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트넘판엑소더스의 시작일까
포르투, 첼시, 인테르, 레알 등 각 국가의 명문들만 거치며 수많은 우승컵을 들어 올린 명장, 조세 무리뉴 감독. 만 39세의 나이로 포르투갈의 명문, FC 포르투의 지휘봉을 잡은 그는 충격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축구사를 뒤흔들었고 2000년대 초반부터 축구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며 트렌드를 주도했다. 패기 넘치던 그의 젊은 모습은 흰머리가 어색하지 않은 중후한 모습으로 변했고 어느새 환갑을 앞둔 나이가 되었다. 그가 축구를 주도하며 변화시켰던 것처럼 축구가 계속 변해서일까. 이제 무리뉴의 축구가 예전만큼의 강력함을 보이지 못하는 것 같다. 첼시 2기 말미부터 시작된 그의 하락세는 맨유, 토트넘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토트넘은 현지시각 4월 16일 오후 에버튼의 홈구장인 구디슨 파크에서 펼쳐진 프리미어리그 32라운드에서 2대 2 무승부를 기록해 승점 1점 추가에 그쳤다. 케인의 멀티골로 겨우 무승부를 거둔 토트넘은 32경기를 치른 현재 승점 50점을 기록하며 리그 7위를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49점을 기록 중인 에버튼이 한 경기를 덜 치른 상태이기에 사실상 8위에 더 가까운 상황이다. 대대적인 선수 영입을 보이며 기대를 모았던 토트넘이기에 챔피언스리그 티켓을 차지하지 못한다면 너무나 아쉬운 상황이다. 기존 선수단 자원의 부진도 부진이지만 결국 책임은 감독의 몫이기에 무리뉴 경질설이 현지에서도 슬금슬금 나오고 있다.
이와 함께 나오고 있는 것이 케인의 이적설을 필두로 한 일명 ‘토트넘 엑소더스’이다. 대부분의 영국 언론에서 케인이 토트넘을 떠난다면 토트넘에서 엑소더스가 펼쳐질 것이라 예상했다. 현재 팀의 핵심 중의 핵심, 토트넘 그 자체라고 볼 수 있는 케인이 팀을 떠난다면 토트넘은 챔피언스리그 진출이나 우승컵에서 너무 멀어지고 만다. 그렇다면 팀의 또 다른 거대한 공격의 축을 담당하고 있는 손흥민 역시 우승을 위한 이적이 유력해진다. 또한, 현재 무리뉴의 토트넘에서 외면을 받고 있는 토비 알더베이럴트나 불화설이 드물게 나오는 요리스, 임대생인 베일, 바이백 조항을 달고 있는 레길론까지. 기타 정리해야 하는 애매한 자원이 많은 상황인 토트넘은 대대적인 개편을 할 수 있는 기회와 팀의 핵심들을 모두 내보내야 하는 위기가 동시에 찾아올 수 있다.
