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허스키 Nov 24. 2022

라이프 고즈 온(Life goes on)

얼마 전 클럽하우스(여러 사람이 이야기를 주고받는 음성 기반 SNS)에서 ‘비자발적 은둔 생활’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다. 팬더믹 사태로 재택근무가 늘면서 외출하는 시간이 줄고, 사람을 만나기도 어려워져 집 안에서만 생활을 영위하는 라이프 스타일을 뜻한다고 한다.


‘어?! 내 얘기잖아.’


작년 2월부터 집에서 컴퓨터로 일하는 나의 일상과 비슷해서 흠칫했다. 더는 퇴근길이나 출근길에 들를 장소도, 그 시간에 사람을 만나는 일도 없다. 처음에는 비대면이라 직접 사람과 부딪히지 않아서 편하고 좋았는데, 기간이 길어지면서 기본적인 일상이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옷도 갈아입지 않고, 외출도 거의 하지 않고, 문화생활도 즐기지 않고 말이다.


팬더믹이 끝난다 해도 내가 속한 업계는 재택근무 형태로 쭉 갈 것 같아서 이제 과거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일은 없을 듯하다. 그렇다고 이렇게 축 처져 있을 수만은 없기에 심기일전하여, 요즘은 외출 여부와 관계없이 일어나면 바로 멋진 옷으로 갈아입고, 마트에 갈 때도 멋을 내고, 밥을 먹을 때 레스토랑처럼 음악을 트는 등 새로운 일상 만들기를 시도하고 있다.


또, 적어도 하루에 한 번은 밖에 나가서 햇볕을 쬐려고 노력한다. 집에 있어도 일에 매여 있는 몸이라 나가도 한두 시간 안에 집에 돌아올 수 있는 곳을 선호하는데 그러다 보니 선택지가 몇 개 없다. 그중 한 곳이 동네 공원이다. 집에서 공원까지 걸어서 오 분도 채 안 되는 거리지만 팬더믹 전에는 솔직히 일 년에 한 번 갈까 말까 했던 장소였다. 요즘은 일주일에 다섯 번을 간다. 너무 자주 가니까 ‘다닌다’라고 표현하는 게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이 공원은 식물원이면서 생태공원으로 만들어져 붓꽃원, 습지원, 억새원 같은 다양한 테마로 식물을 구분해 조성했다. 단순히 꽃이 있는 예쁜 곳이 아니라 정말로 무성하게 억새가 자라 있고 수많은 나무로 둘러싸여 있다. 제법 크기도 큰 편이라 느린 걸음으로 산책하면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자연이라는 것이 참 신기한 게, 날씨에 따라 달라 보이기도 하고 실제로 꽃이 피고 지는 것에 따라 공원 모습이 달라지기도 해서 매일 가는데도 질릴 틈이 없다. 오히려 오늘 본 예쁜 모습이 얼마 안 있어 사라질지 모른다는 아쉬움에 더욱 꼬박꼬박 산책한다.


대체로 나는 이십 분 정도 걷고 나머지 시간은 벤치에 멍하니 앉아 있는데, 멍하게 있는 동안 아무것도 안 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일하면서 들었던 답답한 마음이나 분노, 짜증, 피로를 가라앉히는 중요한 시간이다. 이렇게 하고 다시 일하러 집에 돌아오면 정리가 안 되고, 복잡하게 꼬여 있던 일이 의외로 간단하게 해결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어폰을 착용하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들으면서 공원을 바라보면, 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아름답다.


가끔 출근길에 들르던 카페의 고소한 향기, 동료들과 주고받던 눈인사, 금요일 퇴근길의 두근거림이 그립지만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고 하지 않나. BTS의 노래 <Life goes on>을 들으며 나는 오늘도 공원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작가의 이전글 <단편소설>오지납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