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야 할 일이 있거나 재미있는 무언가에 몰입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조금만 더 하다 잘까?’ 생각하는 순간, 어느새 새벽이다. 아이들을 재우고 나서야 비로소 찾아오는 조용한 나만의 시간. 이 귀한 시간에 나는 일도 하고, 글도 쓰고, 영상을 보거나 책을 읽는다. 뭘 해도 재미있고, 모든 게 의미 있어 보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짧은 밤의 자유는 다음 날 깊은 피로와 자책으로 되돌아온다.
8시간을 채우지 못한 날엔 금세 티가 난다. 회사에서 서류를 읽어도 문장이 머리에 잘 들어오지 않고 두세 번 반복해서 읽어야 이해가 된다. 문서를 작성할 땐 오타가 부쩍 늘어난다. 그럴 때면 속으로 생각한다.
‘약이 더는 안 듣는 걸까?’
‘내성이 생긴 건가?’
짜증이 나고, 괜히 불안해진다. 약 용량을 늘려야 하나 고민도 해본다. 그런데 잠을 충분히 자고 난 다음 날은 똑같은 약을 먹었는데도 집중이 잘 되고 감정 기복도 줄어든다.
결국 문제는 약이 아니라 잠이었다.
나는 ADHD를 진단받은 이후 내 삶의 리듬을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그전까지는 단순히 ‘내가 게으른가?’ ‘집중력이 떨어지나?’ 하고 자책했지만, 지금은 이 모든 흐름이 하나의 연결 고리로 보인다.
과몰입 → 늦은 수면 → 낮은 수면 질 → 집중 저하 → 자책과 분노 → 다시 과몰입. 이 고리는 생각보다 쉽게 끊기지 않는다.
10시 30분. 알람이 울린다. “이제 잘 시간이야.”
그때부터 갈등이 시작된다.
‘지금 자면 내일 아침은 정말 개운할 텐데…’
‘근데 내 시간은 지금밖에 없는데, 벌써 자야 해?’
“10분만 더 하다 잘까?” 그 10분은 금세 1시간이 되고, 어느 순간 새벽 1시를 넘어간다. 이대로는 안 된다고 다짐하지만 같은 일이 반복된다.
매일 밤마다 나와의 싸움이다.
이렇게 하루가 흘러간다. 피로한 몸으로 출근하고, 커피로 버티며 일하다 보면 어느 순간 약의 효과조차 무뎌진 것처럼 느껴진다.
퇴근 후엔 몸이 무겁고, 마음도 예민하다. 아이들이 소리를 내면 “그만!” 하고 소리를 지르고 만다.
평소 같았으면 웃어넘겼을 일도 피곤한 날엔 화부터 난다. 그리고 그런 나 자신이 싫어져서 죄책감이 남는다.
ADHD를 관리하는 데 있어 수면은 약만큼이나 중요하다.
뇌가 충분히 쉬지 못하면, 집중력은 물론이고 감정 조절 기능도 함께 약해진다.
최근 연구에서는 ADHD를 가진 성인의 절반 이상이 수면 문제를 겪는다고 말한다.
늦게 자고, 깊이 자지 못하고, 자주 깨는 패턴이 반복되면서 낮의 삶까지 흔들린다.
약을 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잠을 지키는 것이 곧 나를 지키는 일이라는 사실을 나는 점점 깨달아가고 있다.
특히 10시 30분 전에 이불 속에 들어가면 다음 날 아침은 놀랄 만큼 상쾌하다.
머리도 맑고, 일도 잘 되고, 아이들에게도 너그러워진다. 문제는, 그 평온을 위해 매일 밤 나 자신을 이겨야 한다는 점이다.
이제 나는 수면을 우선순위에 두기로 했다. 완벽하게 지켜지진 않지만 그래도 매일 밤 나를 설득하는 중이다.
“지금 자면 내일이 달라질 거야.”
이 말이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 아니라 진심이 되도록, 조금씩 수면 루틴을 만들어가고 있다. 아이들이 잠든 후 나만의 시간을 포기하는 것이 아쉽지만, 내가 깨어 있는 낮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걸 이제는 안다.
수면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다. ADHD를 가진 내게 수면은 감정 조절의 토대이자 집중력의 회복이고 가족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힘이다.
잠을 줄여가며 얻은 자유는 결국 피로와 후회로 되돌아온다.
그러니 오늘 밤은 조금만 더 일찍 자보려 한다.
내일의 나를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