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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무늬 Jul 31. 2024

독일 미대의 교육 시스템

또다시 한 학기가 흐르고, 짧았던 겨울 방학도 지났다.

좀 더 자주 이곳에 글을 적으려고 노력해 보지만, 머릿속이 늘 복잡한 시간들을 보내다 보니 짧게나마 글을 남기는 것이 어렵고, 또 그때그때 적은 글들은 마치 투정인 양 또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이 많아 글로 기록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잊히기 전에 그 흔적들을 남겨놓는 것도 나에게는 중요하기에, 새로운 학기를 위해 학교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싣고 이 글을 적어본다.


오늘은 내가 세 학기 동안 독일 미술대학에서 느낀 한국 미대와의 시스템적인 차이점에 대해서 적어보려고 한다. 이 차이점은 내가 직접 짧게나마 경험해 본 예술대학교인 Kunsthochschule를 기반으로 정리하는 것임을 미리 밝힌다. (종합대학교인 Universität에 대해서도 약간의 경험한 바는 있지만 아무래도 예술대학과는 큰 틀에서 차이점이 있을 것이므로!) 또한, 나는 순수미술계통은 아니기 때문에 미대 전반적인 시스템이라기보다는 디자인과에 집중하여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1. 석사 과정의 자율성

첫 석사과정 오리엔테이션날 (한국으로 치면..) 학장님(?!)이 했던 말이 기억난다.

"여러분 모두 각자의 석사 과정을 계획하세요."라는 말. 그때는 당연한 말이 아닌가, 내가 꾸려가야 할 내 인생이니 각자의 계획을 세워야만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정도로 추상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생각보다 그 각자의 석사 계획에 대한 폭이 굉장히 넓고 다양해서 놀랐다. 


석사과정의 경우 학과에서 제공하는 주요 프로젝트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두 선택과목이다. 그 선택과목의 폭도 굉장히 넓다. 우리 학과뿐만 아니고 타 학과의 수업들과 추가로 학교에서 제공하는 미디어과정, (Universität, Hochschule, Fachhochschle에 관계없이) 타 대학의 과정까지 모두 인정받을 수 있다. 보통 한 학기 30학점을 채운다고 생각했을 때, 메인프로젝트는 보통 15학점을 인정받고, 선택과목은 15학점을 채울 수 있다. 선택과목이 작게는 1학점부터 보통 2학점 많으면 4~6학점을 준다고 생각해 보면, 정말 많은 선택과목을 들을 수 있다. 아, 매 학기 Exkursion이라고 하는 일종의 스쿨트립을 가는데, 프로젝트와 관련된 지역으로 가서 참고할 만한 곳을 방문한다던가 비엔날레, 페스티벌에 함께 참여하기도 한다. 이를 통해서도 약간의 학점을 얻을 수 있다. 순수미술을 하는 친구들은 교수님들과 콜로키움(Kolloquium)에서 개인작업에 대해서 토론을 하고 학점을 받기도 한다.


이 말인즉슨, 각자 얼마 큼의 시간을 투자하느냐에 따라 선택적으로 원하는 바를 꾸준히 그리고 깊게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내가 원하는 바가 명확하지 않으면, 그 시간과 선택을 허비해 버릴 확률도 굉장히 높다는 뜻이기도 하다. 자율성은 결국 스스로의 선택권과 책임감을 이야기하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독일 친구들도 처음에 수업의 선택권이 너무 많고 학점을 채우기에 드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오래 걸려서 졸업까지 너무 오래 걸릴 것 같다고 한숨을 쉬기도 했다. 마치 졸업이 영원으로 느껴진다며 웃기도 했던 기억이 있다. 나도 첫 학기에는 이것저것 수업도 들어가 보고, 나름 한국식으로 이래저래 촘촘히 시간표를 짜보기도 했다. 무엇을 더 깊이 파 보아야 할지 어느 방향으로 공부를 해나가야 하는 것이 나에게 도움이 될지 모르기에 이것저것 두드려 보았다. 아무래도 독일식 수업시스템을 잘 모르다 보니 각 수업에 얼마 큼의 시간이 들지 또 어떤 시험을 쳐야 할지 혹은 어떤 결과물을 내야 할지 몰랐지만, 뭐든 시작했으면 무라도 잘라야 한다는 한국인스러운 고집과 의무적인 성실함으로 벼텼고, 그 결과 출석과 결과물 모든 면에서 스스로를 옳아맸다.