대부분의 언론이 비판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그렇게 나쁘기만 한 상황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팀의 핵심 자원들을 내보내야 하는 것은 맞다. 케인은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의 스트라이커고 손흥민은 현재 프리미어리그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윙어이다. 요리스는 나이가 조금 있긴 하지만 여전한 기량을 뽐내고 있다. 이러한 선수들이 나간다는 것은 팀에게 치명적이다. 그러나 레비의 선수 지키기가 과해서일까. 토트넘의 이적시장은 언제나 매각작업이 문제였다. 로테이션 자원으로 쓰기에도 애매한 기량을 보여주는 선수들이 몇 년 전부터 매각될 것이라는 말만 나오고 매각되지는 않고 있다. 나름 준수한 듯 보이지만 치명적인 실수를 남발하는 다빈손 산체스, 경기에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하는 벤 데이비스, 아직도 팀에 남아있는 대니 로즈, 팀의 유스 출신이지만 전혀 발전하지 못하는 모습에 팬들마저 외면해버린 해리 윙크스, 팀의 계륵이 되어버린 델레 알리, 매번 실망만 주는 라멜라까지. 알리 정도를 제외하면 근 5년간 매번 매각해야 한다는 기사를 쓰게 만든 주인공들이다. 팀의 개편 의지를 확실히 하고 핵심 자원들의 출혈을 감수하면서 이들도 내보내서 팀을 완전히 리빌딩한다면 토트넘이 한 단계 더 나아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는 것이지 않을까 싶다. 물론 최고의 리빌딩은 핵심 자원을 지키며 주변 자원을 물갈이하는 것이지만 선수를 잡을 수 없다면 선수들의 매각으로 이적 자금을 마련하고 해당 자금을 이용한 계획적인 투자로 팀을 다시 재정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관심사인 손흥민은 어떻게 해야 할까. 사실 무리뉴 감독 부임 초기 손흥민에 대한 전망은 밝았다. 무리뉴의 팀에는 언제나 역습에 특화된 파괴적인 윙어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레알에서는 호날두가, 첼시 1기에는 다이나믹 듀오라 불린 더프와 로벤이, 첼시 2기는 아자르와 윌리안, 오스카, 마타와 같은 창의적인 2선이 그 역할을 해줬다. 맨유에서 조금 들쑥날쑥하긴 했으나 발전한 모습을 보여줬던 래시포드까지 있었기에 손흥민을 공격적으로 잘 활용할 것이라 예상되었다. 첫 시즌은 손흥민을 아주 수비적으로 활용하며 비판을 받았으나 이번 시즌에는 손흥민과 케인을 이용한 역습이 토트넘의 주된 공격 패턴이 되었기 때문에 예상이 결과적으로 맞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무리뉴는 한 팀에 오래 머무르는 감독이 아니다. 매번 그리 좋지 않은 마무리를 보여준 감독이고 현재 성적 부진으로 인해 경질설도 나오는 상황이라 토트넘에서의 시간이 앞으로 길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아직 감독 문제가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손흥민이 고려해야 하는 것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팀의 철학이다. 팀이 우승을 위해서 어떻게 노력할 것인지, 어떤 기조를 유지하며 팀을 재정비해 우승으로 나아갈 것인지를 손흥민이 잘 파악하고 자신이 이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정말 실현될 만한 이야기인지를 고려해 잔류와 이적을 고민해야 한다. 투자에 대한 생각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다른 하나는 선수단 자원이다. 어찌 보면 앞서 말한 부분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라 볼 수 있는데 팀 내 구성원의 퀄리티가 어느 정도인지, 팀이 제시한 비전을 실현할 수 있을 수준의 선수들인지, 핵심 선수가 잔류할 것인지, 만일 둘 다 아니라면 팀은 누구를 매각하고 누구를 데려올 것인지, 결론적으로 팀을 어떻게 꾸려나갈 것인지에 대한 전망을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손흥민은 케인과 운명을 같이해야 한다. 토트넘에서 케인이 차지하고 있는 역할이 너무나 많기에 케인이 나간다면 토트넘이 단기간에 우승컵을 노릴 수 있으리라 예상되진 않는다. 마법같이 팀이 순식간에 재정비되는 것을 바라는 건 요행을 바라는 것과 마찬가지니 케인의 거취가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는 손흥민의 목표를 우승으로 가정했을 때의 이야기이다. 손흥민이 토트넘의 레전드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하거나 잔류를 원하거나 경제적인 다른 것을 원한다면 당연히 의지대로 잔류해야 한다. 그러나 손흥민은 어느덧 한국 나이로는 30, 만으로 28세이다. 속도를 무기로 삼는 손흥민이라면 에이징 커브가 올 수 있는 나이이다. 목적이 우승이고 케인이 토트넘을 나간다면 손흥민은 우승이 가능한 다른 클럽으로 이적해야 한다. 손흥민과 케인, 무리뉴의 거취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토트넘 엑소더스,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상당히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