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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무늬 May 04. 2022

행복의 정도

행복의 정도는 의사결정의 자유도에 따라서 결정된대. 

동양 문화권의 사람들은 개인의 의사보다 가족, 사회의 의사가 중요해서, 상대적으로 의사결정이 자유롭지 못하고 따라서 덜 행복하다는 연구결과가 있어. 

서양문화권의 행복도가 동양의 행복도보다 높다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음…

행복을 수치화 했을 때를 말하는거지?

쎄, 나는 동양 문화도 계속해서 바뀌고 있어. 가족중심 문화는 많이 해체되어가고 개인주의적인 사회가 되어가고 있지.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는 삶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도 많고.

서양도 지역이나 종교에 따라서 그 의사결정의 자유도도 달라진다고 생각해. 예를 들자면, 유럽 안에서도 독일과 남부유럽, 동유럽의 가족 문화가 다르듯이말이야.

그리고 나는 동양과 서양을 나누는 기준도 불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어. 어디까지가 서양이고 어디까지가 동양인 걸까? 모든 아시아는 동양 문화권인거야? 그러면 중앙아시아와 동아시아, 남아시아는 모두 비슷한 문화를 가지고 있는걸까? 그리고 그들의 행복도는 다들 상대적으로 낮을까? 그 연구는 어디서 진행한거야? 

혹시 그 그들이 말하는 서양의 행복의 기준으로 모두의 행복을 재단한 건 아닐까?


그렇구나. 그렇다면 너는 지금 얼만큼 행복하니?




나는 지금 얼마만큼 행복한걸까?

독일에 도착하고 첫 일년은 너무나 불안하고 한국에 놓고 온 많은 것들이 늘 그리웠다. 우리 가족, 친구들 그리고 음식도. 내가 그리워하는 만큼 그들도 나를 그리워할지, 내가 한국에 있었다면 어떻게 살았을지,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은 아닌가에 대한 그런 불안함. 한국에 돌아갈 수 있을까 아니면 독일에서 우리가 계속 살 수 있을까. 독일에 온 것도 공부를 다시 하고 있는 것도 모두 나의 선택이였는데 뒤를 자꾸 돌아보는 내가 스스로 너무 답답했다. 원래 내 인생의 모토는 후회할 바에는 지금 이 시간을 소중히 그리고 열심히 살자는 거였는 데 말이지.


아침에 일어나서 창밖을 보며 독일의 춥고 흐린 날씨에 절망하고, 락다운으로 슈퍼마켓을 제외하고 모두 다 문을 닫아버린 그 상황을 불평했다. 제자리인 독일어 실력은 늘 나를 탓하게 하고 그러한 불만들은 마음 한켠에 견고하게 쌓여갔다. 그래서 독일에 와서 한국에서도 받아보지 않은 상담을 신청했다. 학교에서 외국인 학생들을 위해 제공하는 심리상담이였다. 처음 본 독일인 앞에서 펑펑 울었다.

뭐가 그렇게 서러웠는지.


돌이켜보면 한국에 살 때 나는 내가 가진 것이 소중하다고 느껴본 적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아니, 물론 소중하지만 내가 가진 것이 별로 없어서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내가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나를 나로써 봐주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정말 편안하게 그 시간을 즐기고 있었던 것 뿐이였다. 인간이란 소중한 것을 한번쯤 잃어버려봐야 그 가치를 안다고 하더니, 내가 바로 그랬다.


하지만 독일에서 나는 얻은 것도 참 많다.

1. 학생으로서의 삶

그 덕분에 그렇게 하고 싶어했던 외국어 공부와 전공도 다시 시작하고, 학생이란 신분이 깡패라고 불리는 독일에서 자유롭고 저렴하게 돌아다닐 수 있게 되었다. 늘 스스로의 부족함과 배움의 갈증을 느끼는 나에게 그 부족함을 인정하고 채울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는 건 정말 축복이다.