4학기를 맞이하는 지금 나는 좀 더 자유롭게 그 시간들을 즐기고 있다. 아니 즐기려고 노력하고 있다. 

처음에는 조금 당황하긴 했지만 지금까지 내가 느낀 바로는, 독일에서 이러한 자율성을 제공하는 것은 결국 개인의 관심사와 능력을 개발하는 시간을 제공하는 것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다. 같은 수업을 들어도 각자 개인의 능력치는 다르고 관심사도 다르므로 이 선택과정들을 통해서 각자 디자이너로서 최종적인 방향성도 다를 수 있고, 학교 입장에서는 이를 존중하는 의미도 될 수 있을 것 같다. 한편으로 이러한 자율성은 외국인 학생인 나에게 조금 단점이 되기도 했다. 왜냐하면 같은 수업과정의 친구들을 1주일에 한번 있는 메인 프로젝트 수업을 제외하고는 만날 일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모두들 각자 선택수업들로 뿔뿔이 흩어져 있거나, 이미 우리 학교에서 학사과정을 한 친구들은 선택과정을 듣기보다는 개인 프로젝트에 시간을 더 투자하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이러한 자율도는 과정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학사과정은 어느 정도 정해진 학업과정이 있다. 그럼에도 몇몇 학사과정 친구들을 꾸준히 선택과정에서 만나긴 했다. 학석사 과정이 각각 운영되긴 하지만 선택과정은 통합으로 (학과와 과정 상관없이) 운영되는 경우들이 많고, 그 안에서 함께 수업을 듣는다. 덕분에 전혀 다른 전공을 가진 재밌는 친구들도 많이 만났다.




2. 전문 분야에 대한 인정, 장인문화

우리 학교에는 각 분야의 Leiter들이 있다. 

한국어로 Leiter를 찾아보니 관리자, 지배인 혹은 단장 같은 단어들이 나오는데, 일종의 담당자이자 장인이라고 보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우리 학교에는 Werkstatt라고 하는 작업공간들이 있는 건물이 있는데, 이곳에 이 Leiter분들이 상주하고 있다. 자세히 얘기해 보자면, 여기에 목공, 금속, 도자, 아날로그 인쇄, 디지털 인쇄, 3D프린트, 패브릭, 재료 등등의 파트가 있고 적게는 1명부터 최대 3명까지 담당 Leiter가 있는 것이다. 이분들은 엄밀히 말하자면 교수 혹은 강사는 아니다. 일종의 교직원으로 수업을 제공한다. 이분들은 학교의 정규직원으로서 각자의 작업공간에 대한 관리부터 학생들의 각 분야에 대한 기초교육과 심화 교육 그리고 프로젝트 상담까지 모두 진행해 주신다.  모든 학생들은 학교에 처음으로 등록한 첫 학기에 각 분야의 기초교육을 참여하는 것을 추천받는다. 왜냐하면 이 기초교육을 받아야 작업장에 들어가는 것을 인정받을 수 있고, 컴퓨터로 하는 작업뿐만 아니라 손으로 직접 만드는 작업을 강조하는 독일 미대에서 이 작업장을 이용하지 못하면 할 수 없는 작업들이 많기 때문이다. 나 역시 첫 학기에 목공 기초교육을 받았다. 어색하게 드릴과 목공기계를 다루던 나와달리 능숙하게 기계를 다루던 친구들이 신기했다. 뭐든 집에서 고치는 것에 익숙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학사 때 대부분 경험해 보았기 때문에 다들 최소한의 경험치는 가지고 있었고 다수의 친구들은 직접 목공으로 작업물 제작 경험도 있었다.


