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호이안에서의 하루 느리게 흐르는 시간

by 몽쉐르


아침의 여유와 체스 한 판

IMG_8943.JPG

아침 식사를 마친 뒤, 엄마는 어제 예약해두었던 마사지를 받으러 가셨다. 사실 별다른 기대 없이 한 명만 예약해둔 터라 큰 기대는 없었다. 리조트 잔디밭에 놓인 편안한 의자에 앉아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구름이 많이낀 하늘에, 바람은 느리게 스쳐 지나갔다. 아내는 강변을 따라 천천히 산책하며 시원한 바람과 강의 잔잔한 흐름을 즐기고 있었다. 예온이는 비치 베드에 누워 무엇인가에 몰두해 있었고, 또 예온이는 아내와 함께 책을 읽다가, 가끔씩 노래를 부르며 나긋나긋한 시간을 보냈다. 평화로운 아침이었다. 아빠는 리조트 헬스장으로 운동을 다녀오셨다

IMG_8945.JPG

그런데 예준이는 조금 지루해 보였다. "아빠, 체스 하자!" 아침부터 머리를 써야 한다는 생각에 살짝 망설였지만, 아이의 요청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오늘은 아이가 원하는 걸 맞춰주자’는 마음이 떠올랐다. 그렇게 우리는 체스판을 펼쳤다. 초반에는 집중이 잘 되지 않았고, 결국에는 내가 졌다. 물론 예준이의 실력이 부쩍 늘어난 것도 있지만, 내 머릿속은 여러 수가 잘 떠오르지 않았다. 괜히 나이 탓을 하고 싶어지는 순간이었다.

가족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여유롭게 아침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IMG_8948.JPG


마사지 후, 아쉬움의 표정

잠시 후, 마사지를 마치고 돌아온 엄마의 표정은 썩 좋지 않았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시며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셨다.

“어떤 점이 별로였어요?”

“그냥… 시원하지도 않고, 문질문질만 하더라.”

인터넷 후기에는 호평이 많았지만, 아마도 협찬을 받고 쓴 글이었던 것 같다. 솔직한 후기는 아니었나 보다. 역시나 리조트 안 마사지에 대한 기대는 다시금 낮아졌다. 그래도 가격이 저렴했으니 ‘이 정도면 괜찮아’라고 마음을 다독였다.


자전거 타고 떠난 작은 모험

321.png

나는 호이안의 구석구석, 관광객이 닿지 않는 마을까지 구경하고 싶었다. 아내에게 자전거 타러 가자고 했지만, 오늘은 쉬고 싶다며 거절했다. 대신, 엄마에게 “엄마, 자전거 타러 가요” 권해 보았다. 엄마는 망설이며 말씀하셨다.

“차들이 많이 다녀서 무서워야~”

“마을 안쪽 도로는 괜찮아요. 한적한 길로 가요.”

설득 끝에 엄마와 예온이, 나, 셋이 함께 자전거 여행을 떠났다. 리조트 정문에서 자전거를 빌렸다. 상태를 확인하고 그중 타기 쉬운 자전거를 골랐다. 어디로 갈까? 휴대폰 지도를 펼쳐보니 투본강 아래쪽에 민가가 많은 큰 섬이 눈에 들어왔다.

복잡한 철 다리를 오토바이와 함께 건너는 순간, 덜컹거리는 진동이 손과 발끝까지 전해졌다. 낡고 오래된 다리였지만, 현지인들은 아무렇지 않게 오고 갔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펼쳐진 시골 풍경은 한 폭의 그림 같았다. 골목 골목마다 소박한 일상이 숨 쉬고 있었다.

어느 집 앞에는 조상 무덤이 있었고, 마당마다 닭들이 종종걸음쳤다. 바나나 나무에는 탐스러운 바나나가 주렁주렁 열려 있었다. 깔끔하면서도 정겨운 동네 풍경이었다. 대문도 없이 열려 있는 창문, 허름하지만 따뜻한 느낌의 집들. 따뜻한 기후에 맞춘 구조겠지만, 요즘처럼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날씨엔 조금 걱정이 되기도 했다. 이보다 더 추워지면 정말 견디기 힘들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드문드문 호스텔도 보였다. 관광객은 보이지 않았지만, 분명 이 고요한 마을 속에 묵고 있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자전거를 타고 느리게 동네를 누비며 보는 풍경은 시간 가는 줄 모르게 했다. 어느새 두 시간이 흘렀다.

엄마는 이런 자전거 여행을 무척 좋아하셨다. 지나가는 서양 노인들의 느긋한 산책 모습도 부러워하셨다. “한국 사람들은 너무 바쁘게 여행 다녀. 이렇게 여유 있게 돌아보는 게 진짜 여행이지.” 엄마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나 역시도 어느 순간부터 관광지보다 현지인들의 삶을 구경하는 게 좋아졌다.

하지만 자전거 안장의 고통은 쉽게 무시할 수 없었다. 결국 우리는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차가운 수영장에서의 개운함

몸은 피곤했지만, 왠지 물속에 들어가고 싶었다. 자전거를 많이 탄 탓인지, 시원함이 그리워졌다. 예온이가 먼저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수영장에 첨벙 뛰어들었다. 예준이도 뒤따라 들어갔고, 나도 함께 물속으로 들어갔다.

물은 차가웠지만 목욕탕 찬물보다는 견딜 만했다. 처음에는 망설였지만, 막상 들어가니 몸도 마음도 시원하게 식혀졌다. 물속에서 부유하는 기분은 마치 복잡했던 생각들이 물에 녹아내리는 듯했다. 머릿속까지 맑아졌다.

‘생각해보니, 호이안에 와서 수영 한번 못한 게 내내 아쉬움으로 남아 짜증이 나 있었던 걸까?’

그제야 마음이 조금 더 가벼워졌다.

엄마와 아빠는 수영장 옆 비치 침대에 누워 햇살을 즐기셨고, 아내도 옆에서 조용히 책을 읽었다. 바람이 점점 차가워졌지만, 그 잠깐의 수영이 참 개운했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만족감은 충분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베트남에서 마주한 나의 감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