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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욱 Dec 19. 2023

홋카이도 설국여행4.

노보리베츠 지옥온천(2)

풀 한 포기 자랄 수 없을 것 같은 지옥 땅에도 살아 숨쉬는 숲이 있었다. 뿌리조차 내릴 수  같은데 숲은 억겁년을 살아오고 있었나보다. 지옥 숲길을 따라서 한참 걷다 보면 계곡을 만나게 되었다. SBS테마여행에서 보바로 그 계곡을 발견하고는 신발부터 벗어던졌다. 이 추운 겨울날 계곡물은 응당 차가운 것이어야 하지만 목욕탕 온도쯤으로 적절히 맞춰진 것도 참 신기했다. 일부러 하려고 해도 쉽지 않은 일을 자연스럽게 되어 있는 것도 놀라운 일이었다.


홋카이도에서는 수건 필수품이다. 하천을 따라 흐르는 물은 대부분 온천고, 사람들이 쉬어 가는 곳마다 족욕을 할 수 있게 마련되어 있었다. 계곡 온천 발을 담그고 한참 장난치며 놀았다. 송사리있을까 싶어 자세히 들여다 봤지만 생명체가 있을리 없었다.


계곡을 쩌렁쩌렁 울리던 우리 목소리를 듣고 어디선가 나타난 아저씨 한 분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온천 관리하시는 분이었는데 자청하여 사진까지 찍어 주었고, 우리 가족사진을 공원 홈페이지에 올려 주기까지 했다. 지옥을 지키는 성격이 착하고 밝은 저승사자  같았다.


 노보리베츠 공원 산책을 마치는데 2시간 넘게 걸렸다. 공원을 크게 한 바퀴 돌고 내려오면 우리가 출발했던 마을 입구에 도착한다. 거리에는 출출한 배를 달래기 좋은 식당가가 즐비하다. 가게들이 아담하고 작았지만 온천마을 답게 전통을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그중 한 곳을 골라 들어갔는데 벽을 둘러 빼곡하게 채운 누군가의 싸인만 보더라도 맛집이 분명했다. 치킨과 돈가스를 주문했는데 입맛에 딱 맞았다.


지옥온천에서 꼭 봐야 하는 것이 하나 있다. 정해진 시간마다 옥황상제 가면쇼를 하는데 꽤 유명한 듯 시간이 가까워지자 어디서 나타났는지 사람들이 구름 떼처럼 모여들었다. 옥황상제가 눈에 불을 켜고 순식간에 얼굴 형상을 바꾸는 가면극이었다. 괴성을 내며 가면 바꿀 때마다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터졌고 빨간 눈을 한 옥황상제 웃음소리에 어린 아이들은 겁에 질려 일제히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옥황상제 쇼보다 노보리베츠 계곡에 쩌렁쩌렁 울려 퍼지는 아이들 울음소리가 더 놀랍고 재미있었다.


 노보리베츠 버스터미널서 일본 할머니를 한 분 만났다. 배낭 하나씩을 메고 있는 우리 가족을 보고 자꾸 웃으시길래 호기심에 고등학교 때 배운 일본어 실력으로 몇마디 걸어 보았다.


"빠쓰와 난지 데스까?"

그때부터 할머니께서 알아듣지도 못하는 내게 끝없는 독백을 늘어놓는 바람에 여간 곤혹스럽지 않았다. 그 와중에도 '하이, 하이, 쏘데스까(예, 예, 그렇습니까?)'하며 응대하려 애썼다. 버스가 오기까지 30분 동안 할머니 독백은 끊임없이 이어졌고, 옆에서 지켜보던 애들은 내가 다 이해를 하는 줄 알고 "아빠, 뭐라는데?" 하면서 신기해 했다.


"나도 모르지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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