최근에는 아날로그 인쇄 분야의 기초 교육을 받았는데, 그 Leiter분의 표정이 참 인상적이었다. 본인이 아는 바 경험한 바를 진심으로 전달해 주고자 하는 마음. 그 마음이 고스란히 전달되었달까. 그분 역시 우리 학교를 졸업하고 학교에서 약 20년간 일하신 분이셨다. 아날로그 인쇄라는 것이 현재는 거의 사라진 기술적인 영역이지만, 왜 이것을 배워야 하는지 또 어떻게 응용하면 좋을지 알려주고, 직접 그 기술들을 체험해 봄으로써 언젠가 내 프로젝트에서 이러한 것들을 적용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을 마구 불어넣어 주는 수업이었다. 일종의 직업적 자긍심이랄까, 내가 알고 있는 것들에 대한 자부심이랄까 그런 것들이 느껴져서 존경심이 생기는 마음이 들었다.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알려주고 싶은 마음들이 느껴졌다. 내가 너무나 잘 알고 있어서 지긋지긋한 것들 혹은 기나긴 지나간 시간들을 감추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나에게는 신선했다. 오래된 것, 과거에 대한 자부심은 사실 책에서나 느껴본 감정인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외에 미디어 분야 역시 각각의 담당자가 있다. 

프로그램별로는 물론, 카메라, 사운드, VR, AR, 3D 등등. 필요하다면 메일을 보내고 약속을 잡아 내 프로젝트에 필요한 분야에 대해 상담받을 수 있다. 당연히 외부의 상업적인 프로젝트를 하는 전문가들과 비교하자면, 트렌디함이나 속도는 좀 떨어질 수 있다. 그럼에도 학교에서 이러한 것들에 대해 전문가를 언제든지 만나고 내가 생각한 프로젝트들의 현실 실현성에 대해서 상담할 수 있다는 것, 함께 고민해 줄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컴퓨터 관련 수업들은 한국이 효율적으로 가르치는 것이 맞다. 숏컷들부터 빠르게 프로그램에 기능과 효과를 캐치해 내는 것까지 말이다. 여기서는 편법은 유튜브로 찾아보라고 가르쳐준다ㅎㅎ. 그럼에도 처음으로 시도해 보고, 내 방향성에 대해서 함께 고민해 주고 급하면 본인의 스튜디오로 찾아오라고 해주시니 프로그램을 좀 다른 각도에서 배우게 된달까. 뭔가 완벽한 기술을 구사하려고 하기보다는 일종의 '방법'으로 시도해 보는 느낌이 들었다. 음, 다시 말하자면, 너희는 아티스트이므로 너희가 기술에 능통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고, 그 방법들을 체득해 보고 어떻게 구현되는지 어떤 가능성이 있는지 체험해 보라고 느껴졌달까.



3. 세미나(Seminar)와 강의(Vorlesung) 그리고 소논문(Hausarbeit)

내가 느낀 대학 문화의 가장 큰 차이점은 토론문화이다.