2. 저녁 시간

가족과 함께 저녁을 먹고 오늘 하루 이야기를 할 시간이 있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이다. 아침 일찍 출근하고 저녁엔 일찍 퇴근하는 문화 덕분에 가족과의 저녁시간은 독일에서 정말 당연하고 중요하다. 각자 오늘 누구를 만나고 뭘 먹었는지, 오늘 행복했는지 눈을 마주치며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같이 장을 보고 음식을 해 나눠먹을 수 있다는 것. 당연하지만 한국에서 누리기 힘들었던 소중한 시간이다.


3. 집 앞의 강과 산책길

자연친화적인 독일에 살고 있기 때문에 언제든지 집앞에 나가면 강을 걷고 산책을 할 수 있다. 심지어 학교에 가는 길은 작은 강변이라 늘 물소리를 들으며 학교를 갈 수 있다. 걷다가 만나는 청설모와 강아지 그리고 이름모를 새들의 지저귐까지 내가 한국에서는 경험해 보지 못했던 것들이 가득하다.


4. 걷기 그리고 자전거타기

하루에 최소 두 시간을 출퇴근을 위해 대중교통에서 보내던 내가 독일에서는 매일 1시간 학교를 가기위해 걷거나 자전거를 탄다. 서울 같은 소위 '메트로폴리탄'에 살고 있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곳에서 자전거 도로과 산책로 이용이 편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덕분에 최소 만보는 매일 채우는 것 같다.


5. 요리 실력

한국에서는 요리 자체에 크게 관심이 없던 내가 한식은 차지하고 아시안 음식도 귀한 이곳에서는 스스로 음식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해보니 뚝딱뚝딱 간이 맞는 음식이 나온다. 원래 나는 아무것이나 잘 먹는다고 생각했는데, 아 한국음식이 맛있어서 내 미각의 기준이 생각보다 높았던 것이였다. 학생식당에서 나오는 음식들 심지어 레스토랑에서 나오는 음식들 죄다 내 입맛에는 짜고 밍밍했다. 짜고 밍밍하다니. 간을 소금과 후추로만 하는 것 같다. 게다가 그 음식들은 한국처럼 집앞에 뿅하고 배달이 되지도 않는다. 덕분에 반찬부터 국, 찌개 그리고 요리까지 만드는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


6. 다양한 사람과의 만남

이 곳에 온 후 약 2년동안 정말 다양한 국적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미국, 라틴계열, 인도계, 동유럽, 유럽 그리고 아랍계통 친구들까지. 그 만남은 좋았던 것이든 힘들었던 것이든 간에 많은 나에게 생각을 하게 해줬다. 이건 정말 나에게 큰 자극이자 행복이다.


7. 다른 문화를 보는 눈

앞의 내용과 연결되겠지만, 덕분에 다른 문화를 알고싶고 더 배우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문화적으로 내가 궁금했던 것들에 대해서 유튜브를 찾거나 책을 읽는 것이 당연해졌다. 왜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한 것들에 대해서 다른 친구들은 얼마나 다양한 의견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아가고 있다.


8. 대화 방법

외국어를 배우면서 내가 한국어로도 참 대화를 못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처음 사람을 만나면 어떤 말을 해야할지, 내 관심을 어떻게 표현하는 게 좋을지 다시 생각하고 시도하는 중이다. 정답이 있겠느냐만은 생각해보면 나는 먼저 다가가는 것에 참 서투르고 표현하는 것에 박한 사람이었다. 누군가의 좋은 모습을 따라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표현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귀기울여 듣는 방법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다.


9. 책 읽는 시간

한국에서는 서점이나 온라인 서점에서 한가득 책을 사놓고 자기전에 뒤적뒤적하다가 잠들고 끝까지 완독하지 못한 책이 많았다. 오 '그 책 읽었어!' 라기보다는 '오 그 책 (읽진 않았고) 봤어 혹은 가지고 있어' 라고 말하는게 맞았달까. 그런데 여기서는 식사할 때나 기차를 탈 때 또 친구를 기다릴 때, 자연스럽게 책을 읽게 된다. 이건 공부를 하고 있는 내 상황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다들 책을 한권씩 꺼내는 문화에 익숙해진 덕분이기도 한 것 같다.


