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온이와 같은 방을 쓰고, 아내는 예준이와 함께 방을 사용했다. 아침에 깊고 편안한 잠을 자고 싶어서 예온이에게 "일어나서 심심하면 영상을 보고 있어"라고 말하고 다시 눈을 감았다.
그렇게 누워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시계를 보니 아직 일곱 시밖에 되지 않았다. 아빠가 아침 먹으러 가자고 하셨다. 늦잠을 자고 싶었는데 단잠을 깨우는 전화가 반갑지 않았다. 괜히 짜증이 났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부모님은 일찍 주무셨을 테니 더 일찍 일어나셨을 것이다. 괜한 짜증이었나 싶었다.
옆을 보니 예온이가 조용히 영상을 보고 있었다. "왜 화면만 보고 있어?" 하고 묻자, "아빠 잠 깰까 봐 조용하게 있었어."라고 대답했다. 순간 가슴이 뭉클했다. 정말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이 깊은 아이구나 싶어 고맙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안쓰러운 마음도 들었다.
아침부터 마음이 무거웠다. 이유를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잠을 깊이 자지 못해서 피곤한 걸까?' 서울에서 바쁘게 살아가느라 쉼 없이 지내다가 베트남에 와서 편안함을 경험해서일까? 오히려 이렇게 평온한 시간이 되려 불안하게 느껴졌다. 다시 힘든 삶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커져서일지도 모른다.
한국으로 돌아갈 날이 아직 7일이나 남았지만, 시간이 흐르는 것이 두려웠다. 그래서 아침부터 우울한 걸까? 기분의 원인을 찾고 해결하고 싶었지만, 내 마음이 스스로도 잘 이해되지 않았다.
식당으로 가는 길, 리조트의 아침 식사가 무이네에서처럼 푸짐하게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먹을 것은 충분히 있었다. 부족함을 느낄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도 이상하게 모든 것이 만족스럽지 않았다.
아침을 먹는 동안 아이들은 신나게 뛰어다녔다. 그런 모습이 거슬렸다. 나는 짜증을 내고 화를 냈다. 아이들이 웃으며 떠드는 것조차 감당이 되지 않았다. 결국, 식사 내내 말없이 앉아 있었다.
강을 바라보며 밥을 먹는데 자꾸만 울컥했다.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결국, 아내에게 말했다.
"난 혼자 살아야 할 것 같아."
아내는 조용히 대답했다.
"그래도 자기 감정은 조절할 수 있는 거 아니야? 아이들과의 관계가 걱정돼."
그리고 덧붙였다.
"평소엔 엄격한 아빠니까 더 다독여주고, 스킨십도 많이 해줘."
그 순간,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멈추질 않았다.
아이들이 다가오자, 아내는 조용히 분위기를 감지하고 아이들을 데리고 갔다. 나는 그 자리에 앉아 계속 눈물을 흘렸다.
그냥 이렇게 아무 걱정 없이 살고 싶었다. 아이들에게 좋은 아빠가 되고 싶었지만, 사소한 소리에도 짜증을 내는 내 자신이 너무 싫었다. 여행 중 부모님께 좋은 이야기만 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짜증과 화를 내며 내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 미웠다.
'내 존재 자체가 부모님, 아이들, 아내에게 감정적으로 고통을 주고 있는 건 아닐까?'
삶의 무게도 버거웠다. 가족을 부양하는 것은 모든 아빠가 하는 일이지만, 오늘따라 견디기 힘들게 느껴졌다. 계획하고 노력한다고 해서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이 삶이라는 걸 알기에 더욱 불안했다.
그렇다. 내 안에 불안이 너무 컸다.
이곳의 평온함 때문에 베트남 정착을 고민하다가, 오히려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여행이기에 편안한 것이지, 만약 이곳에서 정착한다면 한국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써야 할지도 모른다.
작년 여행에서는 늦게 자고도 개운했는데, 이번 여행에서는 하루 9시간씩 자고 있다. 깊은 잠을 자고 있다는 점에서는 좋지만, 그만큼 에너지를 많이 쓰고 있다는 반증일 수도 있다. 한국에서는 많이 자도 일곱 시간인데, 여기서는 아홉 시간 이상을 자고 있다. 마음이 편안해서일까? 쉽게 잠들고 길게 자는 이유가 정확히 뭔지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조금 울고 나니 마음이 정리된 것 같았다.
다시 다짐하다
남은 여행 동안은 아이들에게 더 행복한 마음을 가지고, 부모님께도 즐거운 모습을 보이며, 아내에게도 편안함을 주어야겠다고 다짐했다. 내 감정도 중요하지만, 함께하는 가족의 감정도 중요하니까.
'과연 할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의문이 들었다.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그 마음을 가지는 것 자체가 너무 어렵게 느껴졌다.
하지만 계산하지 않고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긍정적인 것만 보고, 긍정적인 것만 이야기해야 한다. 주변의 소음과 신경 쓰이는 일들은 못 본 척, 안 들리는 척해야겠다.
이것도 내 의지로 가능할까?
스스로를 통제하는 것이 너무 어렵게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