일반적으로 강사와 교수의 생각과 이론을 전달하는 강의(Vorlesung)도 기본 이론의 경우 존재하긴 하지만 정말 드물다. 보통 대부분의 이론 수업은 세미나(Seminar)의 형태로 이루어진다. 세미나 수업의 경우, 학기 초에 교수님들이 매주 주제 혹은 관련 책을 제시하고, 그것들에 대해서 각각의 학생들이 발표를 준비한다. 그런데 이 발표가 한국에서 경험했던 것과는 좀 달랐다. 발표자는 내가 준비한 내용에 대해서 토론을 이끌어가는 사회자의 역할을 수행하며, 학생들을 향해서 질문을 제기하고 논의를 이끌어가야 한다. 그러려면 내가 주제에 관해서는 누구보다 이해도가 높기도 해야겠지만, 제시된 주제 이외의 것들에 대한 비교군을 추가로 제안하거나 각종 자료들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 그러면 다른 학생들은 발표내용에 대해서 단순한 의문 제시와 비판까지 다양하게 참여한다. 교수님은 그 과정을 이끌어 주는 길잡이의 수준으로 수업을 이끌어가거나, 미처 캐치하지 못한 포인트들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처음 세미나 수업에 들어갔을 때의 당황감을 잊을 수 없다. 정말 이론적인 내용을 다루는 수업이라고 생각하고 편히 들어간 수업이었다. 그런데 약 10분이 흘렀을까, 다들 손을 들고 본인들의 의견을 피력하기 위해 쉬지 않고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고, 그 수업을 드롭했다. 발표를 하지 않으면 학점을 인정받을 수 없는 수업이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이미 학계에서 인정을 받은 내용들에 대해서 거리낌 없이 비판적인 시선을 제기하는 태도들도 약간은 불편했던 것 같다. 물론 일반 이론 강의(Vorlesung)에서도 기본적으로 손을 들고 질문하는 문화는 이어진다. 약 2시간 정도 이어지는 수업에서 교수님이 전달하는 수업내용 사이사이 정말 기본적이고 단순한 질문부터 철학적인 질문들까지 끊임이 없어서, 수업시간이 늘어나는 경우는 정말 허다하다. (독일학생들이 유독 똑똑해서 그럴까? 나는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ㅎㅎ... 다만 지식을 받아들이는 방식, 공부에 대한 시선이 다르다고 할 수 있겠다.)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나의 경우에는 첫 학기에는 독일 수업시스템에 적응하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 세미나 수업에는 참여하지 않았고, 두 번째 학기부터 세미나를 참여했다. 내용적으로 어려운 것들은 그저 수업에 참여하는 것에 의의를 두었고, 관심이 있는 주제들을 위주로 발표와 토론에 참여하려고 하였다. 발표에 참여한 후에는 소논문(Hausarbeit)들을 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나의 경우 졸업 때까지 최소 2개의 소논문을 제출해야 했다. 이 논문들 모두 이미지 제외 20페이지 이상을 제출해야 하고 정식 논문의 형식을 띠어야 한다. 뭐든 형식을 중요시하는 독일식 문화에서 그들의 논문형식을 따르며 독일어로 긴 글을 제출하는 것은 나에게 굉장히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최종 논문이 최소 60페이지를 채워야 한다는 점을 생각했을 때, 20페이지는 소논문이라 부르는 것이 맞다고 할 수 있겠다.) 소논문 한 권을 위해서 최소 책 10권을 읽고 정리하며, 제발 한국어 번역본이 있기를 바라며 인터넷을 뒤져보기도 하고 (아쉽게도 대부분 없거나 절판된 경우들이 많았다.) 영어번역본이 있는 경우는 영어책을 빌려보았다. 결론적으로는 나에게 의미 있는 배움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글을 쓰는 동안은 너무 힘들었지만, 그들의 논리적이고 사회적인 배경에 대해서 좀 더 깊이 있게 느껴보는 시간을 보낸 것 같다. 특히 독일에서 생활하며 갈등했던 가치관적인 문제들에 대해서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다루게 되었고, 개인으로서의 나와 디자인으로서의 자아에 대해서도 좀 더 심층적으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내가 쓴 소논문들의 내용도 공유해 보면 재밌을 것 같다.)


아, 이 소논문은 경우에 따라 구술시험(Mündliche Prüfung)으로 대체될 수도 있다. 소논문을 구술로 푼다고 할 수 있는데, 약 15분간 개인 의견을 발표하고 15-20분간 교수와 대담으로 이루어진다. 독일 학생들에게도 소논문 작성은 괴로운 일인지라 다들 가능하면 구술시험을 한 번쯤은 보고 싶어 했지만, 외국인이며 발표포비아가 있는 나에게는 절대 유리하지 않은 시험의 형식이라, 안타깝게도 나는 참여하지 않았다.



여기까지 크게 내가 느끼고 경험한 것들에 대해서 적어보았다. 

독일의 대학들은 학교마다 혹은 학과마다 시스템이 굉장히 상이하다. 그리고 교수들에 따라서도 그 교육법이 굉장히 다르다. 그래서 내가 경험한 바를 일반화할 수는 없다. 처음 유학 올 때 내가 가졌던 독일 교육에 대한 막연한 환상 혹은 두려움을 누군가는 좀 더 구체적인 상상이자 기대로 가지기를 바라며 이 글을 마무리해 본다.



2024년 4월 학기를 시작하는 기차 안에서 쓰기 시작하여 

2024년 7월 집으로 돌아가는 기차 안에서 마무리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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