(비즈니스&개발 등)'와 '외부 사용자(사용자)'의 접점을 만들어(리드해) 인사이트를 얻고 과제를 해결을 해나가야 한다. 그러나 이 조직의 UX 디자이너는 그냥 '외주 디자인 업체'와 같은 느낌을 받았다. 상류 단계에서 정해져 내려온 요건을 받아서 하류 단계에서 디자인만 하고 있었다.
둘째로, 서비스 전체가 'UX 디자이너'의 역할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UX 디자이너가 UX 디자이너의 역할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데 다른 직종의 분들이 이해할리가 없었다.
나는 본부장에게 정기적인 1on1을 요청하고 UX 디자이너의 역할과 UX 리서치에 대한 제안을 시작했다.
나 : '왜? UX 디자이너가 상류 단계부터 참여하지 않나요?, 상류 단계부터 참여해 함께 UX를 생각해야 합니다.'
본 : '이해해. 그런데 지금까지 그렇게 해오고 있었어.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나 : '왜? 개발팀이 UX 리서치를 하지 않나요?, UX 리서치를 개발팀에서 기획해 실행하고 싶습니다.'
본 : '이 조직의 모든 사람들은 마케팅 팀에서 리서치를 한다고 생각해'
가장 충격적인 것은 마케팅 리서치를 UX 리서치와 같은 결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것이다. 실제 마케팅 팀에서는 자신들의 롤에 맞는 리서치를 하고 있었다. 'UX 리서치'가 아닌 '마케팅 리서치'를 말이다.
또 하나의 큰 과제가 발생했다. 나의 매니저는 한 멤버와 무언가 이야기를 하더니 몰래 복도로 빠져나와 울기 시작했다. 이건 또 뭐지?... 처음 겪어 보는 현상이었다. 나는 달래주며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생각보다 심각하게 팀 멤버 간의 사이는 좋지 않았으며 서로 시기하고 불만으로 가득 차 있었고 앞에서는 크게 티 내지 않았으나 뒤에서는 서로를 물어뜯을 정도로 으르렁거렸다.
'내가 맡은 일은 데드라인에 쫓겨서 잔업도 많이 하는데 쟤는 데드라인이 여유로워서 편하게 일해'
'쟤는 나보다 그레이드가 높으면서 일을 잘 못해, 납득할 수 없어'
'매니저가 시키는 일은 하기 싫어'
정말 성숙하지 못한 태도와 표현 방법으로 디자인 조직은 이미 오래전부터 썩어 문드러져있었다.
디자인 조직의 문제는 결국 본부장의 귀에 들어가게 되었고 관계성을 회복하지 않는다면 디자인 조직을 없애겠다는 초강수를 두게 되었다. 이것을 계기로 서로를 물어뜯는 일이 한동안 잠잠해졌다.
나의 선택은 잘못된 결정이었을까?
이직한 지 두어 달 밖에 되지 않았는데 큰 벽에 부딪혔기에 잠시나마 나의 선택에 후회를 했지만 이미 되돌릴 수는 없는 법(물론 다시 돌아가거나 이직해도 되지만). 직접 느꼈던 과제의 본질이 무엇인지,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표면적 과제는 파악했으니 본질을 알기 위해 워크숍과 히어링을 실시했다.
1. UX 디자이너의 잘못된 역할 (워크숍 실시 : 디자인 팀 멤버 전원)
<본질> 디자인 제작의 경험은 있으나 UX에 대한 경험이 전무해 역할에 대한 옳고 그름의 판단을 할 수 없음
2. 디자인 팀에 대한 잘못된 주변 인식 (히어링 실시 : 타 직종 매니저와 핵심 이해관계자)
<본질> UX 디자이너들이 아무 의견을 제시하지 않으니 원래 그런 건 줄 앎. 타 직종의 입장에서는 상류부터 UX 디자이너가 함께 참여했으면 좋겠다고 생각은 하고 있으나 무리하게 역할을 추가시키는 것 같아 꺼려하고 있음
3. 디자인 팀 멤버들의 불만 (히어링 실시 : 당시 매니저와 일부 멤버)
<본질> 멤버들의 의향이 반영되지 않아 매니저에 대한 불만이 가득하고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신뢰를 잃음. 그로 인해 멤버 간의 불신과 시기, 화를 주체하지 못하는 상태임
각 과제에 대한 본질을 파악했기 때문에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했다.
1번 과제인 'UX 디자이너의 잘못된 역할'의 경우, 워크숍을 통해 멤버들에게 UX 디자이너의 역할을 이해시키고 어떤 접근을 해야 할지에 대해 논의를 마쳤기에 핵심 이해관계자에게 제안하고 공감을 얻으면 되었다.
