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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욱 Dec 27. 2023

홋카이도 설국여행 8

얼어 죽을뻔한 민숙집.

온센역에 도착하자마자 족욕 시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특이하게 기차역 바로 옆에 족욕할 수 있는 작은 건물이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는 이미 일본 사람 몇 명이 도란도란 둘러앉아 조용히 족욕을 하고 있었다. 4인 가족이 신기한 표정으로 양말을 벗는데 '스미마생~' 하면서 슬그머니 자리를 비켜 준다.

괜히 미안한 마음까지 들었다.

'같이 해도 되는데....'

우리는 배낭을 벗어던지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누가 먼저라고 것도 없이 탕 안으로 발을 밀어 넣었다.

"아, 좋다~"

발끝에서 시작한 뜨끈뜨끈한 온기 춥고 피곤한 몸을 스르르 녹였다. 여행하면서 이런 호강을 누릴 줄은 생각도 못했는데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무료 시설이 역에 붙어 있는 것도 고마운 일이며, 여행객의 피로를 풀어 주는 최고의 선물이었다. 천지에 아무리 온천수가 넘쳐나더라도 정성 없이는 이런 생각을 하지 못할 텐데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족욕을 마쳤을 때는 벌써 어두워졌고 홋카이도 와서 처음으로 밤기차를 타고 아바시리로 넘어갔다.

잠시 뒤 벌어질 끔찍한 일을 꿈에도 모른 채...


하루쯤은 일본식 가정집에서 지내보고 싶어서 민숙이라고 불리는 일반 가정집에 예약을 했다. 하필이면 그곳이 아바시리였고 무지하게 추운 동네였다는 것이 불행의 시작이었는지 모른다. 아바시리 역사 문을 나섰는데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거센 눈보라가 우리를 꼼짝달싹 못하게 만들었다. 어쩔 수 없이 역무원에게 민박집 전화번호를 주면서 데려와 줄 것을 부탁했다. 하지만 민박집 주인장은 차가 움직일 수 없고 역이 집에서 가까우니 잘 찾아오라는 말만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왠지 느낌이 안 좋았으나 하는 수없이 거친 눈보라를 뚫고 민박집을 찾아 길을 다시 나섰다. 몇 백 미터를 걸었는지 모르지만 기찻길도 지나고, 들판도 지난 것 같았는데 '민숙'이라고 적힌 간판이 빼꼼히 보이는 곳으로 달려갔다. 주인장은 밝은 미소로 우리를 맞아 주었으나 집 안으로 들어서자 완전 실망 그 자체였다.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한 전통 일본식 다다미 방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겨울에는 취약하다는 것을 늦었지만 그제야 알게 되었다.


내가 기대한 건 이게 아니었는데...

'이게 다다미방이구나!'

'근데 왜 이리 차갑지?' 바닥 난방 안된다.

'방 공기가 너무 차다' 히터가 없었다.

온기라곤 하나도 없어서 말을 하면 입김이 뿜어져 나왔고 전기장판 하나 없이 이불만 덮고 잠을 자야 했다.


벽장에 있는 이불을 전부 끄집어내서 깔고 덥고 해 봤지만 너무 추웠다. 주인장 말에 따르면 밖은 영하 30도가 넘는 혹한이라는데 어떻게 고객을 위해 준비를 하나도 안 했을까? 이대로 잠을 자다가는 큰일이 날 것 같아 주인장을 찾아갔다. 주인장이 제시한 추가 옵션은 옛날 '곤로'라고 불렀던 석유난로뿐이었다.


얼마나 추위에 떨었던지, 우리는 서로를 부둥켜 안고서라도 온기를 나눠야만 했다. 초인의 힘으로 버텨내고 있었다. 그 와중에 문을 닫고 난로를 피우면 어쩌면 산소 결핍으로 위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국 땅에서 일가족이 참변을 당했다는 신문기사가 나오는 건 아닐까 걱정이 앞섰다. 캠핑을 하면서 질식사고를 막기위해 난로를 피우면 텐트 한 부분을 살짝 열어 공기가 들어 오는 구멍을 만들어야 한다.
창을 열자마자 시린 칼바람에 볼이 찍혀 나갈듯 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여행 피로에 금방 잠이 들었고 몇 시간 뒤 추운탓에 눈이 저절로 뜨여졌다. 다음날 해가 뜨기 전 어둠을 뚫고 숙소에서 탈출하듯 기차역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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