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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동행자ADHD2

늘 그렇게 살아온 사람들 어른이 되어 ADHD를 만나다

by 몽쉐르

“원래 성격이 좀 그런 거예요.”

나는 이 말을 수없이 들었고, 스스로를 세뇌시켜 왔다.
집중이 안 되고, 책 읽기가 어렵고, 상대와 대화할 때 엉뚱한 생각들이 수 없이 떠오르고, 중요한 약속을 잊고, 말과 행동이 앞서고, 생각이 너무 많아 머릿속에서 영화가 매일 돌아가는 나.

반복되는 실패에도 자신을 의심하지 않았다.

자신의 문제를 문제로 인식하지 못한다.
그저 ‘나는 원래 이런 사람’, '노력이 부족해서 그래'라고 생각한다.

나는 작업치료사로, 특수교사로, 수년간 발달과 인지에 어려움을 가진 이들과 함께하며 살아왔다.
ADHD는 내 삶의 중심에서 잘 안다고 생각했었다. 내가 ADHD를 진단받기 전까지는..


성인 ADHD는 여전히 조용하고, 잘 드러나지 않으며, 무엇보다 본인 스스로가 ‘ADHD의 가능성’을 눈치채지 못한 채 살아갈 수밖에 없다.


나 스스로를 비교할 수 없어 불편함을 감지하지 못한다.

ADHD는 선천적인 뇌의 특성이다.
주의의 지속과 전환, 충동의 억제, 계획의 실행, 감정의 조절에 어려움을 겪는다.
하지만 이런 어려움은 스스로를 기준으로 삼을 때 드러나지 않는다.
비교군이 없기 때문이다.
어릴 적부터 산만한 자신, 조용하지만 마음속이 복잡한 자신, 말을 참지 못하는 자신을 늘 그래왔던 ‘나’로 받아들이며 살아왔기 때문에 그것이 불편하다고 인식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만의 생존방식을 만들어낸다.


감정을 숨기고, 일정을 과하게 메모하며, 실수를 줄이기 위해 긴장을 놓지 않는다.
이러한 보상작용은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이어진다.
다만 그 무게가 점점 커질 뿐이다.


실패는 반복되고, 마음은 점점 지친다

문제는 타인과 비교를 통해 시작된다.
학교에서는 ‘집중해 봐’, '왜 쉬운 문제만 틀리냐?'는 말을 들었고,
직장에서는 ‘잦은 실수가 많다’는 피드백을 받고 '내 눈에만 보이지 않는'문제들,
가정에서는 ‘아내와 자녀에게 '욱'화를 내기도 하고’, ‘왜 이리 게을러?’라는 타박이 반복된다.

이러한 외부의 거울 속에서 처음으로 자신을 의심하게 된다.
나는 왜 이럴까?
왜 늘 늦을까?
왜 쉬운 일을 실수할까?
왜 자꾸 말이 앞설까?

그런 질문들이 스스로를 괴롭히기 시작하면 마음은 점점 무거워진다.
후회가 많고, 자기 비난이 커지고, 실패를 두려워하게 된다.


머릿속은 늘 바쁘다. 생각이 멈추지 않는다. 그 생각을 멈출 수 없다는 사실이 더 큰 공포로 다가온다.
그리고 결국, 우울과 불안으로 이어진다.


이름을 가진다는 것

진단은 결론이 아니다. 시작이다.
병원을 찾는 그 순간, 오랜 시간 자기 자신을 오해하고 질책하던 내면의 목소리에 처음으로 ‘혹시 아닐지도 모른다’는 틈이 생긴다.
그리고 의료진의 진단을 통해 비로소, 자신에게 ‘ADHD’라는 이름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름을 알게 되면, 해석이 달라진다.
그동안의 패턴이 의미를 가지기 시작한다.
‘이건 게으름이 아니었구나.’
‘나만 이상한 게 아니었구나.’
‘나에게 필요한 방식이 따로 있었던 거구나.’


진단은 사람을 바꾸지 않는다.
그러나 자신을 바라보는 관점은 바꾼다.
이해가 생기고, 자기 연민이 가능해지고, 조절의 전략을 배울 수 있다.
그때 비로소 삶은 조금씩 달라진다.


전문가로서 ADHD를 가진 사람으로서

나는 정신과 의사는 아니다.
하지만 오랜 시간, 집중력, 충동, 실행 기능의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봐온 작업치료사이자 특수교사다.
아이에서 어른으로 자란 내가 어떻게 스스로를 오해하며 살아왔는지, 어떻게 마음속의 싸움을 감추며 버텨왔는지, 나의 몸짓과 말, 표정과 감정을 통해 자세히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이 글을 쓴다.
누군가,
늘 같은 실패 앞에서 혼자 괴로워하며

‘나는 왜 이럴까’라는 질문만 반복하고 있다면—
당신이 걸어온 길에 ADHD라는 이름이 있었음을,
그리고 그 이름이 당신의 모든 것을 설명하지는 않지만
당신을 조금 더 이해하게 도와줄 수는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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