2번과 3번 과제가 문제인데 2번 과제인 '디자인 팀에 대한 잘못된 주변 인식'의 경우, 개발 유닛의 핵심 이해관계자와 상의하고 비즈니스 유닛과는 싱크를 맞출 필요가 있었다.
3번 과제인 '디자인 팀 멤버들의 불만'의 경우, 나는 팀 매니저가 아니기 때문에 당장 해결할 수 있는 부분도 아니었고 내가 나설 부분도 아니었다.
입사 2-3개월 정도가 되었을 때, 당시 매니저에게 디자인 팀 매니저를 해볼 생각이 없냐라는 제안을 받게 되었다. 함께 디자인 조직을 개편하는 데 있어 직접적으로 공헌하고 싶었기에 제안을 받아들였다.
이때까지는 몰랐다. 어떤 변화가 발생할지.
심리적으로나 감정적으로나 생각보다 많은 충격을 받았던 거 같았다. 매주 1회 실시했던 나의 1on1 시간은 반대로 당시 매니저의 상담시간이 되었고 몇 번이고 숨어서 울었다. 마음을 다잡기도 했지만 이내 한숨으로 이어졌고 결국 당시 팀 매니저는 회사를 퇴사하게 되었다.
(퇴사 후 삶의 활기를 찾았고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며 행복해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잘해보자.
이제부턴 내가 멤버들을 이끌며 함께 해결해나가야 한다. 다시 한번 마음을 다 잡았다.
타 직종 매니저에게 UX 디자이너의 역할을 제안하기
과제 : 디자인 팀에 대한 잘못된 주변 인식
많은 이해관계자가 얽혀 있기에 쉽지 않은 일이다. 게다가 한 번 박혀버린 인식은 쉽게 바꿀 수 없다. 그것도 오랜 기간 동안 지속되어온 조직에서 말이다. 한 번에 모든 직종의 이해와 마인드를 바꾸기는 더욱더 힘들다. 그래서 가장 우선적으로 변화시켜야 할 직종인 PM팀을 파고들었다. 서비스 통괄 매니저가 PM의 매니저였기에 더 적극적으로 파고들었다(이럴 땐 톱다운이 좋다. 알아서 따를 터이니.). 나도 UX팀 매니저이기에 제안하기가 더 쉬웠다.
통괄 매니저와 PM매니저에게 UX 프로세스를 소개하고 어떻게 개발팀에 적용할지 제안했다. 거기에 이전 회사와 타사의 사례를 보여주고 현 서비스 현상과 어떤 갭이 있는지 명확히 했다. 즉, 현상과 이상을 명확히 정의하고 그 갭을 통해 어떤 과제가 있는지 전하고 그 갭을 해결했을 때 어떤 메리트가 있는지 전했다.
결과는, 물론 통과였다. 그 후 조직을 어떻게 개편할지 이야기가 시작되었고 'UX전략팀'이 탄생하게 되었다.
프로젝트에서 UX 디자이너의 역할을 직접 보여주기
과제 : UX 디자이너의 잘못된 역할
프로젝트의 진행이 너무 더뎠다. 상류 단계에서 PM이 UX를 크게 고려하지 않은 요소들이 내려오면 디자인 팀에서 디자이너의 의견이 새롭게 나와 어긋나는 현상이 반복되었다.
이런 현상 자체를 바꿔야 했다.
거기서 시행한 것이 바로 '워크숍'이다. 새롭게 시행하는 큰 프로젝트 2개에 '프로세스 맵핑', 사용자 스토리 맵핑', '카노 모델'의 워크숍을 기획해 진행했다.
PM, 엔지니어, UX 디자이너, PR, 마케팅 멤버들이 함께 참여해 진행하니 말할 것도 없다. 대성공이었다. 나는 UX 디자이너이기에 이 자리를 기획해 만들고 다양한 멤버들이 참여해 자신의 롤의 관점으로 의견을 말하고 나는 그것을 취합해 가시화하면 되었다. 쓸데없는 커뮤니케이션은 줄고 함께 만들어가는 모티베이션으로 인해 프로젝트의 속도가 빨라졌다.
이후, UX 디자이너는 초상류부터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다.
1on1을 통해 멤버들의 진심을 확인하기
과제 : 디자인 팀 멤버들 간의 불만
멤버들 간의 관계를 회복시키고 싶으나 그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멤버 각각의 성격도 다르고 사람의 감정이기 때문에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고 서로에 대한 감정 회복에도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멤버들과 나의 관계성은 좋았기에 여러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들을 수 있었다. 일단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멤버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고 공감해주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잘 들어주는 매니저'가 되기로 했다.
정신없는 이 모든 상황이 중도 입사 2-3개월째에 일어났다.
그렇게 나는 'UX전략 팀 매니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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