10. 서로를 알아가는 신혼의 시간

남편님과 나는 8년의 연애 끝에 결혼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하고 보니 이렇게 우리가 잘 몰랐구나 이 부분이 나와 이렇게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정말 우리가 비슷하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디테일한 차이가 있었을 줄이야! 온전히 둘이 보내는 시간이 많은 이 곳에서 우리는 그 모든 것들을 이야기하고 생각을 나누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무엇이 서로를 힘들게 하는지 무엇이 우리를 기쁘게 하는지 말이다. 이건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 너무 중요하고 행복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11. 특별한 사람이 아님을 깨닫기

예전에 누군가 나에게 "나이가 들면서 내가 특별한 사람이 아님을 깨닫게 되고 현실에 맞게 선택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고 이야기 한 적이 있다. 그 때 나는 '에이, 모든 사람은 각자의 특별함이 있고 나는 아직 그걸 깨닫지 못한 것일뿐 아닐까' 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그걸 젊고 패기넘치는 나의 오만함이였다고 생각한다. 물론 나는 아직 젊고 어리고 꿈도 많지만 말이다. 그 때 그분이 하신 말은 아마 나의 특별하지 않음을 깨달을 때, 그리고 현실에 두 발을 디딜 때 성장할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였을까 생각한다. 결론적으로 나는 이곳에서 내가 세상의 정말 많은 사람들 중에 고군분투하고 있는 한 사람이라는 걸 배우고 있다.


12. 여행

유럽의 중심부에 위치한 독일의 가장 큰 장점은 어디로든 여행이 정말 편리하다는 것이다. 비행기까지 타지 않아도 기차로 2시간에서 3시간이면 국경을 넘어 프랑스, 네덜란드, 체코 등등 어디든 갈 수있다. 비행기로는 제주도를 가는 가격에 스페인과 이탈리아를 날아갈 수 있다. 그리고 한 지역에서 더 오래 머무르는 여행을 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신랑과 나는 대학생 때 유럽 배낭여행과 어학연수, 워홀같은 해외경험을 해보지 않았다. 물론 신랑은 대학원에서 종종 해외 학회를 다녔고, 나는 졸업 후 개인 여행으로 가까운 곳으로 해외여행을 가거나 회사에서 짧은 사례답사는 다녀오긴 했지만 말이다. 얼마 전에 시칠리아 여행에서 신랑이 "우리 20대의 삶을 같이 다시 쓰고 있는 것 같아. 이러려고 그 때 배낭여행 안갔었나봐"라고 이야기 했었는데, 여행은 우리에게 독일에서의 삶을 선택한 큰 이유 중에 하나인 것 같다.


13. 햇빛의 소중함

이건 정말 한국에서 몰랐던 것 중에 하나이다. 내가 이렇게까지 날씨에 민감한 사람인지 몰랐고, 매일 아침 일기예보에 귀기울이게 될 줄 몰랐다. 햇빛이 소중한 이 곳에서 나는 해가 뜨면 하루 종일 기분이 좋다. 한국에서는 햇빛을 피하려고 썬크림에 양산, 모자 등등 온갖 아이템을 장착했었는데 말이다. 그리고 햇빛이 없으면 식물도 사람도 클 수 없다는 걸 알게됬다. 좀 더 오바하자면 자연의 소중함을 알게됬다고 해야할까. 지금이라도 이걸 알게 된 건 정말 감사한 일이다.




중구난방이지만 지금 머릿 속에 떠오른 것들을 적어보았다. 적어놓고보니 행복하고 감사한 일 투성이다.

불평하고 투정하자면 끝이 없는데, 감사하다고 생각하면 그 것 또한 무한대이다!


이 것들이 내가 얼만큼 행복한지에 대한 답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내가 느끼는 행복한 것 그리고 얻은 것 들은 이렇게나 많다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그리고 요즘 나는 '행복을 글로 그림,사진으로 남긴다면 더 오래 유지가 될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래서 내 머릿 속에 떠다니는 생각들을 적어서 남겨보려고 한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민망하기도 하지만 내 머릿속에서 발효되는 것도 아까운 그런 것들. 푹푹 섞어서 쉰내가 나기전에 남겨두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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